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제를 돌려보겠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미제사건을 많이 조명했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오히려 더 사건을 잘 해결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경찰보다 수사력이 낫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이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경찰 수사 결과에 대한 정보를 받고 나서 거기에 덧붙이거나 문제를 지적한 거다. 오히려 경찰이 억울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서 다룬 사건이 전체적으로 사건의 대표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와 제작진들이 평소 경찰에 좀 미안하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경찰이 잘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이다. 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여줄 수밖에 없어서 미안한 감이 있다. 그래도 피해자 가족들의 절절함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 한국 경찰의 수사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체적으로 대한민국의 경찰 수사 수준이 아주 좋은 건 아니다. ‘대한민국은 치안이 좋은 나라다. 밤에 술 먹고 돌아다녀도 괜찮다’고 하는데 야간에 여성들 술 먹고 혼자 다니다가 퍽치기와 성폭행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소라넷의 ‘골뱅이녀’ 문제도 얼마나 많나. 몰카 문제도 있다. 무조건 우리가 치안이 좋다고 하는데 저는 경찰 쪽에 “제발 그런 것들을 자랑하지 말라”고 말한다. 치안이 좋다고 해도 어떤 동네는 여전히 어둡고 경찰관도 안 보이고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뉴스가 종종 나온다. 국민의 체감 수준과 많이 다르다. ”
출처 = 표창원 페이스북 캡처
- 범죄자들하고 싸우면서 평생을 살아오셨는데 이제 정치권에서 강한 상대하고 싸우게 됐다. 어느 쪽이 더 상대하기 어려운가.
“정치가 상대하기가 더 어렵다. 범죄자들은 일단 명백한 잘못을 했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범죄자들은 아무리 지능적이라 해도 일반인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택시기사는 택시 운전을 하면서 네비게이션이 없어도 길을 찾아간다. 이것을 하나의 직업적 기술이라고 한다면 범죄는 그 수준 이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이 ‘지능적이고 치밀한 범죄’라고 보도하면 국민들은 ‘그 머리로 좋은 일을 하지’라고 반응한다. 하지만 범죄자의 기술은 일반인이 평생을 걸쳐 직업을 쭉 담당한 수준에 못 미친다. 다만 그들은 법을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행하기 때문에 죄를 짓기가 더 쉽다. 조금만 집중해서 연마하면 우리도 안창따기, 밑창따기 등 소매치기 기술들을 익힐 수 있다. 우리가 안 해서 그렇지 누구든지 먹고살겠다고 하면 지금 소매치기들 보다 훨씬 더 잘한다. 수사의 한계상 전부 검거하진 못하지만 범죄자들이 힘들고 어려운 대상은 아니다.”
- 정치 쪽은 왜 더 어렵다고 생각하나.
“정치는 기본적으로 나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닌데 화를 나게 한다.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막고 고쳐야 하는데 저들은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고 한다. 둘이 주고받고 하는데 일반 국민들이 보기엔 둘 다 똑같은 놈이 되니까 훨씬 어렵다. 경찰은 범죄를 위해 증거를 수집하면 되지만 정치는 보는 사람의 시선까지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못하는 거다. 대통령이 정말 나쁘다고 얘기하고 싶지만 그렇게 얘기하면 한편에선 ‘저거 봐라, 저렇게 매일 비판만 하네, 무엄하네, 막말하네’ 이렇게 말한다. 반대로 예우를 갖추고 점잖은 비판을 하면 우리 지지층은 ‘야성을 잃었네, 뭐 먹었냐’ 이렇게 나온다. 얼마나 어렵나 균형 맞추기가….”
- 정치 참여 초창기에 비해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에 대한 비판이 늘고 있다. 유명인의 정치참여는 비판을 반드시 수반한다. 표 교수도 언젠가 욕을 먹는 순간이 올 듯하다.
“지금도 욕을 무지하게 먹고 있다. 더 이상 욕을 먹을 수 있을까. 일베와의 전쟁을 치렀는데, 일베 애들이 ‘백만 대군 공격을 받아라’고 해서 ‘해봐라’ 했더니 ‘우리 딸 스토킹 한다’는 글을 올렸다. 기본적으로 그놈들이 아무리 그렇게 해봐야 인터넷에서 노는 거지 실질적으로 피해가 없다. 신경 안 쓰면 된다. 오히려 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일베한테 얼마든지 욕하라고 얘기한다. 대신에 ‘박근혜 대통령 보고도 자기 욕하는 사람들 놔두라고 해라, 왜 자꾸 잡아놓고 체포하냐’고 말한다. 그러면 이놈들이 말을 못하는 거다. 일베를 고소할 생각도 전혀 없다. 마음대로 해도 된다. 뭐 어떤가. 욕먹으면 오래 산다. 오히려 국정원과 연쇄살인범이 날 고소했다. 오히려 그들이 저를 못 견뎌한다는 것이 증명됐다. 전 한 번도 욕을 한 적도 없고 합리적인 비판을 했을 뿐인데 고소를 했다. 제가 했던 합리적인 비판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했는지 체험했다. 누굴 고소한다면 그 자체가 제가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다. 물론 정말 상처 입은 약자들은 고소하셔야 한다. 전 솔직히 상처를 잘 안 입는다. 고소를 할 필요가 없다.”
- 청년 실업이 극심한 상황이다. 절망하는 청년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의 잘못이고 늘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라고 한다면 1966년생이다. 우리 세대는 한국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부모님들에게서 한국 전쟁의 참상과 남북의 분단에 따른 이데올로기 대립 등을 전수받았다. 이데올로기적 태도가 얼마나 나쁜지도 체험하고 살았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공산당을 가장 무섭게 그리면 상을 탔다. 그걸 깨치고 혁파하겠다고 나선 것도 친구들과 선배들이다. 우리 세대가 선대가 물려준 모순과 아픔을 후세대로 이어주지만 않는다면 자녀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상호 존중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못했을 뿐더러 자식들을 억압했다. 자녀들이 마음껏 도전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
- “억압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말인가.
“학교폭력을 예로 들겠다. 각 대학교에서 제가 강의할 때 꼭 그걸 물어본다. ‘학교 다닐 때 학교 폭력이 하나도 없었던 사람 손들어보세요’라고 하면 아무도 안 든다.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분 손들어보세요’하면 몇 사람이 손을 든다. ‘가해자도 손들어보세요’하면 몇 명이 또 든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사람이 절대 다수다. 자신들도 알고 있다. 방관자라는 것을… 지금 청년들의 절망은 지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들이 목격한 불의와 착취와 탄압과 억압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알면서도 ‘가만히 있으라’고 부모가 가르쳤다. 선생님도 가르쳤고 학교 시스템이 그렇게 가르쳤다. 청년들은 길들여져 왔을 뿐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루아침에 분노하라고 하면 분노가 되겠나.
- 청년들에게 바라는 점은.
“우리의 자식세대들 즉 청년들은 절망하고 있다. 아예 일어설 의지조차 가질 수 없는 상태다. 그런데 “분노하라” 하는 건 씨 나락 까먹는 소리다. 그런다고 분노해지나, 분노할 수 있는 여건과 분노해도 된다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고 분노하라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아프니까 괜찮다. 청춘이다?” 그게 무슨… 이 책의 저자가 저보다 연세가 높긴 분이긴 하지만 현실에 대한 뼈아픈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전 그런 소리 못하겠다. 제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결되나. 맘 같아선 ‘괜찮다, 큰일 안 생긴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 분노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젊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희생을 안 해도 된다. 희생해야만 정의롭다는 착각을 버려 달라’는 거다. 스펙 쌓고 취업 준비하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노력을 해도 되지만 그걸 한다고 해서 ‘저쪽과 나는 완전히 달라’라고 단정을 짓지 말아달라는 거다. 한 움큼만, 내가 희생하고 손해보지 않을 수 있는 여지만큼만, 관심을 보여주고 찾아와 주고 연대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보탬이 된다. 자신이 포기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면 자기 위안도 된다. 연대가 이어지면 언젠가 자신도 소리 지를 수 있는 상황이 될 거다. 너무 크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꾸 ‘중립은 없다’ 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런 것들까지 필요 없다. 중립이 어떤가.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생각을 가지고 포기하지 말고 자기 안에 있는 소리를 조금이라도 내달라 이거다.”
- 이번 총선에서 9회말 2아웃 역전승이 일어날까.
“대역전은 일어난다. 2008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 리크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보스턴과 탬파베이와의 경기 때 7회까지 0대7로 지던 보스턴이 7회 말부터 3점, 2점, 3점을 내면서 동점을 만들더니 9회말에 결국 역전했다. 역전승이 매일 일어나진 않는다. 대역전을 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가 있어야 하고 아무리 절망적이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분명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이 있으면 가능하다. 제가 더민주에 들어왔을 때 우리 당은 완전히 가라앉는 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지고 있다. 처음부터 대역전에 대한 확신과 가능성이 없었다면 저는 오지도 않았다. 언제든 대역전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오히려 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더 좋다. 역전의 드라마를 쓸 수 있는 상황이다. 야구에서도 9회말 투아웃 만루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고 싶지 않은 선수들이 있다. 부담감을 못 이기고 아프다는 핑계를 댄다. 근데 어떤 선수들은 ‘이야, 드디어 나한테 왔구나’하면서 그 상황을 즐긴다. 비난이 쏟아질 텐데도 도전을 하겠다고 한다. 저는 그런 스타일이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