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해설의 두 ‘정상’이 만나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을까. 기자의 질문이 채 끼어들 틈도 없이 ‘알아서’ 대화를 진행하는 해설가들 덕분에 입은 편했지만 논스톱으로 진행된 그 뜨거운 현장에서 귀는 정신없이 바쁘기만 했다. 두 사람의 ‘입담 전쟁’을 지상 중계한다.
하일성, 신문선 해설위원은 만나자마자 반가운 악수를 주고받았다. 약속 시간에 지각한 신 위원이 “형, 미안해요”라며 애교(?)작전을 펼쳤고 중계방송 일정으로 초조해하던 하 위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야기 보따리를 푸짐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1 야구 vs 축구 & 해설
하일성(하) : (신)문선이 중계를 들으면 참 편해. 사람과 사람 중심의 해설이라고 해야 하나. 전술이나 전략만 떠들어버리면 금방 싫증이 날 수 있는데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단 말야.
신문선(신) : 프로 스포츠가 처음 생겼을 때 축구인들이 형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모르죠? 너털웃음에 포근한 목소리, 그리고 옆집 아저씨처럼 이런 저런 야구 이야기들을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풀어 가는데 프로축구 해설은 초창기 때 안 그랬거든요. 선수가 행여 잘못하기라도 하면 꼬집고 비판하고…. 아마 형이 없었다면 지금 프로야구가 이런 문화 콘텐츠로 자리잡을 수도 없었을 거요. 어느 누가 형의 대중성을 따라올 수 있겠어요?
하 : 너 그거 모르지? 네가 한일전에서 “골~골이에요”라며 흥분하는 바람에 그 이후부터 중계방송의 패턴이 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그 때부터 올림픽이나 육상대회에서도 중계 도중 ‘감정이입’을 하는 게 유행처럼 돼 버린 거야. 한마디로 ‘신문선 효과’였지 뭐.
▲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만나 ‘입심’ 대결을 펼치고 있는 하일성 KBS 야구 해설위원(왼쪽)과 신문선 SBS 축구 해설위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 : 너무 띄워주는 거 아냐? 허허. 같은 재료로 비빔밥을 만들어도 전주비빔밥이 더 맛있지 않냐. 근데 얼마 전에 정말 황당한 일이 벌어졌어. 대전 경기에서 등록 안 된 선수가 대주자로 나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거야. 순간 해설하는 나도 이럴 땐 어떤 규칙이 적용되는지 헷갈리더라고. 이런 경우가 한 번도 없었거든. 축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되나?
#2 이렇게 황당할 때가
신 : 축구는 그럴 수가 없어요. 시합 전에 대기심이 후보 선수까지 모두 신원 확인을 하거든요. 근데 정말 중계하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죠. 최근 올림픽대표팀의 중국 원정 경기에서 세상에, 모니터도 없이 해설했다는 것 아니유. 더군다나 중계석은 통유리로 막혀 있고 그 바로 앞좌석까지 관중들이 앉아있는 바람에 흥분한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라운드가 안 보이는 거예요. 결국 전광판 보고 중계했잖아(-.-;;).
하 : 우리도 그러고 보면 실수할 때가 참 많아. 한 점짜리 승부에선 실수를 안 해. 그런데 10-1이거나 초반에 승부가 갈려 버리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거야. 나도 모르게 엉뚱한 소릴 한다니깐. 투아웃인데 스퀴즈 번트가 나와야 한다고 떠들지를 않나, 매번 일어나는 평범한 상황인데도 말이 씹히지를 않나(^^;;).
신 : 우리는 슛 하는 걸 ‘때린다’는 표현을 쓰거든요. 지난 월드컵에서 어떤 오락 프로그램이 그런 부분만 편집을 했던데 ‘안정환 선수, 자알~ 때렸어요’라는 말이 꼭 ‘주먹으로 잘 쥐어박았다’는 뜻으로 들리겠더라고요. ‘손발이 잘 맞는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아니, 축구 선수가 무슨 손을 써’라고 항의하는 시청자들도 간혹 있죠. 야구는 안 그래요?
#3 절대 편파적일 순 없다
하 : 중계방송을 듣다가 편지나 전화로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는 팬들이 있지. 이런 팬들은 어쩌면 고마운 편이야. ‘저 ××가 틀리는 거 없나’하면서 3시간 동안 그런 것만 잡아내는 시청자들도 있다니깐. 그리고는 ‘당신 언제 이런 걸 틀렸는데 이번에 또 틀렸다’면서 그냥 시비를 걸어오는 거야.
하 : 문선이 너도 느끼겠지만 편파적이라고 하는 시청자도 있거든. 예를 들어 말야, ‘이런 상황에서 병살타가 나오면 따라가기 어렵죠’라는 말을 해. 그런데 진짜 병살타가 나오는 거지. 상황을 설명한 건데, 이렇게 되면 ‘저 ××, 편파적이네’부터 해서 별 소리가 다 나와.
신 : 그 맘 알죠. 축구에서도 골은 아름다운 것이거든요. 하지만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지게 되면 상대팀 골에 대해 ‘골이에요’라고 외친 것까지 트집을 잡더라고요. 물론 한일전 같이 국제시합에서는 편파적일 수 있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해설자가 뭐가 아쉬워서 특정팀을 응원하겠어요.
하 : 그럼. 지금 대여섯 개 기관에서 모니터링을 하는데 있을 수도 없지.
#4 스포츠해설=나이트클럽
신 : 축구도 그렇지만 야구도 예전에 비해 시청률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요. 축구에선 장사가 되는 게 국제경기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요. 야구는 어때요?
하 : 맞아. 지금 대한민국 스포츠 중계는 분명 위기 상황이야. 고정 편성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잖아.
신 : 늘려야죠. 벌써 외국 스포츠 중계에 시장을 많이 뺏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연고지를 바탕으로 한 프랜차이즈는 팬들에게 애향심을, 그리고 나아가서는 내셔널리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거든요.
하 : 최소한 주말에는 스포츠 중계하는 고정시간이 다시 생겼으면 좋겠어. 앞으로는 스포츠 중계가 지금보다 더 ‘나이트클럽화’될 지도 몰라. 가수가 누가 나오느냐, ‘수질’이 어떠냐에 따라서 나이트클럽을 선택하잖아. 중계도 마찬가지야. 누가 해설하느냐에 따라 시청자들은 입맛대로 고르려고 하겠지.
신 : 벌써 외국에서는 우리 같은 해설자가 캐스터 역할을 하는 방송도 있더라고요. 토크식 방송인 셈이죠. 얼마나 부럽든지. 지금 방송 편성은 드라마, 노래, 오락과 스포츠가 9:1 정도로 불균형인 것 같아요. 국민 정서의 밸런스를 잡아줘야 하는데 말이죠.
두 해설위원은 20년 전후로 마이크 앞에 서 왔지만 아직까지 개막식이나 굵직한 시합을 앞두고는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항상 경기 시작 3~4시간 전에 운동장에 도착해선 가슴 두근거리는 긴장감을 즐기는 것도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스포츠는 감동’이라며 한목소리를 낸 두 거장은 지금까지 마이크가 아닌 벤치나 덕아웃에 앉아 달라는 프러포즈도 여러 차례 받았다고 고백. 하지만 해설이 팬들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한다는 신념이 두 사람을 중계석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인 것 같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