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한 번 알아보시죠. 실마리가 살살 풀릴 겁니다.”
살인범은 두 시간을 혼자 떠들었다. 그러다 짧은 시간, 단 한 번 정보를 ‘흘릴’ 뿐이었다.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알 수 없었다. 형사는 그저 살인범이 지정한 곳으로 뛰어 가야 했다. 들었던 모든 이야기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그것이 ‘진실’에 가까이 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 2010년 한 국수집에서 처음 만났다. 앞서의 살인범 이 아무개 씨(51)가 체포되기 전이었다. 당시 부산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 소속이었던 김정수 부산 남부경찰서 형사 4팀 경위는 이날에 앞서 평소 알고 지내던 정보원으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람을 묻었다고 하는 남자를 알고 있는데 한 번 만나 보겠느냐”는 말이었다.
슬리퍼와 반바지 차림에 초라한 행색으로 나타난 이 씨는 말도 없이 국수를 먹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물건을 몇 개 옮겼는데, 그게 사람 같다”고 말했다. 김 경위에 따르면 ‘물건이 몇 개’라는 것은 토막을 냈다는 뜻이고 ‘옮겼다’는 건 암매장, 즉 유기를 했다는 의미다. 이 씨는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일주일 간격으로 6차례를 더 만났지만 “더 이상 묻지 말라” “말한 게 전부다”라는 식으로 김 경위의 질문에 대해 답을 피했다. 설득과 추궁이 계속 됐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이 씨는 “지난 2003년 대구에서 사라진 신 아무개 씨(여·당시 34)를 찾아보라”는 말을 남기고 종적을 감췄다.
그리고 지난 2010년 9월 10일, 주점 여종업원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토막 내 유기한 남성이 부산 서부경찰서에 검거됐다. 이 남성은 지난 2010년 9월 3일 오전 5시 30분께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한 주유소 인근 국도변 차 안에서 주점 종업원 황 아무개 씨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뒤 자신의 고향인 경남 함양군 아리랑 고개의 습지 풀숲에 사체를 매장했다. 바로 그가 이 씨였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황 씨와 함께 마산의 한 섬에 놀러갔는데, 그가 ‘돈도 없는 것이 놀러가자고 했느냐’며 무시해 홧김에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앞서의 김 경위와 만난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이 씨 검거 소식을 접한 김 경위는 본연의 마약 수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씨가 다른 경찰서에서 검거됐으니 이제 내 사건이 아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2010년 11월, 교도소로부터 김 경위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이 씨가 보낸 편지였다. “10명의 사람을 더 죽였다. 7건은 나를 배신하고 망하게 한 사람들, 3건은 나와 관련 없지만 술을 마시고 홧김에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편지 말미에는 “나를 만나러 오라”고 쓰여 있었다.
이 씨는 수감된 이후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들의 접견을 거부하고 있었다. 앞서의 숨진 황 씨에 대한 범행 수사 과정에서도 “몇 건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고 진술을 했지만, 증거가 부족해 일단 황 씨 살해 혐의만 적용돼 구속된 상태였다. 서부경찰서 입장에선 추가 수사가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 하지만 이 씨는 오직 앞서의 김 경위만 찾았다. 그가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결국 김 경위와 이 씨는 다시 마주 앉았다. 이번엔 교도소 접견실이었다. 김 경위는 이 씨에게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자술서를 써라. 있는 그대로 다 써보라”고 말했다. 이 씨는 곧바로 자술서를 써 내려갔다. 두 장을 모두 채우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고, 망설임도 없었다. 이 씨가 건넨 것은 자술서가 아닌 ‘살인 리스트’였다.
이 리스트에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총 11명의 남성과 여성이 언급됐다. 모두 ‘살해 후 유기’ ‘살해 후 매장’ 됐으며 살해 방식과 시기, 그리고 유기한 장소가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앞서의 숨진 황 씨가 11번째로 기록돼 있었으니, 아직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살인 사건이 총 10건이나 더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이 가운데에서 김 경위의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리스트 2번에 기록 된 신 아무개 씨였다. 이 씨가 검거되기 전 “대구에서 사라진 신 아무개 씨를 찾아보라”는 말이 떠올랐다. 김 경위는 리스트를 들고 나와 곧바로 신 씨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신 씨는 실제로 지난 2003년 6월 1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실종자였다. 얼마 뒤, 다시 교도소 접견실을 찾아온 김 경위를 본 이 씨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알려주는 대로만 하라”며 총 두 장의 약도를 그려줬다. 김 경위는 “약도라기 보단 본인만 알아볼 수 있는 낙서와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김 경위가 처음 찾아간 곳은 신 씨를 유기할 때 쓴 가방을 버린 장소였다. 낙서와 같은 약도였지만 김 경위가 찾아간 지역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도로변과 나무의 위치 모두 똑같았다. 여기에 이 씨의 “던지니까 가방이 열린 채 쭉 미끄러져 나무에 걸렸다”는 설명 그대로, 약도에 그려진 위치에 가방이 있었다.
부산남부경찰서.
또 한 장의 약도는 이 씨의 경남 함양의 고향 마을이었다. 그리고 앞서의 숨진 주점 종업원 황 씨의 사체가 발견된 곳이기도 했다. 김 경위는 그곳에 위치한 아리랑 고개를 넘어 산 속으로 들어갔다. 나무들을 헤치고 이 씨가 지정해 준 장소를 파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골이 발견됐다. 골절과 절단 흔적이 보였다. 국과수 감정 결과 실종된 신 씨였다. 그런데 이후 이 씨는 돌연 말을 바꾸기 시작한다. 신 씨의 유골이 발견되고 난 후 김 경위에게 쓴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제가 그렇게 흉악범인 줄 아셨습니까. 신 씨 (살인)도 제가 한 것으로는 (생각) 마세요. 그 당시 알리바이와 증거 등 재판장에서 제출하면 김 형사님 입장이 곤란할 텐데 끝까지 한번 가시렵니까. 이쯤에서 미친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하세요. 이쯤에서 끝내세요. 더 이상 하면 되돌릴 수 없을 겁니다. 제가 한 것 같으면 10년이 넘어 들춰냈겠습니까.”
신 씨를 유기한 건 맞지만, 살해는 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에 대해 김 경위는 “이 씨는 살해한 증거가 없으니 기소가 어렵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씨가 살해를 했다는 직접 증거는 없었다. 김 경위 조사에 따르면 이 씨와 신 씨는 동거 관계였다. 가족과 이웃 주민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실종 당일, 신 씨는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잠시 나갔다 온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오지 않았다. 신 씨 가족과 이웃들은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평소 신 씨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던 동거남 이 씨였다.
하지만 당시 신 씨가 살던 집 인근 경찰서에서 실종 수사에 나섰지만, 당시 이 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지난 2004년 8월 5일, 스스로 경찰서에 자진 출두했다. 그는 신 씨 실종 당시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휴대폰 기지국 위치 추적과, 통화내역을 조사했지만 신 씨가 전화를 받은 시각 통화한 흔적이 없는 등 범죄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무혐의로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여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 대부분 자료는 확인 불가능하거나 폐기된 상태였다.
그런데 김 경위는 여기서 수상한 점을 발견한다. 이 씨의 통화 내역을 보면 지난 2003년 6월 1일 오전 2시까지 신 씨와 통화를 했다. 매일 10통이 넘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확히 신 씨가 사라진 이후에는 전화가 없었다. 또한 6월 8일, 이 씨는 신 씨의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 주인은 김 경위에게 “이날 이 씨로부터 ‘6월 1일에 신 씨와 만났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이 씨가 2003년 5월 27일부터 6월 1일까지 같은 곳으로 전화 걸었던 흔적이 발견됐다. 신 씨 집 주변에 위치한 중국집이었다. 여기에 김 경위의 주변 탐문 과정에서 이 씨에게 외상을 줄 만큼 자주 들렀던 가게의 주인도 나타났다. 그렇게 이 씨가 신 씨 실종 당시, 그녀 주변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에 이 씨가 신 씨와 동거하기 전 결혼해 함께 살던 부인 김 아무개 씨를 지난 2002년 집에서 흉기로 위협하고 폭행했음이 밝혀졌다. 심지어 방문에 대못을 박아 감금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성을 상대로 상습적 범행을 저질러 온 이 씨였다.
하지만 김 경위의 수사망이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이 씨는 완강히 살해 사실을 부인했다. 직접 증거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다른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내가 택시 회사에 있던 시간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건을 조합하면서 수사해 봐라. 나는 전국구다”라며 “이것부터 풀어 봐라. 신 씨 사건은 가장 마지막에 (기소)하자”고 말했다. 이 씨가 김 경위에게 또 다른 게임을 꺼내 놓은 것이다.
김 경위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씨가 주는 정보만 따라가면 끌려 다니는 게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 경위는 최초 이 씨가 작성한 리스트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이 씨가 김 경위에게 보낸 자술서를 그대로 옮겨 도표화했다. 김 경위에 따르면 1번 5번 9번 10번은 하나의 사건을 네 개로 쪼개 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살인범 이 씨가 시신을 유기했다는 장소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으로 혐의 입증이 어렵다.
‘택시 할 때’라는 문구가 있는 나머지 4개의 리스트는 1번과 5번, 9번, 10번이다. 기본적인 공통점은 연령대가 다르지만 모두 여성 피해자다. 또한 이들 네 명을 만난 장소와 유기 장소도 비슷하다. ‘연산 로터리와 교대 부근은 버스 한 정거장 거리의 가까운 곳’에서 만났으며 모두 ‘낙동강 서쪽지역 갈대숲과 ◯◯지구 수풀’에 사체를 유기했다고 밝힌 것.
이에 대해 김 경위는 “이 씨는 여러 건 (살인)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리스트를 작성했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하나의 사건을 여러 가지로 쪼개 놓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택시 운전을 할 때 저질렀다고 기술한 번호들이 그렇다. 결국 1번, 5번, 9번, 10번은 하나의 살인 사건을 네 개로 쪼개 놓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김 경위가 여기까지 ‘퍼즐’을 맞추자, 이 씨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이 씨는 “연산동에서 술 취한 여성 손님을 택시에 태웠는데 구토를 했다. 항의하자 여성이 ‘세차비 주면 될 거 아니가’라며 10만 원 수표 던지고 화를 냈다. 그래서 홧김에 차량에서 폭행 후 살해했다. 인근 마을 묘지에서 시신을 토막 냈고, 낙동강 갈대숲에 유기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시신 유기 장소를 선심 쓰듯 그려주기도 했다. 낙동강 서쪽 지역과 한 마을의 진입로, 마지막으로 해태상과 대리석이 서 있던 묘지까지 총 세 장의 약도였다. 그런데 김 경위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참 운도 좋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약도 속 마을을 찾아냈지만, 그때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여성의 시신을 매장했다고 말한 지역은 다 파헤쳐져 있었다.” 현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10개의 미제 살인사건 리스트에서 5개가 남았다. 김 경위는 지난 2012년과 2013년 두 번에 걸쳐 정황이 비교적 뚜렷한 신 씨 사건(2번 리스트)과 7번 리스트에 적힌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7번 리스트의 살인 사건은 흉기로 목을 찔러 사람을 죽인 뒤 지하계단에 밀어 유기한 사건이다. 당시 수사에서 범행에 사용된 흉기와 족적이 발견됐지만 범인의 DNA 등이 발견되지 않아 미제로 남은 사건이었다. 우선 사건 발생 장소가 당시 이 씨 거주지 부근이었다. 또한 이 씨가 “교도소 세탁소에 당시 입었던 옷과 신발을 맡겼으니 찾아보라”고 말했는데 실제 운동화 밑창의 문양과 당시 사건 현장 족적 사진이 비슷했다. 이를 바탕으로 해당 사건에 대해서도 송치가 이뤄졌다.
이후 열린 재판에서 법원은 이 가운데 지난 2003년 신 씨 살인만을 유죄로 판단했다. 신 씨가 이 씨의 전화를 받고 나가 실종됐으며, 이 씨가 살해 당일 이후부터 A 씨와 연락을 끊은 것을 볼 때 신 씨의 실종과 사망이 이 씨와 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살해 수법이 잔혹했을 것으로 보이고, 자백과 번복으로 수사기관을 농락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지난 1월 24일,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다만 7번 리스트의 살인 사건은 직접 증거가 없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 씨의 자술서에 담신 11개의 살인 리스트 가운데 두 개는 유죄 판결이 나왔고 한 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나왔다. 또한 1개는 허구, 4개는 동일 사건을 쪼개 놓은 하나의 사건으로 시신을 유기한 장소가 공사 중이라 혐의 입증이 힘들다. 그리고 아직도 3개의 리스트, 다시 말해 세 건의 살인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당연히 김 경위의 수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무기징역이 선고 됐지만, 아직 리스트에는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 남아 있다. 쉽지 않은 이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