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수목원 ‘동백꽃’. 완도수목원은 실내 전시시설을 제외한 야외 전시원과 난대숲길 탐방로 등을 설 연휴 무료 개방한다. 사진제공=완도군
겨울의 봄은 뭍에서부터 살포시 다가온다. 아직은 바닷바람이 차갑고 땅 기운이 서늘하지만 여수 오동도의 햇볕은 무척이나 따스하다. 지금은 섬의 주인이 동백나무이지만 예전에는 오동나무가 빽빽하여 오동도라 불렸다. 섬도 오동잎처럼 생겼다. 오동도는 3600그루가 넘는 동백 군락지지만 동백꽃은 아직 한두 송이 꽃을 피웠을 뿐이다.
그러나 산책로를 따라 섬을 느긋하게 걷다 보면 원시림 같은 동백 숲과 160여 종의 아열대성 희귀수목, 시누대 터널, 하얀 등대, 해안 절경 등 오동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오동도가 산책자를 위한 섬이라면 거문도는 여행자를 위한 섬이다. 여수에서 배로 두 시간 남짓 가야 하는 섬이다. 동도, 서도, 고도 세 개의 섬이 호수 같은 바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거문도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은 등대 가는 길의 동백 숲길이다. 그 길에선 말을 잃게 된다. 이왕이면 섬에 내려 곧장 등대로 갈 것이 아니라 거문도 최고의 산길인 ‘기와집몰랑’으로 가는 게 좋다. 그 길에서 보는 거문대 등대는 황홀경 그 자체다. 1905년에 세운 거문도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남해안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등대이다. 사전에 예약하면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운 등대에서 하룻밤 잘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 봄의 전령 전남 순천 선암사·금둔사 ‘설중매’
순천 금전산(679m) 자락의 고즈넉한 절집 금둔사에선 홍매화가 봄의 전령이다. 엄동설한에 피는 설중매인 금둔사 홍매화는 음력 섣달에 핀다고 해서 섣달을 뜻하는 ‘납월’에서 이름을 따 납월매라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설중매가 단 6그루밖에 없다. 순천의 금둔사가 품고 있는 매화가 바로 설중매이다.
금둔사 홍매화는 주지 지허 스님이 낙안읍성에서 600년 된 거목의 씨를 받아다 1985년에 심은 것들이다. 그 가운데 여섯 그루가 살아남았다. 고작 여섯 그루, 그나마도 듬성듬성 있어 근사한 군락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금둔사 홍매는 보통 3월까지 산사를 지킨다. 지금은 해우소와 설선당(說禪堂) 앞 매화가 망울을 터뜨리고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피는 금둔사의 ‘납월매’가 있다면 순천 승주에 있는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에는 600년을 넘게 산 ‘선암매(仙巖梅)’가 있다. 2007년 11월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이 된 선암사 원통전 담장 뒤에서 자라는 토종 매실나무이다. 생육상태가 좋고 넓게 퍼진 가지가 특히 아름답다.
하지만 선암사가 선암매만 유명한 곳은 아니다. 화훼사찰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봄꽃이 피어나는 사찰이다. 홍매, 백매, 청매 할 것 없이 여기저기 매화와 왕벚꽃, 백일홍, 수양벚나무 등이 3월 중순부터 5월까지 피어난다.
특히 대웅전을 지나 원통보전을 가는 길에 돌담과 어우러져서 피는 매화는 일품이다. 이 돌담의 매화를 보기 위해 봄이면 선암사는 상춘객으로 북적인다. 청매실농원보다 조금 늦게 피는 3월 중하순에 만개를 한다. 금둔사 납월매보다 3~4주 늦게 피운다.
# 동백,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섬…흑산도·홍도
남도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은 매화와 동백이다. 흑산도의 진리당숲 동백도 으뜸이지만 여행자의 마음을 끈 건 홍도의 죽항당숲이다. ‘홍도’하면 누구든 해안절경을 꼽겠지만 여행자는 당숲의 그 웅숭깊은 동백이 내내 그립다.
아직은 드문드문, 겨우 한두 송이 꽃을 피운 남도의 섬 동백. 그래도 봄은 저 아래서 묵묵히 다가오고 있다. 붉은 목덜미 뚝뚝 떨구어내는 비장함은 아닐지라도 봄이 오는 길목은 이미 열려 있다. 이 겨울에 꿈꾸는 봄에 대한 갈망이야말로 겨울을 더욱 겨울답게 보낼 수 있게 할 것이다.
섬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특히 봄이 오는 이 계절에 걷는 일은 더 각별하다. 봄기운에 몸을 푼 대지를 두 발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홍도는 섬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자 천연기념물이다. 홍도에 가면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지정된 깃대봉도 꼭 오를 일이다.
# 느려서 더 행복한 섬…전남 신안 증도
시간조차 쉬어가는 슬로시티 증도. 증도는 오랜 시간 ‘섬’이라는 특수한 단절에 있었다. 갯벌과 바다, 산과 들녘에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생명력이 넘친다. 곳곳에 현명하게 자연과 어울려 살아온 주민들의 순박함과 지혜가 담겨 있다.
이제 증도는 섬 아닌 섬이다. 다리가 놓여 뭍에서 차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섬의 아날로그 정취는 여전하다. 증도에서는 숨 가쁜 일상이 멈춘다. 너른 갯벌과 염전, 푸른 바다…. 눈 돌리는 곳마다 천연한 자연이 튀어나와 가슴 탁 트이게 만든다.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 증도는 느려서 더 행복한 섬이다. 섬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느림의 삶을 실감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염전이다. 증도에는 우리나라 단일염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태평염전이 있다. 1953년에 만들어졌고 지금도 국내 천일염 생산량의 약 6%에 해당하는 연간 1만 7000톤의 천일염이 만들어진다.
증도는 느리게 걸을 때 더 잘 보인다. 섬을 에둘러 ‘모실길’이 42.7km 길이로 조성돼 있다. 길은 보물 인양 지역을 바라보는 해안 언덕을 지나고 천일염전과 갯벌, 해송 숲을 관통한다. 걸을 수 있을 만큼 걸어보면 도시 일상에서 얻은 가슴 먹먹함이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광주-무안고속도로를 차례로 타고 북무안IC로 빠져 나와 국도 24호선을 따라 무안 해제, 지도 방향으로 가면 닿는다.
# 강진 백련사 동백…붉게 물들다
전남 강진 백련사에는 거대한 동백숲이 있다. 3㏊에 달하는 숲에 1500그루가 넘는 동백나무가 살고 있다. 숲 전체가 아예 천연기념물 151호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경내까지 꼬불꼬불한 300m 비탈길을 따라 동백나무가 한가득하다. 아직 만개하진 않았으나 군데군데 빨갛게 핀 동백꽃이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비탈길에서 샛길로 빠지면 동백나무 숲 한복판이다. 인적이 드문 이 숲은 꽃을 구경하기에도 좋지만 동백꽃이 무더기로 떨어진 꽃길을 따라 한갓지게 걷는 맛이 쏠쏠하다. 지난밤 바람이 그랬는지, 비가 그랬는지 이름 없는 부도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동백꽃이 아직은 그저 평온하기만 하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천연기념물인 만큼 드나들 때 나무에 해를 입히지 않아야 한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잇는 0.8㎞ 등산로가 조성돼 있다.
# 생태의 보고… 국내 최대 난대숲 완도수목원
완도수목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난대수목원이다. 산림박물관, 아열대온실 등의 실내 전시시설을 제외한 야외 전시원과 난대숲길 탐방로 등을 설 연휴 무료 개방한다. 2500㏊로 광대한 완도수목원은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섬과 바다가 인접해 공기 비타민이라 불리는 음이온이 풍부하고 4계절 푸르른 상록활엽수림 사이로 숲길이 조성돼 가족과 함께 걷기에 좋은 힐링 명소다.
동백나무,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황칠나무, 후박나무, 완도호랑가시나무 등 조경 및 식·약용 가치가 높은 760여 종의 자생식물이 분포한 식물 생태자원의 보고다. 푸르른 숲길을 걷다보면 소담스럽고 아름답게 핀 동백꽃을 마주할 수 있다. 봄의 전령사인 ‘복수초’도 살포시 고개를 내밀며 엄동설한에 수목원을 방문하는 탐방객에게 환한 미소로 반겨주고 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