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1일 열린우리당 지방 순회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정동영 의장이 여수 남산동 시장을 방문해 수산물을 고르고 있다. 최근 우리당은 특권층을 비판하는 한편 서민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평이다. 국회사진기자단 | ||
열린우리당은 5·31 지방선거의 콘셉트도 ‘부패한 지방권력 심판론’에서 ‘특권과의 전쟁’으로 바꿨다. 지방권력 심판론이 여전히 유효한 슬로건이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참여정부 심판론’에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 이 깃발을 계속 들고 가기에는 부담이 커졌다.
열린우리당의 지방선거 전략기획 관계자는 “과거 한국사회의 비주류 세력들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각계의 주류세력으로 포진하게 됐다”며 “앞으로 개혁은 세력의 교체가 아니라 특권을 철폐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은 일반 대중과 서민이 아니라 기득권과 특권을 가진 일부 집단을 옹호하고 대표하는 세력”이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러한 본질을 밝히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한 공격도 철저하게 특권층과 특권의식 부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통해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대권주자를 ‘국민의 대표’가 아닌 ‘특권층의 대표’로 각인하겠다는 의도다. 열린우리당은 이 시장의 테니스 문제를 ‘황제 테니스’로 규정했고 남산 실내테니스장의 특권적 이용을 질타하면서 “잠원동 실내테니스장은 이 시장을 위한 황제테니스장”이라고 주장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 시장 일가는 특권층이 할 수 있는 모든 반칙을 다했다”며 “부인은 관용차 사용에 담당비서를 공무원으로 뒀는가 하면 본인은 황제테니스를 즐기다가 도자기까지 선물로 받았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은 또 허남식 부산시장 부인의 관용 차량과 개인비서 지원 특혜에도 화살을 돌리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던 독재자 박정희식 특권의식”이라고 몰아세웠다.
최근 국세청이 고소득 전문직과 기업형 자영업자를 상대로 고강도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도 특권층에 대한 공격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국세청은 16개 업종 422명의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1094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국세청은 또 이번 조사에서 탈세율이 높은 것으로 확인된 기업가형 자영업자 중 319명을 새로 선정해 2차 세무조사를 벌인다. 6월에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건축사 등 전문직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3차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이 이처럼 고소득층을 공격하는 표면적 이유는 증세 논의에 앞서 ‘조세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을 놓고 증세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탈세부터 막으라”는 여론의 압력을 받아왔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고소득층을 직접 공격한 배경에는 이들이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번 선거를 ‘부정한 고소득층을 대표하는 한나라당’과 ‘정직한 서민들이 지지하는 열린우리당’의 싸움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이 고소득층을 옹호하지 않을 경우 열린우리당과 ‘사회악’ 계층의 직접적인 싸움으로 몰고가 한나라당을 아예 ‘방관자’로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당이 최근 골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데도 ‘골프=특권층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다. 열린우리당은 부적절한 골프 회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해찬 총리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분권형 국정운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총리를 결국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특권과의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내기 골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국가청렴위원회는 더 나아가 ‘골프 관련 공직자 행위기준 지침’을 발표함으로써 사실상 공직사회에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주말에 기업체 임원이 낀 친구들과 골프를 쳤다가 결국 물러났다. 김만수 대변인은 이에 대해 “민정수석실 조사결과 직무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당사자가 물의를 빚은 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특권과의 전쟁’이라는 방향 설정은 올바르지만 이 과정에서 고소득층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경우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서울시장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열린우리당 서울시당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보면 강금실 전 장관은 고소득, 고학력층, 강남 지역에서 지지도가 높게 나온다”며 “특히 국세청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는 변호사 집단은 강 전 장관의 직접적인 지원 세력”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고소득 전문가 집단을 ‘특권층’ ‘사회악’으로 몰고갈 경우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선거기획사 관계자는 “과거의 사례를 보더라도 선거를 앞두고 인위적인 갈등 만들기는 실패한 경우가 많다”며 “특히 유권자들의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에 합리적인 판단에 호소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정부와 여당의 ‘특권과의 전쟁’은 성공한 전략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까.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