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가 총선을 앞두고 ‘비상대책위원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비박계 의원들이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가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1대 6.’
새누리당 최고위원 중 비박계는 김무성 대표 단 한 명이다. 서청원 김태호 이인제 김을동 이정현 안대희 최고위원 모두 친박 또는 범친박계로 분류된다. 의원들은 비박이 훨씬 많지만 적어도 지도부만 놓고 보면 친박이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비박계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김 대표가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번번이 핀잔을 받거나 집중 공격을 당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가 최고위원 회의에선 되도록 말을 아끼는 것 같다. 평소 언행과는 다르다”며 “김 대표 주위가 모두 적군 아니냐. 김 대표가 지금까지 버틴 것도 대단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라고 설명했다.
친박계가 비대위 구성 논의를 꾸준히 해왔던 것 역시 이런 배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김무성 대표 체제를 흔들기 위해선 비대위를 꾸려야 하고, 그 선봉장으론 최고위원들이 나서야 한다는 시나리오였다. 지난해 8월경 여의도를 뜨겁게 달궜던 최경환 의원 조기 복귀론 역시 그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여진다.
당시 친박 진영에선 서청원 최고위원 등이 사퇴해 김 대표를 끌어내린 뒤 최경환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발탁해 총선을 대비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011년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최고위원 등이 사퇴하면서 홍준표 대표 체제를 무너트리고 박근혜 비대위 체제를 옹립했던 것을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친박계의 은밀한 모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우선 최 의원의 국회 컴백이 여의치 않았다. 최 의원 거취를 두고 고민하던 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 방점을 두고 최 의원을 잔류시켰다.
또 김무성 대표의 스탠스 역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파동, 완전국민경선제도(오픈프라이머리) 등을 놓고 청와대와 마찰을 빚던 김 대표는 마지막 순간 박 대통령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친박과 비박 간 대립이 전면전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친박으로서도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김 대표를 몰아낼 명분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후 국지전을 반복해 오던 친박과 비박계는 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생명을 건 공천 전쟁에 들어갔다. 양보는 있을 수 없다. 양측이 모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만큼 서로를 향한 공격의 수위도 높아졌다. 친박계가 비대위 카드를 다시 꺼낸 것도 이 무렵이다. 더 이상 김 대표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인식이 그 밑바탕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와 몇몇 친박 의원들이 설 연휴 기간 여러 차례 접촉해 비대위 도입의 현실성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친박 의원은 “야권이 비대위를 꾸려 경쟁적으로 인재영입을 하고 있는 동안 김 대표는 뭐 했느냐”고 따지며 “공관위원장 임명 등을 놓고 불협화음만 냈다. ‘비대위 총선’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라는 판단”이라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선 친박계의 비대위 주장이 쉽지 않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비대위를) 도입할 정당성이 약하다. 7월로 임기가 끝나는 김 대표 체제를 바꾸려면 당원들을 설득해야하는데 뭐라고 할 것이냐”며 “총선이 4월인데 시기적으로도 너무 촉박하다. 친박도 이를 잘 알 텐데 비대위를 거론하는 것은 또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의 친박 의원 역시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비대위는 힘들 것으로 보는 게 맞다. 그러나 이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총선을 진두지휘해야할 김 대표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대권과 연관 지어 바라봐야 한다. 야권이 분열된 이번 총선은 새누리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당 자체 여론조사 등에 따르면 180석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 경우 총선을 이끈 ‘무대’는 명실상부 여권의 차기주자가 된다. 독주체제가 될 것이다. 현재권력인 박 대통령보다 미래권력인 김 대표에게 힘이 쏠릴 것은 당연지사다. 박 대통령은 레임덕이 불가피할 것이다. 또 친박계는 대선과 관련해 뒤로 밀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친박으로선 총선에서 대승하더라도 찜찜할 수밖에 없다. 비대위를 꾸리겠다는 것은 김 대표가 총선 승리로 얻을 전리품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 숨겨져 있다. 아마 총선 전망이 어두웠다면 비대위 논의는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대위를 통해 ‘포스트 박근혜’를 키우려 한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공천헌금 파문으로 위기를 맞은 당의 비대위원장을 맡아 2012년 총선에서 선전하며 대권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친박계 주변에서 최근의 비대위 논의를 가리켜 ‘어게인 2012’라고 부르는 이유다.
현재 친박계는 김 대표와 겨룰 별다른 대권 후보가 없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넘어야 할 난관이 산적해 있다. 반면 비대위원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친박 인사가 비대위원장을 맡는다면 김 대표 대항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친박계에선 최경환 의원, 안대희 전 대법관, 원외 친박 원로 인사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러한 친박계 움직임에 대해 비박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불쾌해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비상시국에서 계파 이익을 채우기 위해 당 대표를 흔들고 있다는 얘기다. 김 대표 최측근 김성태 의원은 “김 대표는 운항 중인 배의 선장인데 이렇게 계속 흔들면 격랑 속에서 결국 난파될 수밖에 없다. 정말 총선 실패를 원치 않는다면 당대표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 역시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박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했던 ‘권력자’ 발언으로 청와대와 맞붙었지만 예전과는 달리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지인들에겐 “더 이상 밀릴 수 없다. 이젠 한 번 (청와대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전의를 불태웠다는 후문이다. 이는 김 대표를 쳐내려는 친박계의 비대위 구상이 향후 친박과 비박 간 공천전쟁의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으로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차기 당대표는 누구? 최경환-유승민 “너 죽고 나 살자” 친박과 비박의 ‘3차전’은 올 7월 전당대회가 될 전망이다. 양측이 최대한 많은 의석수를 확보하려는 것도 ‘포스트 김무성’을 뽑는 전당대회와 무관하지 않다. 김 대표 후임은 차기 대선후보를 뽑는 데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친박과 비박 역시 총선 후에 치러질 전당대회 채비를 벌써부터 조금씩 갖추고 있다. 친박 진영에선 2014년 7월 서청원 의원이 김무성 대표에게 패한 것을 설욕하겠다는 각오가 역력하다. 최경환 의원, 유승민 의원 비박계는 춘추전국시대가 될 전망이다. 김무성 대표와 같은 확실한 주자가 없는 가운데 여러 후보들이 난립한 상황이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유승민 의원이다. 지난해 국회법 개정안 파동으로 ‘파문’을 당했던 유 의원이 친박계의 집중적인 공격을 이겨내고 생환할 경우 유력한 후보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권대우 평론가는 “유 의원이 대구에서 살아오면 당권으로 가는 급행열차 티켓을 손에 넣은 격이다. 아마 그래서 더욱 유 의원에 대한 고사작전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누리당의 한 비박계 의원은 “지금 최경환 의원은 TK에 머물면서 진박 마케팅 중이다. 유승민 의원이 최우선 타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의원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최 의원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박 대통령 뒤를 잇는 TK 맹주로 유 의원이 한 발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며 “이는 7월 전당대회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최 의원과 유 의원의 대결구도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