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아테네 현지에서 이봉주가 적응훈련을 마친 뒤 땀을 닦고 있다. 아테네=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
지난 22일 저녁(현지시간) 이봉주(삼성전자)는 아테네에서 북쪽으로 약 100㎞ 떨어진 시바라는 작은 도시(우리로 치면 읍 정도나 될까)에서 역사적인 아테네올림픽 남자마라톤에 대비, 훈련중이었다. 이봉주는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 언론과의 인터뷰를 완전 차단한 채 거의 칩거 수준으로 지내고 있었다. 아테네에 모여 있는 수백 명의 한국 취재진은 애가 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인환 감독이 원천적으로 취재를 금하고 있었고, 이봉주 본인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림픽대회 초반 모 방송사와 사격대표팀이 취재 과정에서 마찰을 빚으며 ‘과잉취재가 금메달을 날렸다’는 비난여론이 있는 까닭에 기자들은 갑갑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에다 21일 저녁(현지시간) 눈부신 선전으로 국내언론에 무궁무진한 기사거리를 제공하던 축구국가대표팀이 8강에서 탈락하자 이봉주에 쏠리는 관심과 취재 열기는 더욱 심해졌지만 취재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자는 행운을 잡았다. 비슷한 또래인 이봉주와는 9년째 친구 같은 기자-취재원 사이를 유지해 왔고, 또 아테네에 온 직후 22일 저녁 만나기로 미리 약속을 잡아놨기 때문이다. 당초 이봉주의 절친한 친구인 펜싱국가대표팀의 김영호 코치와 함께 ‘격려 방문’을 하기로 했지만 김 코치에게 급한 일이 생겨 기자 혼자 렌터카에 몸을 실고 시바로 떠났다. 물론 워낙 일찌감치 잡힌 약속인 까닭에 오인환 감독도 ‘특별히’ 허락했다.
일단 시바로 가는 길을 확실히 인지해야 했다. 그리스 알파벳이 알파 오메가 시그마 등 수학기호들이 즐비한 특이한 형태이기 때문에 도로 표지판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봉주의 전훈 숙소를 알선한 교포에게 물어 길을 확인한 후 오후 4시50분, 차에 몸을 실었다.
테살로니키(축구대표팀이 경기를 치렀던 곳) 방향으로 1시간을 넘게 달리다 출구를 놓쳐 약 30km를 더 가고, 다시 길을 물어 되돌아 온 끝에 시바로 가는 길 찾기는 겨우 끝이 났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크레타섬의 미궁이라는 게 있다. 뭐 미노스의 미궁이라고도 하는데 영웅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가 준 실타래를 이용,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을 빠져나온다는 얘기다. 고고학적으로 이 유적지가 발굴돼 신화가 아닌 사실이라고도 하는데 이봉주가 머물고 있는 시바가 외지인들에게는 미궁 그 자체였다.
언덕 위의 큰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이 넓게 퍼져 있어 도대체 시야에 들어온 곳도 찾아가기가 힘들었다.
길은 좁고 구불구불했고, 또 죄다 일방통행이었기 때문이다. 이봉주와 삼성전자 소속인 탄자니아 국가대표 존 나다사야와 네 차례나 통화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이봉주가 수백미터를 뛰어나와 거꾸로 내 차를 찾아줬다. 길을 찾는 과정에서 시바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는데 아테네와는 달리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다. 또 아시아인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어 반바지만 입은 동네 꼬마 10여 명이 신기하다며 기자를 쫓아오기도 했다.
여러 언론사가 이봉주가 시바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취재를 단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허락을 득하는 과정도 필요했지만 무작정 시바로 찾아오더라도 이봉주의 숙소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바의 미로를 헤매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마음이 급했는데 이유는 뭐 이봉주를 빨리 보고 싶다기보다는 마침 그 시간 여자마라톤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봉주의 해설로 그리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올림픽 여자마라톤 생중계를 보는 재미는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이봉주는 나를 인터넷 카페로 안내했다. 그리 크지 않은 시바의 최대 번화가에 위치한 가게(간판은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였는데 대형 스크린과 컴퓨터로 TV를 볼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춰놨다.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바와 테이블이 있었고 게임에 빠진 그리스 아이들의 머리 위로 이봉주와 함께 여자 마라톤을 시청했다.
내가 가게로 들어설 때는 이미 레이스가 시작된 지 1시간20분이 경과된 후였다.
“봉실이 잘 뛰고 있니?”
“잘 뛰긴, 초반부터 사라져 얼굴 한 번 못 봤어.”
일명 ‘봉봉남매’의 오빠는 동생의 참담한 실패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전했다.
“한국선수들은?”
“다 없어. 지금 일본 애들 세 명이랑 클리프(세계기록보유자인 영국의 폴라 래드클리프), 은데레바(전 세계기록보유자·케냐)가 선두 다툼중이야. 노구치가 이겨야 하는데.”
알고 보니 이봉주는 함봉실 및 국내 선수들이 부진하자 대신 일본의 노구치 미즈키(일본)에게 성원을 보내고 있었다. 노구치와는 올해 중국 쿤밍과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함께 훈련하면서 올림픽에 대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숙소를 오가며 식사도 함께 하고, 사진도 찍는 등 가깝게 지냈다고 했다.
이봉주가 노구치를 응원하자 나다사야가 같은 아프리카선수라고 은데레바를 외쳤다. 역시 소속팀보다는 피부색이 더 호소력이 강했던 셈이다.
▲ 이봉주가 아테네 현지에서 적응 훈련을 하고 있다. | ||
숙소로 들어가던 중 축제 행렬과 만났다. 시내 중앙 교회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의 종소리가 울리더니 그야말로 시바 사람 전체가 나왔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브라스밴드를 앞세운 긴 행렬이 시바 시내를 돌고 돌았다. 이봉주가 궁금해 해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물어봤더니 오늘이 그리스정교에서 ‘성모 마리아’를 축하하는 날이라고 했다.
소화도 시킬 겸 잠시 이 대열에서 이봉주와 함께 걷다가 숙소로 들어왔다.
방 5개에 화장실이 2개인 이봉주의 숙소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구면인 찬모 아주머니가 반찬이 없다고 했지만 외국땅에서 찬밥에 밑반찬 그리고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이후 한 시간이 넘도록 이봉주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뭐 옛날 애틀랜타와 시드니올림픽 때 얘기도 하고, 노구치, 함봉실 등 여자마라톤 얘기, 아들 우석이 등 가족들에 대한 안부 등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중간에 아테네에 있는 김영호와 통화를 해 오늘 약속을 펑크낸 것을 항의하기도 했다.
오히려 이럴 때 이봉주는 마라톤에 대한, 특히 자신의 레이스에 대한 얘기는 많이 하지 않는다.
“몸은 어때?”
“어, 좋아. 내일부터 식이요법만 잘하면 돼.”
뭐 이 정도가 다다.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이봉주가 이번 올림픽 후 마라톤을 접을 생각이 없다는 것.
“우승하든 안하든 좀 생각해보려고. 일단 어렵게 몸을 만들어 놓은 만큼 베를린이나 시카고 등 기록이 잘 나오는 대회에서 한국 기록 한 번 내고 싶어. 그리고 나중에 은퇴 시기가 되면 일본으로 유학도 가고 싶고. 미순이(이봉주의 아내)가 외국 가는 걸 좋아하거든.”
언론이 마지막 레이스로 표현하는 이번 아테네올림픽 마라톤에 대해서는 “그냥 열심히 뛰어야지. 성적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 그렇게 해서 결과가 안 좋으면 할 수 없고. 뭐 그동안 여러 대회에서 신기록이나 메달 획득, 우승 등 최고의 순간을 경험해 봤고, 또 시드니에서 넘어지는 등 좌절도 많았잖아. 사람들이 이봉주를 성실한 마라토너로만 봐줬으면 좋겠어.”
그랬다. 긴장하고 흥분한 건 우리였다. 마라토너 이봉주는 자신의 서른세 번째 레이스이자 세 번째 올림픽 도전을 담담히 준비중이었다. 결과는 진인사대천명. 어차피 달리는 것을 운명으로 타고난 친구. 그저 열심히 또 한 번 달릴 생각인 것이었다.
‘맞아 금메달을 따도 이봉주고, 못 따도 이봉주지 뭐. 35세의 나이에 늦결혼으로 두 번째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선수단 남자선수 중 최고령 선수. 그가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가장 어렵다는 마라톤에 뛴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아닌가.’
오는 30일 새벽 2시10분께. 설령 이봉주가 꼴찌로 들어오더라도 힘찬 박수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테네로 돌아오는 길은 차도 막히고 중간에 길까지 잃어 그리스 농촌길을 헤매고 헤맸지만 기분은 아주 유쾌했다. 이봉주의 진짜 ‘꿈’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유병철 스포츠투데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