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논란으로 지난해 공정위에서 과징금 5300만 원을 부과받은 에코로바가 다시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에코로바 본사.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그런데 지난 1월 25일 에코로바가 또 다시 공정위 조사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날 조태일 유건 사장은 “미결제된 6억 5000만 원의 ‘문방구어음’ 등 모두 18억 7400만 원을 에코로바로부터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문방구어음은 ‘약속어음’을 뜻한다. 이에 대해 에코로바 측은 “양사가 합의한 미결제 금액은 9억 5000만 원이며 불량률(22%)이 높아 지급이 확정되지 않은 금액일 뿐이다”고 반박했다.
공정위 하도급과 관계자는 지난 1월 26일 <일요신문>에 “사건을 우선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조정위)로 보냈으며 조정이 안 될 경우 (우리가)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1일 조정위가 열리는 한국공정거래조정원 측은 유건과 에코로바에 각각 “조정절차를 종료하기로 했으며, 관계 서류를 공정위에 송부할 것”이란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공정위 조사에는 6~7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건은 2014년 한 해 동안 에코로바에 42억 7273만 원 상당의 의류를 납품했다. 이는 에코로바 전체 매출의 약 1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에코로바는 클레임을 이유로 이 가운데 7억여 원을 결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클레임은 업체 간 계약 위반 사항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을 뜻한다. 의류 업계에서는 ‘옷의 단추가 삐뚤다’ ‘바느질이 잘못됐다’ 등 발주처가 마음만 먹으면 클레임을 걸 수 있는 구조로 알려졌다.
하지만 에코로바 측은 “유건이 납품한 점퍼에 대해 고객으로부터 일주일에 20~30건 민원이 들어왔다”며 “납품 불량은 조 사장 본인도 인정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에코로바 이상철 총괄본부장 등 6명은 지난 1월 29일 서울 동작구 에코로바 본사 사무실에서 “유건 측이 만든 제품”이라며 불량 사례를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조 사장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일부 불량이 있지만 전량 수거 후 재납품했고, 에코로바가 직접 판매까지 했으니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조 사장은 “에코로바가 요구한 납품기일에 맞추기 위해 비행기로 물건을 실어 나른 적도 여러 번”이라며 “그런데 자기들 팔고 남은 걸 판매가 부진하다는 이유로 우리한테 반품 치고, 1년 전 구매한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다며 결제금을 삭감하면 우리 같은 ‘을’은 어떻게 하느냐”고 항변했다.
이와 관련해 에코로바와 협력관계였다가 법정공방까지 벌인 A 사는 지난 1월 27일 “업계에서 에코로바는 클레임으로 유명한 회사”라고 전했다. A 사 대표는 이날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보통 다른 업체는 그렇게까지 안 하는데 클레임을 과하게 매긴다”며 “(소송 당시) 에코로바 직원과 어느 정도 합의를 보면 위에서 물리고 합의를 고치면 다시 물리고, 이게 반복돼 내가 몇 억 원 손해보고 손을 털었다”고 말했다.
2010~2013년 에코로바와 매매대금 및 물품대금 지급 등으로 소송을 벌인 기업(개인사업자 포함)은 확인된 사례만 10곳이 넘었다. 이 가운데 소송가액이 가장 많은 B 사와 접촉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B 사 관계자는 지난 1월 27일 “다 끝난 일이고 더는 하고 싶은 말이 없다”고 했다. 조 사장은 B 사에 대해 “우리와도 일을 해봐서 잘 안다”며 “업계에서 당할 불이익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사장 역시 에코로바와 법정다툼을 진행 중이다. 에코로바의 권유로 ‘하자보증보험’에 가입한 게 발단이 됐다. 하자보증보험은 납품된 제품에 문제가 있을 시 3억 4000만여 원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핵심이다. 조 사장은 2014년 9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등산복 5만 9000여 벌을 에코로바에 납품했다. 이 과정에서 조 사장은 본인 명의로 된 하자보험증서를 에코로바에 전달했다.
에코로바는 이를 근거로 지난해 말께 “유건 측 제품에 문제가 있다”며 보험금 청구 절차를 밟았다. 조 사장은 법원에 보증보험 지급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결 취지는 보험금 지급 권한이 보험사(서울보증보험)에 있다는 것이다. 조 사장은 “납품 건에 클레임을 걸어 결제대금을 삭감한 뒤 이를 근거로 다시 불량품이라며 보험금을 타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에코로바는 유건을 상대로 소가 5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도 함께 제기했다.
양측은 서로 날인한 합의서를 두고도 엇갈린 해석을 내놨다. 에코로바 측은 “갑과 을이 상호 약속 이행을 전제로 책임을 기재한 것”이라고 밝힌 반면 조 사장은 “일종의 노예계약서”라고 되받았다. 조 사장은 “모든 합의서마다 민·형사상 소송 및 공정위 제소를 금지하는 조항을 삽입하고 이를 위반했을 시 채권액의 2배를 지급하기로 하는 독소조항이 있다”며 “합의서에 명시된 B2B(외상매출채권) 지급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에코로바 측은 “(소송 금지 조항은) 계약 시 통상적으로 쓰이는 문구”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지난 7월 유건은 에코로바로부터 받은 문방구어음의 결제가 미뤄지면서 금전적인 어려움에 처했다. 조 사장은 “이 어음의 결제를 받고자 일부 불합리한 조항을 받아 들였다”고 말했다. 해당 계약서에는 “문방구어음 유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라”는 내용도 있었다. 앞서 조 사장은 밀린 채무를 갚기 위해 제3자에게 어음을 양도한 상태였다.
에코로바 측은 “조 사장이 제3자에게 유통하지 말라는 합의내용을 어겼기 때문에 대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조 사장은 “결제 지연으로 내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고 읍소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에코로바의 경우 (하도급법 위반) 벌점이 많아 조정을 권장하지만 조정이 결렬되면 법령 위반 여부를 따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