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국에서 출발한 방송단 일행이 아테네 공항에서 곧장 향한 곳은 숙소인 미디어타운이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시간이 밤 12시. 오랜 비행과 장거리 이동으로 지칠 대로 지친 전 한시라도 빨리 방에 들어가 짐 풀어 놓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그런데 각종 검사와 보안 검색대를 거쳐 제 방문을 열고 들어온 시간이 새벽 2시입니다. 그러니까 미디어타운 도착 후 방에 들어오기까지 각종 검색과 진행요원들의 미숙한 일 처리로 인해 두 시간 가까이 불필요한 시간들이 소요된 거였죠.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어요.
제 방의 천정은 마감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각종 전기선들이 어지러이 얽혀 있었고 커피와 컵은 있는데 커피포트가 없는데다 그나마 한 대 놓여 있는 에어컨에선 뜨거운 바람만이 나오는 통에 에어컨인지 온풍기인지 분간이 안가는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제 방 뿐만이 아니었어요. 각각의 방마다 한 가지 이상씩 하자가 발생하는 겁니다. 화장실 물이 안 나오는 방이 있는가 하면 TV가 고장 나 있거나 아예 냉장고가 가동되지 않는 등 다양한 레퍼토리들로 방 주인들을 괴롭히며 아테네의 열기를 미디어타운에서부터 제대로 체험하게 된 거였죠.
미디어타운 본부에 하자수리를 부탁하면 보통 다섯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 게 보통입니다. 저같이 성질 급한 사람은 그리스 사람들의 늑장 대응에 매번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에요. 그들의 만만디 행동에 분통을 터트리기라도 하면 그들은 “Here is Greece”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칩니다. 할 말 없어지는 순간이죠.
그리스가 더운 나라라는 사실은 이미 다 알고 계실 거예요. 한낮의 수은주가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다보니 이곳 사람들의 낮과 밤 생활은 천양지차입니다. 낮엔 집에 숨어 있다가 밤만 되면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아테네의 번화가는 연일 불야성을 이루고 있거든요.
얼마 전에 모나스티라끼 거리를 찾았습니다. 새벽 1시가 되었는데도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더라구요. 이곳 사람들의 저녁 식사 시간은 보통 밤 10시부터 시작된다고 해요. 너무 더우니까 가급적 밤늦게 돌아다니는 거죠. 목도 축일 겸 호프집을 찾았는데 맥주 안주 내용물이 뭔지 아세요? 소금과 식초로 맛을 낸 오이와 당근이었어요. 고추장 생각이 간절해졌답니다.
이곳에 오기 전만 해도 조각 같은 그리스 남자들을 상상하며 마음을 부풀려왔는데 제 눈엔 올리브 오일에 절어 있는 뚱뚱한 그리스 남자들뿐이니 이런 비극은 또 없을 겁니다.
K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