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1호선 열차가 가산디지털단지역에 정차하면서 나오는 광고 방송이다. 열차가 서고 출입문이 열리면 두 번째 광고 방송이 나온다. 마리오아울렛과 W몰(구 원신월드)의 위치를 안내하는 내용이다.
2000년대 중반 마리오아울렛과 W몰은 각각 서울 금천구 가산동을 대표하는 패션아울렛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들과 ‘가리봉 로데오거리’에 나란히 입점한 ‘한라하이힐’은 지난 2014년 3월 현대백화점그룹에 운영을 위탁했다. 한라하이힐은 같은 해 5월 ‘현대아울렛 가산점’으로 리뉴얼됐다.
롯데 팩토리아울렛 가산점이 ‘한 번 더 할인’ 콘셉트로 오픈했다. 사진들은 건물 전경 및 내부 모습. 고성준 인턴기자
현대아울렛이 들어선 후 이들 세 매장은 소위 ‘가산 아울렛 빅3’를 형성했다. 가산동 아울렛시장 규모는 1조 원대로 추산된다. 여기에 최근 롯데쇼핑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패션아일랜드’를 인수(롯데 측 입장은 장기임차)한 롯데는 지난 1월 29일 ‘롯데 팩토리아울렛 가산점’을 오픈했다.
기존 빅3 구도에 롯데가 더해지면서 가산동 일대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롯데 측은 “기존 아울렛 상권과 차별화 된 모델로 승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지역 상인단체인 금천패션아울렛단지연합회(연합회)는 “골목상권 침탈”이라며 반발하는 모습이다.
롯데가 문을 연 팩토리아울렛은 지상 3층으로 구성됐으며, 영업면적은 1만 1900㎡(약 3600평) 규모다. 롯데는 개점에 앞선 1월 28일 “패션부터 리빙까지 모두 139개 브랜드가 입점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대아울렛 출점 당시 입점한 브랜드(230개)보다 한참 적다.
또 현대아울렛의 영업면적은 3만 9000㎡ 규모로 팩토리아울렛과는 3배가량 차이를 보인다. W몰은 현대아울렛과 비슷한 수준(3만 3000㎡)이며, 마리오아울렛은 자체 건물 3개 동을 사용해 영업면적만 6만㎡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측은 “마리오아울렛과 비교했을 때 우리 판매면적은 20%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적은 규모지만 롯데라는 ‘빅네임’은 기존 시장에 파문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W몰 마케팅팀 관계자는 “시장 상황과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라며 “반응이 예상 외로 클 수 있다”고 경계했다. 마리오아울렛 측도 롯데의 확장에 따른 대응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감독원 전자시스템에 따르면 마리오아울렛의 2014년 총매출은 2946억여 원, 영업이익은 119억여 원으로 나타났다. W몰 역시 같은 해 2001억여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92억여 원으로 집계됐다. 현대아울렛의 매출은 1000억 원대 중후반으로 전해진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전사 매출 대비 가산 아울렛 비중이 크지 않아 정확히 집계하거나 공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의 관심은 롯데의 가산동 진출로 전체 상권의 ‘파이’가 커질 것인가에 쏠린다. 앞서 현대아울렛의 경우는 진출 전후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2012~2014년 마리오아울렛과 W몰 감사보고서를 보면 마리오아울렛의 매출은 2012년 1677억여 원에서 2013년에는 1748억여 원으로 소폭 늘었다. 이어 2014년에는 70% 가까운 매출 신장을 보였다. W몰의 매출은 2012년 2231억여 원, 2013년 2120억여 원으로 감소세지만 당기 영업이익은 2013년(71억여 원) 대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려한 오픈 행사 없이 조용히 문을 연 팩토리아울렛은 올해 가산동에서 첫 설을 맞았다. 연매출 290억여 원으로 2014년 저점을 찍은 ‘애물단지’는 롯데 인수와 함께 부활의 기회를 잡았다. 롯데 측은 “그랜드오픈 이후 고객 집객이 늘고 있다”며 “당초 예상한 실적이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산동 한 대형아울렛 설 매출은 그 비중이 한 해 매출의 2.5~3%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이 커질 수도 있지만 롯데의 입점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여전히 존재한다. 주된 프레임은 ‘유통공룡의 지역상권 침해’다. 박재영 연합회 사무총장은 지난 6일 “지역 상인들이 일군 상권에 대기업이 숟가락만 얹은 격”이라고 비판했다. 또 롯데는 입점 과정에서 일부 미숙한 일처리로 논란을 불렀다.
팩토리아울렛의 전신인 패션아일랜드는 지난해 11월 7일 관할 지자체에 ‘대규모점포 등록신청’을 했다. 당시 패션아일랜드는 롯데와 가계약을 맺고 장기임차 전 당국에 점포 등록을 마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같은 달 26일 패션아일랜드는 신청을 취소했고, 롯데 측은 패션아일랜드를 대신해 같은 날 대규모점포 등록신청을 했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선 ‘롯데가 비난 여론을 의식해 패션아일랜드를 앞세우고 뒤로 빠져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계약 당일까지 입점 사실을 숨긴 것 또한 상도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롯데 측은 “원래 임차계약상 차주가 풀었어야 할 문제를 일정이 늦어지면서 우리가 대신한 것”이란 취지로 해명했다.
또한 연합회 측은 “인근 아울렛이 대형화되면서 가두 소매상과 시장 상인들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운영 중인 상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금천구의 폐업률은 2월 12일 기준 2.4%를 기록해 서울 지자체 가운데 2위로 나타났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폐업률(1.1~1.4%)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향후 팩토리아울렛의 성패를 가를 요소로는 제품의 품질, 가격경쟁력, 입점 브랜드 등이 꼽힌다. 팩토리아울렛은 상대적으로 저가인 ‘2년차 제품’을 위주로 판매한다는 전략이다. ‘아울렛을 한 번 더 할인하다’라는 표어가 핵심 콘셉트다. 같은 대기업이지만 현대아울렛의 전략과는 차이가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측은 “우리는 이월상품(1년차)으로 롯데와의 비교는 맞지 않다”라며 선을 그었다. W몰 측도 “서로 취급하는 상품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다만 롯데가 1년차 제품의 비중을 높인다면 ‘제품 중복 구성’으로 업체 간 출혈경쟁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연합회 측은 지적했다.
‘빅4’로 재편되는 가산동 아울렛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신경전도 감지된다. 특히 가산동의 ‘터줏대감’ 마리오아울렛 입장에서 롯데의 입점은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롯데의 전국적인 아울렛 확장은 과점 상태에 있던 가산동 상권의 희소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