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귀국한 서재응이 내년 시즌을 위해 힘차게 뛰고 있다. 아직은 메이저리그에서 더 뛰고 싶은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기아행’ 가능성을 보도한 기자에겐 장난스런 투정을 늘어놓기도 했다. 임준선 기자kjlim@ilyo.co.kr | ||
인터뷰를 잡기 위해 서재응과 전화 통화를 할 때도 ‘할 말이 없다’며 정중히 거절 의사를 나타냈다. 그러나 ‘소주나 한 잔 하자’는 제안에 어렵게 마음을 연 그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꾸 기사화되는 ‘기아행’에 대해 처음으로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지난 1일 속초에서 서재응을 만나 복잡다단한 그의 단면을 들여다보았다.
나이스가이는 작업중
운동장 한켠에 서재응이 여학생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뭐하는 중이냐고 물었더니 ‘팬 관리’를 하고 있단다.
속초에서 훈련한 지 불과 5일밖에 안 되었는데 서재응의 행동은 학교 학생들과 격의 없는 친분을 다지며 허물없는 오빠 동생의 관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야구부 후배들에게는 속초상고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심성의껏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서재응은 파이팅이 넘쳐났다.
잠시 후 학교 부근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속초에 왔으니 회를 먹자는 제안에 여기 온 이후 5일 동안 내리 회만 먹다 보니 입에서 비린내가 난다는 말에 고깃집을 찾았던 것. 오랜만에 ‘취중토크’를 하게 됐다. 서재응, 취재기자, 사진기자 셋이서 소주 첫잔을 원샷으로 해치우는 순간, 왠지 조짐이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기자들과 관계 어려워요
좋고나쁨이 분명한 서재응은개성 있는 성격으로 인해 손해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활짝 열어 속을 다 털어놓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냉정하리만치 빗장을 걸어 잠근다.
“어느 신문사에 학교 선배님이 한 분 계셨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분이 쓴 글을 보면 유독 날 까대는 거야. 그러다 작년 시즌 때 그 선배를 미국에서 직접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물었죠. ‘선배님, 저 인하대 후뱁니다. 기사는 좋게 못 써줄 망정 왜 이렇게 까댑니까. 내가 잘못한 게 뭡니까’하고 말이야. 그렇게 말했는데도 또 까대대. 특파원 형들은 그래도 선수 편에서 기사를 쓰거든. 내가 개박이 나든 어쨌든 이건 내 잘못이 아냐. ‘타자가 잘못했네, 감독이 맛이 갔네, 아침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네’ 하면서 날 옹호해 준다구. 고맙죠. 내 잘못을 알면서도 우회적으로 표현해 주니까.”
서재응의 성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종종 ‘싸가지가 없다’며 그를 비판한다. 그러나 서재응은 성격만큼은 바꿀 수 없다고 강변한다. 좋고 싫은 걸 어떻게 감출 수 있냐면서.
“우리 ‘대부’(아버지) 성격을 그대로 닮았대요. 아버지가 한자존심 하시거든요. 말이 나와서 하는 건데요, 기자들과 관계가 참 힘들어요. 가까이 하기도, 멀리 하기도 어려우니까요. 마음을 활짝 열고 대하면 꼭 그걸 역이용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몇 번 상처 받은 적이 있었죠.”
스포츠신문 제목에 ‘광분’
지난해 댈러스에서 벌어진 텍사스전에 서재응이 선발로 나간 적이 있었다. 당시 박찬호는 벤치에서 서재응의 투구 폼을 구경하는 처지였다. 7이닝 동안 2점을 내주고 의기양양하게 내려온 서재응은 그날 승리 투수가 됐다. 다음날 한 스포츠 신문 1면에 마치 서재응이 말한 것처럼 ‘찬호형 나처럼 던져봐’라는 제목이 실렸다. 서재응은 당시 이 신문 제목을 보고 ‘광분’했다고 전한다.
“난 찬호 형 신인 때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찬호 형 잘 던질 때는 나보다 이백배 더 나았죠. 찬호형이 약간 부진해서 그런 것일 뿐인데 의도적으로 날 부각시켜 놓고 찬호 형을 뭉개놨더라구요. 진짜 곤혹스러웠어요. 내가 마이너리거였을 땐 찬호 형이 왜 그렇게 언론과 거리를 두는지 이해를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절감해요. 찬호 형의 심정을.”
‘국내 복귀’ 즉흥적 발언 아냐
지난 11월22일 인천공항 출국 게이트를 빠져나가기 직전의 서재응과 이주현씨와의 대화 내용이다. “자기야, (기자들이) 많이 나왔을까?” “기대하지 마라. 분명히 얼마 안 나왔을 거야. 많아야 서너 명이야. 걱정마라. 같이 나가자.”
두 사람의 예상대로(?) 서너 방의 플래시가 터진 가운데 서재응은 서너 명의 기자들 앞에서 귀국 인터뷰를 가졌다. 70여 명이 몰려들었던 작년 입국 때와는 천양지차의 분위기.
“아버지가 실망을 많이 하셨나봐요. 난 마음을 비웠는데 그래도 아버진 좀 다르셨겠죠. 그러고보니 누나(기자)도 거기에 있었네. 누나가 민망한 분위기를 바꿔주려고 도착 예정 시간보다 일찍 들어왔다며 비행기 탓을 했지만 내가 좋은 성적을 갖고 귀국했더라면 시간 탓하는 기자들 없었을 거예요. 누굴 뭐라 하겠어요. 성적 못낸 내 탓이지 뭐.”
비로소 오늘 만남의 하이라이트, 그 질문이 들어갈 순서가 됐다.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공항에서 국내로 복귀할 수도 있다는 얘기, 왜 했어요? 그렇게 말한 이유가 뭐예요?”
“준비되지 않은 즉흥 멘트는 아니었어요. 물론 더 조심했어야 된다는 지적은 달게 받겠어요. 그렇다고 완전히 ‘뻥’은 아니에요. 50 대 50이니까. 전 이제 결혼을 해야 해요. 결혼을 하면 아버지쪽 가정도 중요하지만 나와 주현이가 꾸려가는 가정 또한 중요해요. 그런데 이렇게 (메이저와 마이너리그를) 들락날락해서는 미국에서 자리잡긴 힘들어요. 그럴 바엔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도 국내로 컴백하는 게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해 봤어요.”
지금은 아버지가 반대
서재응의 국내 컴백 발언 후 ‘기아행 시나리오’가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과연 서재응은 기아로 복귀하는 데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지금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아버지가 반대하세요. 재작년 겨울에 들어왔을 땐 다음해 메이저리그로 올라가지 못하면 기아 복귀를 염두에 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요. 올해는 내가 컴백을 희망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미국에) 남기를 바라세요. 이왕 한 거 목표를 이룬 다음 돌아오라고.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상하셨어요. 누나(기자) 때문이에요. 누나가 <일요신문>에 집안 형편 운운하며 서재응이 국내 컴백한다고 썼잖아요.”
아예 대놓고 뭐라고 한다. 실제로 서재응의 아버지 서병관씨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데 대해 무척 속을 끓였다는 후문이다. 자존심 때문이다. 특히 아들의 중요한 진로가 집안 문제로 좌지우지되는 듯한 모양새조차 견디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요. 지금 솔직한 심정은 미국에서 더 해보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만약 선발에서 밀려나 마이너로 내려가면 정말 힘들 것 같아요. 마이너는 정말,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거든. 그래서 어려워요, 결정하기가. 내일(2일) 광주에 가면 며칠 있다가 기아 관계자를 만날 거예요. 아직까지 구체적인 얘기를 주고 받은 게 없어 뭐라 할 순 없지만 일단 만나서 서로의 생각을 정확히 듣고 말해야죠. 지금 당장이든, 몇 년 후가 되든, 내가 돌아올 곳이기 때문에 입장 정리를 명확히 할 필요는 있어요.”
다시 한번 정확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어느 쪽으로 더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지 물었다. 서재응은 6:4라고 했다. 6이 미국이고, 4가 한국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메츠에서 자신을 놔주지 않는다면 이런 공상과 걱정은 한낱 시간 낭비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아가 날 절실히 필요로 할 때 올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근데 현실적으로 이뤄지기가 힘들 것 같아요. 소속팀의 입장도 그렇고, 다른 팀의 트레이드 문제도 있고, 또 한국으로 들어올 경우 내 몸값 문제도 있을 것이고…. 한창 운동할 시기에 이런 문제로 얽혀서 고민하긴 싫어요. 빨리 털어 내야죠. 미련도 없애고. 조만간 결정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