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장수 전남 감독은 조만간 거취를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른쪽은 지난 14일 수원과의 경기 장면. 이종현 기자 | ||
용병 비리 사건 이후 가급적 말을 아끼며 검찰의 결과가 발표되기만을 기다렸던 이 감독이 그동안 자행돼 왔던 구단의 지나친 월권행위와 자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경기보다 경기장 밖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이벤트’에 신경 쓰느라 몸과 마음이 지치다 못해 피폐해졌다고 말하는 이 감독과의 ‘리얼토크’를 소개한다.
이장수 감독을 만나면 가장 먼저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다. 바로 지난번 MBC <시사매거진 2580> ‘외국인 용병 선수 영입 비리’ 방송에서 ‘주인공’처럼 화면을 장식했던 전남의 용병 까이오와의 사이에 돈 거래가 있었는지의 여부였다.
방송에선 까이오와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구단의 공식적인 발표와 선수와 선수의 브라질 에이전트가 챙긴 돈과는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밝혔고 그 배경에는 한국 에이전트 조씨와 전남의 전 사무국장 P씨와의 ‘은밀한 거래’가 이뤄졌다는 내용을 설명했다. 그 일이 터진 이후 까이오 영입과 관련해서 불편한 시선을 받았던 이 감독은 “내가 만약 단돈 10원이라도 받았다면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겠다”는 극한 표현을 써가며 자신과 그 문제와는 1%도 관련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동안 이런 의심을 받고 있는 줄 알면서도 말을 아꼈던 것은 어차피 검찰에서 조사가 진행중이고 그 결과가 발표되면 다 해결되기 때문에 미리 나서서 얘기하는 걸 자제하려 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이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날 자극하는데다 특히 구단에서까지 날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지금 심정으론 감독직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다.”
전남은 지난 3월 박성주 사장 체제로 구단 프런트 전체가 물갈이되면서 개혁과 투명성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구단 임직원들이 감독을 배제한 채 선수단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간섭과 월권 등을 남발했었다. 그런 사이에 오랫동안 잠복돼 왔던 용병 영입 비리 문제가 터졌고 이 사건 이후 구단측에선 사사건건 이 감독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며 그의 입지를 좁혀 나갔다. 박 사장을 비롯한 구단 임직원들이 이 감독을 불신하게 된 가장 큰 배경에는 바로 까이오 영입과 관련된 연루 의심 때문이었고 이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이 감독은 심한 배신감과 자괴감에 흥분을 넘어 치욕스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까이오는 내가 추천했지만 영입을 결정한 사람은 내가 아닌 우리팀의 브라질 코치들이었다. 쏘자라는 또 다른 선수도 후보로 올라와 있어 동일선상에서 두 선수를 놓고 브라질 코치들의 의견을 구했더니 쏘자보다는 까이오를 선택했던 것이다. 난 구단에 까이오를 뽑겠다고 통보했고 영입은 구단측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그 이후의 문제는 난 전혀 몰랐고 알 필요도 없었다. 구단에서 정말 날 의심한다면 난 내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를 줄 테니 조사를 해봐라. 이것은 이장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처사들이라 어이가 없고 한심하고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 감독은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할 정도로 강경한 표현을 써가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고 축구와는 무관하게 모기업 포스코에서 상임 감사를 하다 전남 축구단 사장으로 내려온 박 사장에 대해서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개혁과 투명성 모두 좋다. 나 또한 그런 취지에는 적극 동감했다. 그러나 축구단은 비리를 근절시키고 개혁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단 운영이다. 선수단 지원을 해줘야 할 구단이 정작 선수단 운영은 뒷전이고 감독의 권위를 싹 무시하고 사사건건 개입하려 든다면 감독이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축구계 안팎에선 전남 구단측의 일련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개혁과 투명성이란 그럴 듯한 전제 조건을 내세운 뒤 물증도, 확증도 없이 소속팀 감독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외부에 이 감독의 비리 연루설을 흘리며 정상적인 선수단 운영이 힘들 정도로 흔들고 있는 이유를 도통 알 수 없다는 것.
더욱이 지난 8일 광주 상무와의 경기를 마치고 구단 임직원과 코칭스태프가 가진 저녁 자리에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사장과 감독이 옆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 김종대 단장이 3명의 코치들, 직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술이 얼큰해지자 코치들을 향해 망언을 퍼부은 것. 당시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단장의 인신공격에 쇼크를 받은 여범규, 고정운, 김상호 코치는 다음날 단장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서려고 했다가 이장수 감독의 만류로 자제했다는 후문이다.
이 감독은 일단 검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의 혐의 없음이 드러나면 그때는 감독직을 미련없이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대신 코칭스태프에게 인격적인 모독을 서슴지 않았던 구단 임직원을 향해선 ‘자신의 방법대로’ 제대로 대응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 감독은 낮은 음성으로 이렇게 되뇌인다. “전남팀을 맡고나선 마음이 행복했다. 말이 통하고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중국에서보다 더 큰 시련과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는 형국이다. 나와 코치진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아있는 선수들은 무슨 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