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스프링캠프지에서는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웃지 못 할 해프닝들이 벌어지곤 했다. 큰 사진은 NC 스프링캠프.사진제공=NC 다이노스
#왜 미국으로 떠나나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는 보통 2월 중순에 시작된다. 1월 중순에 캠프를 떠나는 국내 팀들은 이때까지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전용 캠프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미국 구단들의 스프링캠프 시설이 밀집된 애리조나와 플로리다는 일단 날씨가 따뜻하다. 또 훈련장 안에 4면 이상의 야구장이 갖춰져 효율적으로 시간을 배분할 수 있다. 라커룸과 웨이트트레이닝장을 비롯한 부대시설도 당연히 메이저리그급이다. 국내 구단들이 최근 몇년 간 부쩍 미국으로 캠프를 많이 떠나는 이유다. 한 선수는 “미국의 본구장도 아닌 스프링캠프구장에서 훈련을 한 뒤 메이저리그에서 한번쯤은 꼭 뛰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을 정도”라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너무 멀다. 비행기를 두 번 이상 갈아타야 한다. 감독이나 프런트 고위 관계자, 일부 부상 선수를 제외하면 비즈니스 클래스를 탈 수도 없다. 또 다른 선수는 “애리조나 캠프에 갈 때 가장 힘든 점이 이코노미석의 좁은 좌석에 장시간 몸을 ‘구겨 넣은’ 채 버텨야 하는 것”이라며 “중간에 비행기를 갈아타는 경우가 많아 이동 시간만 해도 총 18시간 정도가 걸린다. 숙소에 도착하면 녹초가 돼 하루 이틀은 훈련을 정상적으로 할 수도 없다”고 털어 놓았다.
LG가 한동안 미국이 아닌 사이판으로 1차 캠프 장소를 옮겼던 이유도 이런 단점 때문이었다. 1992년 캠프 때 투수진의 리더였던 김용수가 비좁은 이코노미 석에 앉아 오래 비행기를 탔다가 그 후유증으로 허리에 이상이 생겨 시즌의 절반 이상을 날렸기 때문이다. 당시 LG 구단주는 그 소식을 듣고 “다시는 미국에 캠프를 가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스프링캠프 비용, 숙식비가 대부분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는 인원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한화는 김성근 감독 부임 첫 시즌을 앞뒀던 지난해 스프링캠프에 선수, 코칭스태프, 훈련보조요원, 구단 프런트까지 무려 90여 명의 군단을 파견했을 정도다. 다른 구단도 총 70~80명 수준으로 점점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이 정도 인원이 50일 넘게 해외에 머물려면 비용도 물론 많이 든다. 구단마다 2억~3억 원가량 차이는 있지만, 대략 15억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올해는 하필 미국 스프링캠프 기간에 달러 환율이 5년 이래 최고치로 치솟아 울상을 짓고 있는 구단들이 많다. 한 구단 관계자는 “환율에 따라 수억 원의 비용 차이가 나게 된다. 이 정도 환율이면 20억 원에 육박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 프로야구 초창기에도 돈은 1억 원 넘게 들었다. 구단들이 현지에서 필요한 돈을 환전해서 출국하다가 공항의 엑스레이 투시기에 걸려 외화 밀반출 의혹을 받은 적도 있다. 이후 그 구단 매니저는 출국 전 선수들에게 돈을 적당량씩 나눠주고 현지에 도착해 다시 회수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구단들이 스프링캠프에 돈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미국과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다니는 동안 선수들이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는 게 훈련의 능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선수들이 캠프 휴식일에 숙소 밖에 나가서 먹고 싶은 것을 사먹을 수 있도록 소정의 용돈을 지급한 구단도 있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부작용도 생겼다. 일부 선수들은 카지노나 파친코에서 게임비로 써버렸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 일부러 숙소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선수들도 나왔다. 결국 이 아이디어는 없던 일이 됐다.
언뜻 생각하면 일본보다 미국 스프링캠프에 훨씬 더 많은 돈이 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멀리 떨어진 미국은 왕복 항공료가 비싼 대신 식비가 일본보다 덜 들고, 가까운 일본은 항공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반면 식비로 더 많은 돈을 쓴다. 또 다른 구단 관계자는 “일본은 음식 값이 비싸서 호텔에 주문한 뷔페식 저녁식사가 1인당 5000~6000엔 정도 된다. 단체 할인을 적용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며 “훈련장에서 먹는 점심 식사도 인근 한인 식당이나 호텔에서 공수해 와야 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준비해도 소용이 없다. 숙식비에 전체 비용의 70%를 쏟아붓는다”고 했다. 한국 구단답게 김치 구입을 위한 부식비도 따로 책정된다. 약 500만~700만 원 정도다. 현지 호텔이 선수단에 김치를 제공하더라도 맛이 한국산과는 확실히 다르다. 출발 때부터 엄청난 양의 김치를 사서 가져간다.
#기나긴 시간, 준비물이 필요하다
2014년 1월 26일 한화 스프링캠프에서 김태균이 정근우의 등을 밟아주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한 선수는 “타지에서 오래 있으면 아무리 동료들과 함께해도 늘 외롭고 한국이 많이 그리워지는 게 사실이다. 그럴 때 와이파이조차 되지 않으면 나도 답답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도 답답하다”며 “훈련이 끝난 저녁 시간이나 휴식일에는 솔직히 할 일이 별로 없다. 근처 아울렛 쇼핑도 한두 번 하면 질린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이 현지 인터넷 사정을 고려해 외장 하드에 영화와 드라마를 여러 개 다운 받아서 간다”고 했다. 또 다른 선수도 “재미있기로 소문난 영화나 드라마가 있으면 일부러 아예 안 보고 있다가 캠프에 가서 한꺼번에 몰아서 본다. 한국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고 농담했다.
가끔은 한국에서 반가운 소포가 도착하기도 한다. 선수들의 아내나 여자친구가 컵라면과 김치, 김을 비롯한 한국의 음식들을 넉넉하게 싸서 보낸다. 그런 날은 행운의 주인공이 쓰는 방에서 잔치가 벌어지기도 한다. 또 캠프지의 태양에 맞서기 위한 선블록과 전용 클렌저는 몇 년 사이에 급부상한 1순위 필수품이다. 점점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한 베테랑 선수는 “예전에는 구단에서 비치해 놓은 값싼 대용량 바디용 선크림을 얼굴까지 대충 바르고 운동했다. 저녁에도 따로 클렌징을 하지 않고 비누로 세수만 했다”며 “요즘 선수들은 각자 자기 피부에 맞는 고급 선크림을 꼼꼼하게 바르는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얼굴이 ‘하얀’ 야구선수가 너무 많아졌다”며 껄껄 웃었다.
#웃지 못 할 사건·사고 열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스프링캠프지에서는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웃지 못 할 해프닝들이 여러 차례 벌어지곤 했다.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던 롯데 펠릭스 호세는 아직도 회자되는 ‘대형사고’를 하나 쳤다. 1999년 롯데 시절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서 벌어진 일이다. 훈련을 마친 호세가 숙소 안에 있는 온천을 찾았는데, 하필이면 남탕이 아닌 여탕으로 들어간 것이다. 태연하게 옷을 벗고 목욕탕 문을 연 호세는 탕 안에 여자들이 앉아 있는 모습에 혼비백산해 그 자리에서 뛰쳐나왔다. 한자로 ‘여(女)’자와 ‘남(男)’자를 구분하지 못한 게 사고의 원인. 자칫 큰 사건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고의가 아니다”라는 호세의 항변이 받아들여졌다.
술과 도박으로 인한 사건들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해태는 하와이에서 선수들의 음주를 막기 위해 코칭스태프가 한밤중에 ‘불심 검문’을 하다 항명 파동에 휘말리기도 했고, 두산은 하와이 전지훈련 때 정수근이 술자리에서 만취해 교민을 폭행하고 벌금형까지 받아 이듬해부터 캠프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특히 일본은 전 지역에 파친코(구슬 오락기) 영업장이 퍼져 있어서 구단과 선수 사이에 종종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적당히만 하면 문제가 없는 합법적 도박이지만, 지나쳤을 때 늘 문제가 됐다. 한 선수는 연봉이 3000만 원밖에 안 되던 시절 전지훈련에 참가했다가 파친코의 마력에 빠졌다. 수중의 돈이 다 떨어지자 같은 팀의 고액 연봉자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려 도박을 계속 했다. 귀국할 때쯤에는 석 달 치 월급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시범경기 내내 다른 지인들에게 돈을 꿔서 동료들에게 빌린 돈을 돌려 막느라 바빴다.
또 다른 선수는 손해 본 금액이 점점 커지자 급기야 훈련 도중 점심식사까지 거른 채 훈련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파친코를 하러 달려갔다. 나중에는 연습경기 중간에 사라져 문제를 키웠다. 게다가 파친코 기계에 무력으로 화풀이를 하다 가게 종업원과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이뿐만 아니다. 일부 선수들은 불편한 자세로 온종일 파친코를 하다 몸에 문제가 생겨 다음날 훈련을 걸러야 하거나 지장을 받기도 했다.
사실 이 모든 게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달리 풀 방법이 없어 벌어지는 일이다. 이 때문에 과거 한 감독은 기혼 선수의 아내와 미혼 선수의 여자친구를 4박 5일 일정으로 전지훈련지에 초대하는 묘안을 짜냈다. 낮에는 훈련을 지켜보면서 연인이 얼마나 힘들게 운동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하고, 밤에는 모처럼 데이트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의도였다. 그러나 야심차게 준비한 그 이벤트는 단 1년 만에 사라졌다. 캠프지를 찾은 아내들과 여자친구들이 한낮의 땡볕에서 지옥훈련을 하는 남편과 남자친구의 모습에 “차마 눈 뜨고 못 보겠다”고 연일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배영은 스포츠 자유기고가
‘스프링캠프’에 예약석은 없다 몸 안 만들어 놓으면 간판 선수도 아웃! 더 이상 ‘예약석’은 없다. 아무리 팀의 주축 선수라 해도 무조건 스프링캠프지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올해 한화의 스프링캠프 명단이 대표적이다. 김태균(왼쪽), 정우람 비단 김성근 감독뿐만이 아니다. KIA 김기태 감독도 LG 사령탑 시절부터 체력 테스트를 통해 전지훈련 참가 인원들을 걸러냈다. 1군과 2군 선수 전원이 참가하는데, 참가자 명단에 잠정적으로 포함됐던 주전 선수라 해도 기준에 미달하면 캠프지로 출발할 수 없다. 한화와 마찬가지로 코칭스태프가 아닌 트레이닝 파트에서 몸 상태를 평가한다. 지난해에는 주축 투수인 김진우가 러닝에서 탈락해 1군 캠프에 함께 가지 못했다. 몸살감기 후유증이었는데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1년 전 그 모습을 본 KIA 선수들은 올해 한 명도 빠짐없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물론 체력이나 부상과는 별개의 문제로 스프링캠프에 갈 수 없는 선수들도 나온다. LG는 프랜차이즈 스타인 외야수 이병규(등번호 9번)를 1군이 아닌 2군 스프링캠프로 보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세대교체의 일환이다. kt 주전 포수 장성우는 전 여자친구가 얽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파동 탓에 캠프지에 동행하지 못하고 한국에 남았다. 이뿐만 아니다. 수도권 한 구단에서는 당초 캠프 참가자 명단에 포함됐던 기혼 선수 A가 지난해 11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출발 직전 비행기 탑승이 불발됐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