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햄 파이터스의 ‘괴물 투수’ 오타니 쇼헤이가 롯데 자이언츠와의 연습 경기에서 최고 구속 157km의 공을 던지며 4연속 삼진을 기록하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놀라움과 찬사를 감추지 못했다. 미 애리조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스프링캠프장에서 투수 훈련 중인 오타니.
그런데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이 쏠린 롯데와의 연습경기에서 157㎞를 찍은 것이다. 최고 구속인 162㎞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전지훈련 중인 걸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스피드이다.
연습경기가 벌어진 피오리아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만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모두 오타니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아시아에서 실로 대단한 투수가 나타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한 관계자는 “오타니에 대해선 다수의 메이저리그 팀에서 관심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 그를 영입하려는 각 팀들 간의 경쟁이 대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샌프란시스코 소속의 한 스카우트는 “오타니는 단순히 스피드뿐만이 아니라 투구의 질적인 면에서도 좋은 내용을 선보였다. 직구와 브레이킹 볼이 정말 좋았고, 스플리터도 계속 향상되고 있다. 오타니는 좋은 투구를 할 수 있는 체격과 실력을 갖췄다. 오늘 여기 모인 모든 스카우트들이 공감했겠지만 어린 나이에 정말 뛰어난 능력을 선보이는 선수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프로야구는 풀타임 7년차를 채워야 포스팅이 가능한 한국과 달리 선수가 단 한 시즌만 소속팀에서 뛰었더라도 해당 구단의 동의만 있으면 포스팅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2013년 니혼햄에 입단한 오타니는 구단의 동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인 MLB닷컴은 12일, 스카우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해 오타니 인터뷰를 사이트 메인에 배치했다. 오타니가 아직 메이저리그에 진출조차 안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례적인 관심을 내보인 것이다.
기자는 지난 2월 4일, 니혼햄 스프링캠프장에서 오타니 쇼헤이와 직접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미소년같이 앳된 외모와 반듯한 태도, 그러면서도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기자의 질문을 경청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회인 야구를 했던 아버지와 배드민턴 선수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타니는 초등학교 시절 리틀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야구와 인연을 맺었다. 고등학교 입학할 당시 ‘일본 최고가 되겠다’ ‘일본 선수로는 최고 빠른 시속 163㎞/h를 기록하겠다’ ‘드래프트에서 기쿠치 유세이(현재 세이부 라이온스 소속, 일본 드래프트에서 6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 받았다)를 뛰어넘어 8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는 선수가 되겠다’ 등의 목표를 세웠다.
오타니 쇼헤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기 위해 스프링캠프장에 운집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왼쪽). 동료 선수들과 걷고 있는 오타니(왼쪽에서 세 번째) .
고교 시절 147㎞의 스피드를 기록했던 오타니는 점차 구속을 올리다가 3학년 때 아마야구 사상 최초로 160㎞의 공을 던지기도 했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괴물투수’로 이름이 알려졌고 당시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일본을 찾아가 오타니를 직접 만나 입단 협상을 벌였을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오타니는 2012년 일본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내 꿈은 메이저리그 진출이다. 어차피 메이저리그로 갈 것이니 날 지명하지 말아 달라”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니혼햄이 위험 부담을 안고 오타니를 1순위로 지명했다. 니혼햄 단장과 감독이 직접 나서 오타니 영입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니혼햄이 오타니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마이너리그로 직행한 한국 선수들의 힘든 실정과 다르빗슈 유가 착용했던 등번호 11번, 그리고 투타 겸업 육성 플랜 등을 제출한 것이 오타니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점이다.
오타니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니혼햄과 입단 계약을 맺은 배경에 대해 구단의 배려와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구단은 내게 투타 겸업을 약속했다. 그리고 야구 해설자로 활약하신 구리야마 감독과 오래전부터 친분을 맺고 있었는데 이젠 니혼햄 감독이 돼 내게 손을 내미셨는데 그걸 뿌리칠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오타니 쇼헤이는 투타 겸업을 선호한다. 타자로는 외야수로 활약 중이고, 마운드에선 우투수로 160㎞ 이상의 공을 뿌려댄다. 2013년 프로에 데뷔한 오타니는 투수로선 13경기에 등판, 3승 무패, 평균자책점 4.23을 기록했고, 타자로선 77경기 출전, 3홈런, 20타점을 올리며 타율 .238을 기록했다. 2014 시즌에는 투수로 24경기 등판, 11승4패, 평균자책점 2.61을, 타자로선 86경기에 출전해 10홈런, 31타점, 타율 .274을 올렸다. 일본 프로야구 양대 리그가 출범한 이후 두 자릿수 승리와 두 자릿수 홈런(11승, 10홈런)을 달성한 선수는 오타니가 처음이다. 2015 시즌에는 리그 1위인 15승 5패, 평균자책점 2.24를 기록하면서 다승왕, 최우수 평균자책점, 최고 승률 등 투수 부문 3관왕에 올랐지만 타석에선 66경기에 출전, 5홈런, 17타점, 타율 .202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나타냈다.
샌디에이고 전지훈련장에서의 오타니는 투수조에 속해 오전 훈련을 소화하다, 점심 이후에는 헬멧을 쓰고 방망이를 든 채 타석에 서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투타 겸업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오타니는 “아직은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재미있게 투타 겸업을 소화하고 있다”면서 “사실 이 부분은 내 의지보다는 구단의 방침이 중요하다. 구단이 투타 겸업을 꺼린다면 나로선 구단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나타냈다.
오타니는 일본 리그를 벗어나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도 가능하다면 투타 겸업하기를 선호했다.
“앞으로 내가 새로운 리그나 팀으로 옮기게 된다면 구단이 원하는 부분으로 맞춰갈 것이다. 물론 나로선 계속해서 공도 던지고 타격하는 걸 좋아하겠지만 말이다.”
앳된 외모와 반듯한 태도를 지닌 오타니는 사회인 야구를 했던 아버지와 배드민턴 선수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진출 시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꺼려했다. “이 부분도 내 의지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구단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 날 필요로 하는 구단이 없다면 메이저리그에 갈 수 없는 것 아닌가”라며 말을 아꼈다.
이미 니혼햄에선 공식적으로 올 시즌 이후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즉 오타니가 올 시즌을 마치고 포스팅시스템을 원한다면 허락해주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타니는 올 시즌 성적에 대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니혼햄 선수로서 우리 팀에 좋은 성적을 남기고 싶다. 지금까지의 성적은 내가 생각했던 부분에 한참 못 미친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기 전에 일본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프로 입단 후 한 번도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 우승까지 선물로 받는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160㎞의 강속구와 제구력을 겸비한 오타니 쇼헤이. 기자가 강속구의 비결을 묻자 그는 “처음부터 이런 스피드가 나온 게 아니다. 트레이닝 과정에서 여러 선배들로부터 조언을 들었고, 체중을 늘린 게 구속 증가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오타니를 니혼햄과 계약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선수 오타니의 매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어냈다.
“오타니는 야구만 좋아하는 천상 야구선수이다. 야구 외의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만약 이런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투타를 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훈련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며 여가 생활을 즐긴다. 그러나 오타니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들을 야구에 투자한다. 그것이 오타니의 특징이다.”
구리야마 감독은 오타니가 현재 이룬 성적이 그가 갖고 있는 실력의 60% 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투수든, 타자든 선수로선 모두 높은 레벨을 갖고 있는 선수라는 것.
구리야마 감독은 오타니의 메이저리그 진출 시기에 대해선 소속팀 감독과 야구 선배로서의 상반된 입장을 나타냈다.
“감독으로선 오랫동안 우리 팀에 남아서 야구를 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야구 선배로선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길 바란다. 난 오타니가 어떤 결정을 하던 진심으로 응원할 준비가 돼 있다.”
지난 시즌 연봉이 1억 엔(약 9억5000만 원)이었던 오타니 쇼헤이의 올시즌 연봉은 2억 엔(약 19억 원)이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