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개성공단 운영 전면중단 발표에 철수작업을 시작한 지난 11일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한 화물차량들이 통일대교 검문소를 지나 이동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북한은 지난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감행하며 새해 벽두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북한은 당시 이를 두고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국내외에선 현실적 정황을 놓고 볼 때 중폭핵분열탄 등 수소폭탄의 전 단계 실험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진위 여부를 떠나서 김정은은 2016년 한 해를 시작하며 남한 당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지난 2월 7일 전격 발사한 ‘광명성 4호’는 그 메시지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앞서의 핵실험이 탄두의 폭발실험이라 한다면 광명성 4호는 발사체 실험의 일환이다. 발사체에 탑재된 인공위성을 이유로 현재까지 북한은 우주공간에 대한 평화적 이용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당국을 포함해 국제사회는 이러한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우리 당국과 UN(국제연합) 등 국제 사회에선 이번 광명성 4호 발사를 두고 응당 탄두 발사체 실험의 일환으로 해석하며 대응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당국은 중국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광명성 4호 발사 이후 곧바로 싸드(THAAD) 배치 카드를 다시금 꺼내들었다. 이어 11일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던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하면서 강공에 나선 형국이다.
문제는 북한, 더 나아가 김정은의 심중이다. 이젠 여당 일각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원칙론에 대해 회의론적 시각이 일고 있는 형국이다. 이미 여당 내 소장파에 속하는 정병국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당국의 대응에 아쉬움을 표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은 실패했다”고까지 말했다. 사실상 우리 당국이 원칙론에만 얽매여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과 그 향후 효과에 대해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우리 당국의 초강경 대응에도 김정은은 꿈쩍도 안하고 있다. 아니, 되레 개성공단 남측 인원들을 추방하고 자산동결이란 강 대 강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이에 앞서 중국의 우다웨이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중재를 표방하며 입북했지만 빈손으로 귀국했다. 당장 내일도 없다는 듯이 연일 초강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달리 보자면 김정은은 남한의 경제적 지원 중단,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 악화 등 위험요소를 감수하고서라도 초강수를 뒀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김정은은 선대로부터 유훈으로 이어져온 이른바 ‘핵 병진노선’을 포기할 만큼 마땅한 대안적 카드를 쥐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 정세에 밝은 한 외교 전문가는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이번 4차까지 정확히 3년 단위로 핵실험을 감행하고 있다”라며 “김정은의 핵 병진노선은 이미 ‘변수’가 아닌 정례화 된 ‘상수’가 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전문가는 “우다웨이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이를 한시적으로나마 컨트롤해왔던 중국과의 간극이 더 멀어지면서 이젠 핵 포기가 아닌 한시적 유보전략 자체도 무의미해졌다”라며 “과거 핵카드를 두고 유보와 강수라는 변칙적인 외교술을 구사했던 김정일과 다르게 김정은은 그러한 여유와 경륜, 자신감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관계자들이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인근 통일대교 입구에서 공단에서 가지고 나온 짐을 준비해 둔 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임준선 기자
북한의 내부 사정은 이러한 김정은의 초강수 행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형국이다. 비슷한 시기 북한 군 서열 3위에 해당하는 리영길 총참모장이 비리 등의 혐의로 전격 처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직 우리 국정원이 이를 공식화한 것은 아니지만 국내외에선 신빙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 군부와 당국의 최고위급 간부들에 대한 숙청과 처형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리영길의 이번 처형도 그다지 새롭지만은 않다. 이미 지난해 4월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이 비슷한 이유로 처형됐고, 그 이전인 2012년 7월엔 군부 실세로까지 여겨졌던 리영호 전 총참모장이 불분명한 이유로 전격 숙청됐다.
숙청이나 처형뿐만이 아니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좀처럼 인사가 없었던 군 3직(총정치국장,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의 인사는 김정은 시대 들어 수시로 이뤄지고 있으며 계급장 강등 및 승진도 밥 먹듯 재현되고 있다.
또한 2013년 12월 처형된 장성택 전 당 행정부장(겸 국방위 부위원장)의 사건은 김정은 시대 간부 처형사의 정점을 찍었다. 이밖에도 지난해와 올해까지 장성택 계열을 포함해 북한 장성급 인사와 당 부부장급 인사 수백 명이 김정은의 철퇴를 맞았다는 소식이다.
이는 결국 집권 5년 차를 맞은 김정은 정권이 극도의 혼란에 서 있음을 방증한다는 분석이다. 충분한 후계수업을 받지 못하고 세워진 현 김정은 정권의 한계인 셈이다. 달리 보자면 이러한 대내외적인 공포감 조성과 폭주는 김정은 나름대로 빈약한 권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일 수 있다.
특히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독 올해 초 한 달 반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북한은 4차 핵실험과 발사체 실험, 우리 정부의 대응에 따른 개성공단 자산동결, 내부적으론 당 3직 중 하나인 총참모장 처형 등 사실상 대내외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초강수는 다 둔 셈이다.
북한은 오는 5월, 제7차 당대회 개최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대회는 북한 조선로동당의 최고 의사결정 회의다. 북한의 당대회는 체제 성립 이후 현재까지 딱 여섯 차례만 치러졌다. 마지막 당대회인 6차 당대회는 1980년 10월 14일이었다. 김정일 집권기였던 1994년부터 2011년까지는 단 한 번도 개최된 적이 없는 회의다.
만약 예정대로 7차 당대회가 올해 개최된다면 무려 36년 만의 최고위 회합이라 할 수 있다. 지난 6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공식적으로 지도이념으로 채택하며 1인 독재구도를 완성했다. 이 시기는 2세 김정일이 사실상 후계자로서 공식화되며 당대회를 이끌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보자면 7차 당대회는 곧 이전 김일성과 김정일과는 다른 김정은의 시대를 대내외적으로 선포하고자 하는 자리인 셈이다.
김정은이 올해 예정된 7차 당대회를 얼마 앞두고 유독 초강수 행보에 속도전을 낸다는 것은 분명 유심히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일각에선 앞서의 초강수 행보에 대해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공식화하는 초대형 행사를 앞두고 대내외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분위기를 잡아가는 심산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오는 5월이 주목되는 이유기도 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