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29일부터 사흘간 걸그룹 에프엑스의 단독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콘서트 제목은 ‘f(x) the 1st concert DIMENSION 4 - Docking Station.’ 데뷔한 지 7년 만에 가진 첫 번째 콘서트였습니다.
지난달 티켓 매진 소식 이후 베일에 싸인 ‘함수콘(에프엑스 별칭인 함수와 콘서트의 합성어)’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자간담회 등 언론 행사는 31일 예정됐지만 첫 콘서트의 감동을 놓칠 수도 없었습니다.
응원봉을 흔들며 목청을 높일 꿈에 부푼 채 입장 15분 전 콘서트가 열리는 올림픽홀에 도착했습니다. 웬열? 아이돌 콘서트가 처음이었던 기자는 입장 1시간 전 굿즈(Goods, 기념품) 판매가 마감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응원봉 및 굿즈의 실물을 볼 수 없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콘서트장, 아니 도킹 스테이션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공연장 안은 기자가 가질 수 없었던 ‘펄라이트페리윙클’색 응원봉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한국팬뿐만 아니라 중국팬과 히잡을 쓴 여성팬, 흑인 남성팬까지 눈에 띄었습니다. 인종은 다르지만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펄라이트페리윙클’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밤 8시. 고요에 잠긴 올림픽홀은 SM엔터테인먼트 특유의 모호하고 불친절하지만 세련되고 쨍한 비주얼 영상과 함께 ‘Welcome to the Docking Station’이라는 제목의 전자음악이 울렸습니다. 정식 음원으로 발매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본무대 첫 곡은 두 번째 미니앨범 타이틀곡 ‘Electric Shock.’ 강력한 전자음에 전.기.충.격, 사자성어로 시작하는 가사는 에프엑스를 여느 아이돌과는 다른 독창성을 지닌 아티스트로 각인하는데 일조한 명곡입니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어진 ‘Red Light’에서 루나의 솔로 파트, 그리고 ‘Dracula’에서 크리스탈의 ‘문제적 장면’은 다음날까지도 잔상이 남았습니다. 중국 활동을 병행하며 콘서트 연습을 한 빅토리아는 유려한 춤선을 잃지 않았습니다. 엠버는 세 멤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매개로서 시종일관 에너지를 뿜었습니다. ‘airplane’을 부르며 함께 2층 무대를 향해 걸어 나오는 순간은 환희로 가득했습니다.
8년 차 아이돌인 이들에게 개별 무대나 게스트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교복을 입고 꾸민 발랄한 무대에서부터 여행자 컨셉의 신비로운 무대에 이르기까지 2시간여를 몰아치자 안도감이 밀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루나의 “여러분 이제 시작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4 Walls’로 시작된 4집 앨범 메들리는 공연장을 일순간 클럽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이들은 마지막곡 ‘Cash Me OUT’을 열창하면서 도킹 스테이션을 빠져나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곱씹어 본 세트리스트(set list)는 우주의 광활함(혹은 김혜자 도시락)만큼이나 풍요로웠습니다. 본무대에서만 34곡, 앵콜곡으로 3곡을 소화해 냈습니다. 에프엑스 네 멤버는 7년간의 한을 내려놓겠다는 듯 온 힘을 다했습니다.
이에 보답하듯 팬들 역시 깜짝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라는 플랜카드를 본 공연 내내 숨기고 있던 팬들은 앵콜곡이 시작되자마자 동시에 꺼내 보이는 진풍경을 연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았습니다. 냉미녀 크리스탈의 눈이 눈물로 반짝 빛나는 것을.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에프엑스는 지난해 설리의 탈퇴로 4인조 체제가 되었습니다. 설리가 무대 위에서 특유의 눈웃음을 발사하고 “의사선생님 이건 뭔가요?”라고 발랄하게 질문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은 못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빈 공간이 느껴지는 순간은 없었습니다. 퍼포먼스 디렉터 심재원의 섬세한 기획으로 틈을 꼼꼼하게 매운 덕분입니다.
에프엑스에겐 그동안 공식 팬클럽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팬덤이 결코 작은 걸그룹은 아닙니다. 지난해 에프엑스는 소녀시대와 더불어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걸그룹입니다. 에프엑스는 음악방송 1위를 해도 공식 팬클럽이 아닌 “팬 여러분”이라고 호명해야만 하는 슬픔을 지닌 걸그룹입니다.
이렇다 보니 팬들 사이에서 에프엑스는 슈퍼주니어와 함께 소속사가 살뜰히 챙기지 않은 아티스트로 거론되곤 합니다. 리스너인 기자 입장에서 꾸준히 완성도 있는 앨범을 내주는 것만도 다행스럽지만 한편, 슈퍼주니어 려욱의 11년만 솔로 데뷔 하루 전날 NCT라는 다국적 아이돌 그룹에 대한 프리젠테이션 및 미래 구상을 발표하는 소속사의 행태를 떠올리면 팬들의 투정이 단순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소속사도 팬들의 갈증을 이해하고 있었던 걸까요. 콘서트 마지막 날, 빅토리아는 공식 팬클럽 명칭이 ‘미유’로 결정됐다며 깜짝 선물을 안겼습니다. 이렇게 또 팬들은 소속사로부터 조련되는 것일까요. 하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팬클럽 구성이 완료돼 통장이 털리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끈을 놓지 않고 지켜보며 아재팬으로서 위상을 드높일 것입니다.
김임수 온라인 기자 kimim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