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의 한 장면.
최근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급증하고 있는 동영상 가운데는 상당히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고양이가 등장하는 동영상이다. 이 동영상은 조용히 고양이의 행동만 보여줄 뿐 사실 별다른 내용은 없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고 있는 데 대한 죄책감이 완화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역사 속의 위대한 천재들 가운데 ‘꾸물거림의 대가’들은 많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약속 시간을 훨씬 넘겨 4년에 걸쳐 완성했으며, <모나리자>를 완성하는 데는 장장 14년이 걸렸다. 또한 독일의 문호 프란츠 카프카는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 일이었다. 이를테면 책상 위에 놓인 마분지에 ‘기다려라’는 글을 써놓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다면 혹시 천재들처럼 꼭 시간의 압박을 받아야지만 대작을 완성할 수 있는 걸까? 이와 관련, 심리학자인 한스-베르너 뤼커르트는 오히려 일상생활에서는 끊임없이 뒤로 미룰 경우 희열보다는 죄책감과 후회, 그리고 찜찜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해야 할 일을 안 했을 때 느끼게 되는 복합적인 감정들인 것이다.
그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는 습관이 있을까. <포쿠스>가 독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8%가 어려운 일을 뒤로 미룬 적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습관이 비단 학생들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장인들도 사정은 엇비슷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영국 지사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맡은 업무를 오랫동안 뒤로 미룬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미루는 습관이 만성적이 될 경우 경제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지난 2013년 독일의 납세의무자들이 소득세 신고 기한을 넘긴 탓에 지불한 연체료는 3억 8000만 유로(약 4987억 원)였다. 또한 중요한 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서 낭비한 시간은 하루에 세 시간꼴이었으며, 또한 1인당 매년 28일의 생산성 손실을 가져왔다.
하지만 경제적 손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심리적으로 미치는 영향이다. 일을 미루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런 행동을 스스로 멸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셰필드대학의 연구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습관적으로 꾸물거리는 사람들은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이 증가한다. 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며, 일을 몰아서 하다 보면 운동을 하는 시간이 부족해지고 영양 섭취가 불균형해지며, 병원에 제때 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미루는 습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까. 뤼커르트는 여기에는 일정한 행동 패턴이 있다고 말했다. 가령 중요한 일을 미루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충분해도 그 일을 미리 하지는 않는다. 대신 보다 쉽고 빨리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먼저 처리한다. 가령 청소나 주변을 정리정돈하는 일들이 그렇다.
이처럼 꾸물거리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성은 ‘충동적이고 주의가 산만하다’는 것이다. 즉흥적으로 새로운 자극에 반응하고 쉽게 다른 쪽으로 주의를 돌려 하던 일을 중단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현상은 주로 ‘완벽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캐나다 오타와 칼턴대학의 심리학자인 팀 파이실도 바로 그런 경우다. 그는 어떤 학생을 위한 추천서를 써주기로 했지만 오랫동안 그 일을 미루고 있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그 추천서가 학생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작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하루하루 추천서 작성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습관적인 ‘꾸물거림증’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걸까. 세계적인 연구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최고 20%가 ‘꾸물거림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심리적 장애는 197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알려졌으며, 아직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
9년 전부터 ‘꾸물거림증’에 대해 연구해온 독일 뮌스터대학의 심리학자 겸 심리치료사인 안나 회커는 “처리하지 못한 일에 대한 생각과 그에 대한 죄책감은 일상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같다”라고 말했다. 심한 경우에는 밤낮으로 아직 끝내지 못한 일에 대해 걱정하거나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성격에 결함이 있다고 여기거나 비겁하거나 나약하다며 자책하기도 한다.
그럼 직장에서는 어떤 방법이 효과적일까. 마이크로소프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인 공간의 사무실에서 홀로 일하는 사람들일수록 업무를 뒤로 미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경우 늘 바쁘긴 하지만 생산적이진 않았다. 반면 다른 팀원과 함께 사무실을 사용할 경우에는 달랐다. 이런 경우에는 약 한 시간가량 더 생산성이 높아졌다.
보다 전문적인 치료도 시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뮌스터대학의 ‘꾸물거림증 개선 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사람은 900명에 달하고 있다. 치료센터를 공동 개설한 회커는 “센터에 대한 수요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시간에 맞춰 제때 업무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꾸물거리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법을 배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참가자들에게 매일 20분씩만 일을 하고 20분이 지나면 하던 일을 멈추도록 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외에는 절대 일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자 사람들은 그 다음 날 정확한 시간에 맞춰 일을 시작했고,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집중력이 높아진 것 또한 물론이었다.
치료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회커는 “이렇게 함으로써 꾸물거림증이 확실히 줄어들었고, 업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됐다. 심리적으로도 훨씬 안정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일을 마친 후에는 스스로를 칭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가령 영화관을 가거나 자신에게 선물을 하는 방법이다.
만일 청소를 해야 하는데 자꾸 미룬다면 스톱워치를 사용해 볼 수 있다. 스톱워치를 맞춰 놓고 청소를 하면 시간의 압박을 받아 주어진 시간 안에 청소를 끝내게 된다. 이렇게 일을 빨리 끝내면 자유 시간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이밖에도 <포쿠스>가 소개한 미루는 습관을 버리는 방법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한 후 자문한다. ‘나는 왜 이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가?’ ‘이것을 통해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 ‘그 이득이 나에게는 얼마나 중요한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한 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계획이라면 삭제한다. 그리고 중요한 일들에만 가능한 온 신경을 써서 집중한다.
둘째, 머릿속의 상상 극장을 가동한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 기분이 어떨지를 미리 머릿속에 그려보면 강한 동기가 발생한다. 가령 금연에 성공했을 때 친구들은 어떻게 칭찬해줄지, 반면 실패했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본다.
셋째, 목표를 작게 나눈다.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것도 한 걸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목표를 세운 후 구체적인 개별 단계로 나눈다. 이를테면 일주일 후에는 얼마만큼, 그리고 한 달 후에는 얼마만큼을 완성할지 생각한다. 먼저 어떤 일부터 처리하고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지도 생각해놓는다. 이렇게 쪼개놓으면 아무리 큰 목표도 실현 가능하게 느껴진다.
넷째, 즉시 시작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결심한 계획은 72시간 안에 시작하지 않을 경우 거의 행동에 옮기지 못 한다.
다섯째,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 친구나 가족들에게 계획에 대해서 말한다. 실천하지 못했을 경우 그들에게 그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오히려 자극이 될 수 있다. 자신과 내기를 하는 것도 좋다. 목표를 종이에 적고, 성공할 경우 나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그리고 어떤 벌을 내릴지도 미리 적어 놓는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심판이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여섯째, 자신을 칭찬한다. 중요한 목표를 달성했다면 스스로를 축하해준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체크해보세요 나의 꾸물거림 정도는? ‘나는 얼마나 꾸물거릴까?’ 아래의 간단 테스트로 나의 꾸물거리는 습관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자. 0~5점 미루는 습관이 없다. 해야 할 일을 신속하고 별 어려움 없이 제때 마친다. 일 때문에 쫓기지 않으며, 어려운 일도 쉽게 처리한다. 6~10점 이미 한 번쯤은 해야 할 일을 미룬 적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계획을 잘 실천하며 어려운 일은 원인을 찾아내서 수정한다. 11~15점 꾸물거리는 것이 습관처럼 돼가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중요한 일을 시작하는 대신 사소한 일들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때문에 늘 일에 쫓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중요한 일들을 미루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16~20점 이미 미루는 것이 습관처럼 된 상태다. 일에 쫓기고 있다는 압박감이 있으며, 완벽주의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높아 일을 미룬다. [주] |
꾸물거림 유형 6 너무 완벽 추구해도 문제야~ # 완벽주의자형 보통 기준점이 높기 때문에 일을 뒤로 미룬다. 아무리 마감 기한이 다가와도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하며, 이를 이유로 꾸물거리는 성격을 스스로 정당화한다. # 몽상가형 장엄하고 원대한 이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상을 현실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첫걸음은 쉽게 떼지 않는다. # 걱정이 많은 형 ‘~면 어쩌지? ‘~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끝없이 자문하면서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결정을 미루기도 하며, 원하는 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쉽게 시작하지 못한다. # 반항아형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맡았을 때 태업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상사나 동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자 맡은 일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압박을 즐기는 형 중요한 일을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다가 코앞에 닥쳐서야 열정적으로 일에 매달린다. 보통 정신없이 바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주위 직장 동료나 가족들은 피곤할 수 있다. # 행동가형 늘 이리저리 바쁘지만 정작 자신의 일은 하지 않는다. 거절을 잘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 시간이 더 많다. 결국 자신의 일은 제때 처리하지 못한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