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CEO들이 새해 위기 돌파 키워드로 저마다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꼽았다. 왼쪽부터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본무 LG 회장.
# 위기·불확실성
벌써 몇 년째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다. 올해는 중국의 경기침체와 미국의 금리인상, 유가하락까지 겹쳐 먹구름이 더욱 짙다. 수출감소와 내수부진의 이중고 역시 ‘발등의 불’이다. 성장보다 생존이 더 절실한 시기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CEO들의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위기’와 ‘불확실성’이었다.
구본무 LG 회장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 뿐 아니라 상당히 험난해 보인다”며 급변하는 산업 판도에서 위기를 예측했다. 그는 “전자, 화학 등 우리 주력산업이 신흥국의 도전을 받으면서 산업구조상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고, 혁신 기업들은 이전과 다른 사업방식으로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자칫 안일하게 대처한다면 성장은 고사하고 살아남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상운 효성 부회장은 “2000년대 말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중국의 고성장 덕분에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중국의 과도한 생산능력이 공급과잉으로 이어져 한국 기업들에게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IMF보다 더 심각한 경제위기”라고 언급했으며,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세계 경제의 저성장이 지속되고 신흥국 금융 리스크 등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올해 경제를 전망했다.
# 변화·혁신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보증수표가 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해법으로 단연 ‘변화와 혁신’을 꼽은 CEO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신동빈 롯데 회장은 “고객과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우리의 미래 성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비롯된 변화와 혁신의 노력이 절실하다”며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는 기존의 사고와 관습, 제도와 사업전략을 모두 버려 달라고 주문했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은행 창구를 찾지 않는 고객에게 친절한 창구 서비스는 큰 의미가 없고, 신용카드를 스마트폰에 탑재한 고객에게 브랜드는 선택의 기준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창조적 혁신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세상에 없던 어메이징한 콘텐츠를 선보일 것”이라며 발명가, 혁신가의 관점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것을 다짐했다. 획기적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 ‘이마트타운’이 혁신 모델의 중심이 될 전망이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사업구조, 비용구조, 수익구조, 의식구조 등 기존의 틀을 깨는 ‘구조혁신 가속화’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 고객가치
‘가성비’가 브랜드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절대가치를 추구하는 상품과 서비스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한다. ‘사치의 시대’는 가고 ‘가치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 이런 소비 트렌드를 반영하듯 많은 CEO들이 ‘고객가치’를 주요 키워드로 언급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업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상품기획, 연구개발(R&D), 생산, 마케팅 등 모든 활동들을 고객이 열광하고 감동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데 철저히 맞추라”고 주문했다.
조양호 한진 회장은 “고객이 생각지도 못한 가치를 먼저 창출해야만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모든 서비스를 고객 눈높이에 맞추는 한편 고객의 관점과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 ‘고객우선, 고객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위기를 이겨내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고객을 향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며 새로운 혁신도 고객의 가치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면서 “그룹의 진용을 갖추고 새 출발을 하는 지금 ‘손님의 기쁨’을 찾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은 새해 경영방침을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공유가치 창출’로 확정하고 “기존 가격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수동적 시장전략이 아닌, 제품의 가치 경쟁력을 통해 고객에게 다가가는 능동적 전략으로 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제품 개발과 생산, 판매 및 서비스에 이르는 모든 프로세스를 고객 중심으로 혁신하고, 수요창출형 제품을 개발할 방침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투자와 고용이 가지는 임팩트가 SK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협력업체를 포함한 사회공동체 전체에 긍정적 형태로 나타나도록 하겠다”며 사회적 가치 극대화를 강조했으며, 손경식 CJ 회장 역시 “진정성 있는 사업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CSV(공유가치창출)를 실현할 수 있도록 임직원 모두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미래 경쟁력
세계 경제는 지금 21세기형 산업구조로 빠르게 진화하는 중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초고속·초연결 시대는 기업들에게 ‘위기’와 ‘기회’라는 이중 메시지를 던진다. 과연 어떤 기업이 기회의 열쇠를 쥐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많은 CEO들이 ‘미래 경쟁력’에 대한 절박한 메시지를 던졌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혁신 사업 모델이 하드웨어의 가치를 약화시키고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으로 경쟁의 판을 바꾸고 있다”고 진단하며 ‘새로운 방식의 경쟁’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기존 세트와 부품 위주의 정보통신 중심 사업구조에서 소프트웨어와 솔루션을 위주로 한 의료·바이오, 환경·에너지, 편의·안락 등 삶의 질 향상 영역을 새로운 사업으로 추가해 ‘21세기형 사업구조’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불확실성이 높아진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그룹의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미래 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R&D 투자를 대폭 확대해 자동차 산업의 기술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 우위 핵심 기술력을 확보해 미래 친환경 자동차 시장 리더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일류 경쟁력 강화’에 모든 에너지를 결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더 이상 매출액 1위, 생산량 1위가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답습을 버리고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표준이 된 상황에 맞추어 핵심역량을 키우고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부합하도록 품질력 1위, 수익성 1위, 고객가치 1위 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웅열 코오롱 회장은 “변화의 문이 닫히기 전에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며 “미래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각자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협업하면서 초연결시대 혁신기술을 사업에 적용·실행한다면 코오롱은 미래와 성공적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 오픈 이노베이션
바야흐로 집단지성, 협업, 공유경제의 시대다. 특히 R&D분야에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기업 내·외부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식재산권을 공유하는 것이 바로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독점과 폐쇄가 아닌 공유와 개방이 21세기 성공 열쇠임은 분명하다.
지난해 신약 개발로 빅 이슈를 만들었던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은 “2016년 한미약품의 R&D는 완전히 새로운 모델로 전화될 것이다. 우리가 자체 개발한 파이프라인을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역량을 갖춘 외부 파이프라인을 도입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활발히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사장은 “지난해 한미약품이 달성한 R&D 성과를 역량 있는 연구자들과 공유함으로써 한미약품 신약 파이프라인 확대는 물론, 국내 제약 R&D 부문에서의 상생을 도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한 O2O(Online to Offline), 공유경제 등 혁신 사업모델이 경쟁의 판을 바꾸고 있다”면서 “효율성을 높여 내실을 다지면서 오픈 이노베이션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소비자가전(CE), 무선사업(IM), 부품(DS) 등 각 부문이 시너지를 창출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자”고 당부했다. 구본무 LG 회장 역시 “내부의 힘만으로 부족하다면 외부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외부 협력과 참여를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의 전략적 제휴를 강조했다.
허윤 기자
‘병신년’ 의미 따져보니 ‘재능’ 살려 크게 흥하는 해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기독교에선 예수가 33세에 부활·승천했다. 예수는 33세에 3년간의 공생애(共生涯)를 모두 끝냈으며 올해는 ‘신천기 33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33이라는 숫자를 중시했다. 3·1 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도 기독교 16명, 천도교 15명, 불교 2명으로 모두 33명이었다. 병신년에서 남녘 병(丙)은 십간(十干)의 셋째, 방위로는 남쪽, 오행(五行)으로는 불 화(火)에 해당되므로 ‘붉은색, 밝다’는 뜻이 있다. 병신년에서 신(申)은 ‘원숭이’를 의미한다. 원숭이는 사람과 가장 유사하며 짐승 중에서 머리가 좋은 동물이다. 우리 선조들은 원숭이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위해 궁궐, 탑, 무덤에 서서 서남서쪽으로부터 다가오는 재앙을 막아주고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원숭이 모양 연적, 궁궐 지붕 위에 올렸던 원숭이 조각 등을 집안에 두면 ‘가장이 승진하거나 재앙을 막아준다’는 주술적 의미가 전해진다. 원숭이는 동서양의 종교적인 영물로도 통한다. 불교에서 보면 원숭이가 ‘불자를 보좌하는 동물’로 묘사된다. 도교에서는 원숭이가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으로 나온다. 천도복숭아는 한 번 열매를 맺는 데 3000년이 걸린다는 상상의 과일이다. 인도의 신화 ‘하누마트’에서는 원숭이가 변장술에 능하고 불사의 능력이 있는 신성한 신으로 등장하며, 이집트에서는 ‘창의력과 지성’을 의미하는 신 토트(Thoth)를 상징하기도 한다. 원숭이가 ‘꾀와 재능이 많음’을 의미하고 있어 2016년은 ‘재주로 크게 흥하는 해’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병신년은 ‘자신의 재능을 살려서 그 성공을 볼 수 있다’는 의미로 ‘송구영신(送舊迎新), 변화와 혁신의 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