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수많은 예수쟁이 중의 한 사람으로써 낭패감을 감출 수가 없을뿐더러 불교계에는 물론 시민사회에도 송구하다. 이번 사건은 일부 몰상식하고 정신병자로 추정할 수밖에 없는 한 기독교인이 저지른 돌발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몰지각한 크리스찬이 탄생하도록 한 배경에는 기독교계가 반성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기독교 외 타종교를 이웃으로 이해하지 않고 배타적 적대관계로 인식하도록 한 잘못이 기독교계 지도자들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타종교인 중에서도 특히 기독교인에 의해 저질러지는 이른바 ‘훼불사건’은 비단 이번 김천에서 벌어진 사건 뿐만이 아니다. 1982년 개종선교회라는 이름을 건 단체가 불교를 비방하는 집회를 개최하면서 “법당은 귀신의 종합청사”라고 주장한 사건이 보도되는 것을 시작으로 기독교의 이름으로 불교를 적대시한 사건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00년에는 동국대학교에 있는 불상에 붉은 페인트로 십자가를 그려넣고 ‘오직예수’라 쓴 사진이 도하 언론에 도배가 되었다. 동국대 훼불사건 전에는 제주도 원명선원에 있던 불상 750기의 목이 모두 잘린체 발견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도 언론을 타고 국민적 공분을 샀다. 더 이전으로 올라가면 승려를 사칭한 목사가 불교를 비방하면서 ‘나는 왜 승복을 벗고 목사가 되었는가’를 주제로 강연을 했던 사건도 보도되어 혀를 차게 만들었었다.
사진= 우리사회 화합과 공존을 염원하는 종교인 모임이 2014년 7월 17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인도 마하보디사원 찬불가 훼불사건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같은 훼불사건은 군부대에서도 여러차례 자행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표적인 사건은 1993년 4월1일 벌어진 부대 내 불당을 철거하면서 불상을 훼손한 뒤 자루에 담아 야산에 버린 사건이다. 불교계가 반발한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기독교에 대해 좋지 못한 이미지를 심었다.
2016년 새해가 밝은 지 몇일 되지 않아 보도된 사건도 그동안 이어진 훼불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지난 1월 17일 밤 경북 김천 시내 사찰에 들어가 불상을 바닥에 내던져 훼손하고 스님에게 마귀라고 막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종교인과 국민들에게 더욱 인상깊게 인식된 것은 이 사건을 대하는 스님의 심정이 SNS를 타고 전파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불교신문과 법보신문 등 불교계 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남성은 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스님은 “시내 포교당이라 수시로 신도들이 기도를 위해 찾아와 법당을 잠그지 않았다”면서 “경비업체 출동에 놀라 법당에 와보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다. 논리정연하게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스님은 자신의 SNS에서 “다종교 사회에 사는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리고 싶었다”면서 이 남성이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도망치지 않았고 논리정연하게 주도적으로 이야기 했으며, 절도 성당도 미신이고 우상이다 그래서 없애고 불질러야 한다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스님은 또 목사님 수녀님들과 일도 하고 교류도 많이 한다면서 “대부분은 기독교인과 목사님 수녀님이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돌출 행동을 하는 자들이 너무 많은 상처를 준다”고 덧붙였다.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다소 중립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기독교는 IS와 다르지 않다거나 단군상 훼손사건에 비견될만한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비난이 더 거셌다. 그 중에서도 “일부 무지한 개신교 목사들이 저런 파렴치한 인간을 만들었다”는 분석은 특히 기독교 지도자들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댓글을 단 많은 크리스천들은 부끄럽다 죄송하다며 용서를 구했지만 분노한 이들의 감정을 녹이기에는 불충한 듯 보였다. “예수쟁이의 한 사람으로서 수준 이하의 철딱서니 없는 예수쟁이의 짓거리라 생각하시고 부처님의 넓으신 마음으로 이해해 달라”는 읍소형에서 “돈과 권력이 있는 모든 것은 자성하지 않으면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역사인식이 담긴 분석에 이르기까지 반성의 모습은 다양했다.
사건발생 보름여가 지난 시점에서 피해 당사자인 스님은 사찰의 원상 복구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고 특히 정신적 회복에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하고 있다. 많은 SNS 친구들이 위로의 말로 용기를 주고 있다. 김민기씨가 작곡하고 양희은씨가 주로 부른 노래 작은연못은 세상의 평화와 공존이 어떻게 망가지고 깨지는가, 그 결과는 얼마나 참혹한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 날 연못 속의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김천에서 발생한 훼불사건에 딱 들어맞는 노래인지는 자신이 없지만 당시 기사와 스님의 SNS를 보면서 작은연못 노래가 떠올랐다. 훼불사건의 대부분은 서로 싸우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행패를 부리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사건이다. 행여 일방적으로 당한 피해자들이 이 말 때문에 또다시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란다. 따라서 이 노래는 피해자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의도가 없다. 가해자에게 꼭 한 번 들어볼 것을 권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우리나라는 유럽의 기독교 사회도, 온 백성이 불교를 숭배했던 고려 사회도 아니다.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다종교가 공존하며 존중하는 사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되풀이 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이같은 현실에 아파하고 자신들의 잘못임을 통감해야 한다. 이웃종교와 더불어 살기 위해 노력해온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이같은 돌출행동이 재발되지 않도록 크고 세심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한국교회에는 수많은 교단과 기관들이 있다. 타종교를 포교의 대상으로 인식하거나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건전한 교회는 타종교를 이해하고 이웃으로 더불어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교단 또는 기관 차원에서 캠페인과 교육이 병행되기를 기대한다. 한 발 앞서 목회자를 양성하는 과정에서도 이웃종교와의 공생 관계가 커리큘럼에 포함되고 사회를 살아가는 상식선에서 신도들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작은 연못에 살고 있으며, 상대를 물어 뜯어서는 결코 나도 살 수가 없다.
이우석/ 기독교 전문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