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주 문학관 누적방문객 34만 9천여 명, 대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일요신문] 종로구(구청장 김영종)는 2월 16일(화) 윤동주 서거 71주기를 맞아 윤동주 시인(1917. 12. 30. ~ 1945. 2. 16.)의 흔적이 스며있는 장소를 소개하고자 한다.
▲ 윤동주 문학관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는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 시절(1941년 5월) 세종마을(종로구 누상동 9번지) 소설가 김송(金松.1909~1988)의 집에서 5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숙생활을 하며 별헤는 밤, 자화상, 쉽게 쓰여진 시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 종로구에서는 지난 2009년 시인의 체취가 서린 장소인 인왕산 자락 청운공원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조성하여 윤동주 시인의 시비(詩碑)를 세웠고, 2012년 7월 윤동주문학관을 개관했다.
「윤동주문학관」(창의문로 119)은 흉물을 보물로 재탄생시킨 문화 공간으로 청운아파트가 철거되고 용도폐기로 버려진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활용해 윤동주 시인의 시 세계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된 것이다.
▲ 윤동주 시인의 언덕
시인이 살았던 그때 그 당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문학관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구성하고, 버려졌던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활용하여 닫힌 우물과 열린 우물로 조화롭게 탄생시켰다.
윤동주문학관은 228㎡의 규모로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은 ‘시인채’로 시인의 순결한 시심(詩心)을 상징하는 순백의 공간으로 윤동주 시인의 일생 사진자료와 참회록 육필원고 등 133점(영인본)이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은 ‘열린우물’로 용도 폐기된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해 중정(中庭)을 조성했으며, 이곳에서는 시인이 누상동 하숙 시절 바라보았던 하늘을 바라보며 시인을 느낄 수 있다.
▲제3전시실은 ‘닫힌우물’로 시인이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 형무소의 축축하고 음침한 느낌과 그당시 시인의 고독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물도 감상할 수 있다.
윤동주문학관에는 지난 한 해 동안 10만여 명이 방문했으며, 개관이후 34만 9천여 명(2016. 1. 31.기준)의 방문객이 찾으며, 228㎡가 만들어내는 감동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문학관 뒤편으로 난 나무계단 100여 개를 올라가면 또다른 윤동주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인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라는 작은 공원이 있으며, 이곳에 세워진 시비에는 시인의 대표작인 ‘서시’가 새겨져 있다.
종로구는 윤동주문학관에 해설사를 배치해 인간 윤동주의 삶과 고뇌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윤동주문학제, 윤동주문학관 개관 기념행사 등 시인의 민족사랑과 문학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윤동주문학관의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월요일은 휴관한다.
한편, 윤동주 시인의 시세계를 느꼈다면 발길을 옮겨 인왕산 자락길을 따라 20여 분 걷다보면 나오는 수성동 계곡을 지나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하숙집 터(옥인길 57)를 만날 수 있다.
하숙집 터는 현재 빌라로 변했기에 아쉬움이 남지만 대신 사진으로 1970년대 누상동 풍경을 엿볼 수 있으며, 하숙집 터가 위치한 세종마을 주변 문화예술 명소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 수성동 계곡
「수성동(水聲洞) 계곡」은 종로구가 지난 2012년 복원공사를 완료해 소나무 사이로 흐르는 맑은 계곡이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수성동’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 이곳에서는 누구나 추사 김정희의 시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 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 이상의 집
이 밖에도 한국 미술계의 거장 박노수 화백의 숨결이 살아있는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옥인1길 34), 천재시인 이상이 살았던 집터인 「이상의 집」(자하문로 7길 18)이 있으며, 추사 김정희 선생의 집터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백송이 자라던 곳인 「통의동 백송터(창의궁 터)(통의동 35-15) 등을 만날 수 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윤동주 시인의 서거 71주년을 맞아 윤동주 문학관을 방문해 시대를 아파하며 끊임없이 성찰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많은 분들이 느끼시길 바란다.”면서 “역사와 문화가 바로 종로의 정체성이기에 앞으로도 이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