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성매매 리스트를 공개해 화제가 된 김웅 라이언앤폭스 대표. 그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강조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한 아파트 상가에 바바리코트를 입은 김웅 대표가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르튼 입술과 충혈된 눈은 그의 바쁜 일상을 짐작케 했다. 사실 기자도 처음 ‘강남 성매매 리스트 6만 6000여 명’ 소식을 접하고 김 대표에게 반신반의하며 전화를 걸었다. 쇄도하는 취재진의 전화를 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취재에 흔쾌히 응하며 보도자료와 함께 문제의 리스트를 보내줬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다. 직접 만난 김 대표는 전 KBS 보도본부 기자답게 상당한 달변가였다.
기자를 만난 김 대표는 가장 먼저 자료 입수 후 검·경에게 리스트를 넘기기까지의 불만을 토로했다. 김 대표는 “자료 검토 후에 부속실을 통해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리스트를 넘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범죄 정보를 주겠다는 시민의 제보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자기 조직만을 보호하고 자신의 역할은 저버렸다. 이것이 경찰 수사의 고질적 문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성매매 리스트 관련 취재 과정 초기에 전화 통화가 이뤄진 한 경찰 관계자는 “사라진 적 없는 게 성매매예요”라며 “시초를 다투는 급한 일은 아니다. 조금만 여유를 가져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검·경이 수사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김 대표는 “검·경이 수사에 손 못 대고 있는 사정은 뻔하다. 거기에 자기 ‘식구들’이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또한 22만 명 중에 지방유지 및 고위급 인사도 분명 포함됐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총선이 코앞이다. 이 리스트 받기를 꺼려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냐. 감당하지 못하는 ‘판도라의 상자’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는 “경찰은 현재 수사의 방향도 정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언론에서 이슈가 됐던 고위급 인사들만 불러서 조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사의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경찰은 현재 범죄 규모와 범위, 처벌 수위조차 모르고 있다”며 “검·경은 국가의 법 집행기관으로서 ‘처벌’해야 하는 마땅한 의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꼴이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성매매 리스트를 넘긴 뒤 다소 지지부진한 속도로 진행되던 경찰 수사는 최근에야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1일 성매매 리스트를 작성 및 관리한 성매매 조직 총책 김 아무개씨(37)를 성매매 알선 혐의로 입건, 출국금지했으며 현재 김 씨의 소재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2004년 제정된 ‘성매매 특별법’은 성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 피해자 및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사람의 보호와 자립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김 대표는 이러한 성매매 특별법의 방점을 ‘성매매 피해자’에게 두고 있으며 입법 취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 2002년 군산 개복동 집창촌 화재 참사가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된 계기로 알고 있다. 성매매 특별법 입법 취지는 ‘강요된 성매매’를 막자는 것으로 채무 등으로 포주에게 성매매를 강요당한 피해 여성들을 돕기 위함이었다”라며 “하지만 요새 업소녀들은 자기 의지로 성매매에 임하고 있다. 처음 법을 제정할 때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성매수자까지 처벌해 한 번에 22만 명을 범법자로 만들 법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제3자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 데 말이다. 재고할 필요가 있다”라며 “국가는 개인의 사생활에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성매매 리스트 입수 경로가 궁금했다. 이에 김 대표는 기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취재원 A 씨가 ‘딱한 사정’이 있다며 B 씨를 소개해줬다고 밝혔다. 그렇게 만난 B 씨는 지난 1월 9일 애초 C 씨가 갖고 있던 ‘강남 성매매 리스트’를 김 대표에게 넘겼다. 당시 B 씨는 “C 씨가 업주 D 씨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 이에 앙심을 품고 폭로전에 불을 붙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김 대표는 B 씨를 만나 자료를 건네받긴 했지만 아직도 B 씨의 신상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원래 소유자인 C 씨는 더욱 누구인지 알지도 못한다고 한다. 김 대표는 “오랜 기간 동안 신뢰 관계에 있던 취재원 A를 도와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황을 묘사했다.
“부상으로 은퇴한 전직 프로 농구선수가 한강을 걷고 있다가 자기 앞에 농구공이 굴러왔다. 공을 던져 달라는 아우성에 망설이다 그 농구공을 손에 쥐었을 때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해보라.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말로는 미처 다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한 “전직 기자로서 ‘살아있다’라는 느낌을 받기 위해 그 농구공을 던진 것뿐”이라고 말했다.
자료를 공개하고 나서 김 대표가 직접 접촉해본 사람은 없다. 하지만 연락 오는 사람은 많다. 김 대표는 “남편이나 지인의 번호를 찾아봐달란 사람들이 종종 연락이 온다. 전화번호를 검색해줄 순 있지만 번호를 지워줄 순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실제로 인터뷰 도중에도 ‘혹시 리스트에 내 전화번호가 있냐?’는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는 잠시 인터뷰를 중단하고 전화번호를 적으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김 대표는 “자료만 공개하고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신념을 밝혔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