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21억 원에 낙찰된 달 항아리. 일본인 수집가가 50년간 소장하던 작품으로 낙찰자는 한국인이었다. 사진제공=서울옥션
‘달 항아리’는 보름달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흰 바탕색에 형태가 둥글다. 하지만 보름달만큼 둥글지는 않다. 좌우대칭이 맞지 않는다. 높이가 보통 40∼50㎝에 달하는 달 항아리는 흙으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 이어 붙였다. 그렇다보니 접합 부위가 약간 뒤틀리게 되고 불완전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것이 백자 달 항아리의 매력이다.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풍만하고 넉넉한 멋을 지녔다.
달 항아리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왕가의 그릇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의 분원관요(分院官窯)에서 만들었으나 점차 양반과 중산층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음식을 담거나 젓갈 등을 숙성시키는 데 쓰였다. 그 많던 달 항아리가 현재 세계적으로 고작 20여 점밖에 남아 있지 않다. 국내에는 국보 3점(우학문화재단·용인대학교 소장 국보 262호, 삼성 리움미술관 소장 국보 309호, 국립고궁박물관 국보 310호)과 보물(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1437호, 개인 소장 보물 1438호, 디 아모레 뮤지엄 소장 보물 1441호)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달 항아리(보물 제1437호).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나머지는 국외에 있다. 먼저 런던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달 항아리는 ‘영국 스튜디오 도예의 아버지’로 불리는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 1887-1979)가 1935년 서울의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했다. 그는 조선시대 달 항아리에 매료되어 한국을 떠날 때 “행복을 안고 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항아리는 여러 경로를 거쳐 영국 한빛문화재단(회장 한광호)이 구입기금 100만 파운드를 후원하여 박물관에 들여왔다. 박물관에서는 2014년 12월 15일부터 1년간 뉴욕화가 강익중 씨의 작품 ‘삼라만상’(Samramansang Moon Jar, 2010-2013)을 전시했다. 이 작품은 풍만한 백자 달 항아리 위에 만개한 흰 꽃잎들이 흐드러진 믹스드 미디어(mixed media) 작품이다. ‘삼라만상’은 대영박물관 한국실(#67) 로비 갤러리에서 달 항아리(백자대호)와 마주 보게 배치되어 있다.
일부는 일본에 있다.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의 달 항아리에는 사연이 있다. 나라(奈良)시 도다이지(東大寺)에 작은 사원이 있다. 1995년 도둑이 들었다. 달 항아리를 훔쳐 달아나다 붙잡혔는데 그만 항아리를 땅바닥에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났다. 주지스님이 300조각이 넘는 파편을 가루까지 소중히 쓸어 담아서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기증했다. 미술관은 2년 동안 조각 맞추기를 해본 뒤 복원기술자에게 맡겼다. 6개월 만에 완벽하게 복원했다. 이후 이 항아리는 ‘미술품 복원의 기적’이라는 칭송을 들으면서 전설적인 ‘조선 백자 달 항아리’가 되었다고 한다. 미술사학자 유홍준의 전언이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달 항아리(국보 제309호). 사진제공=문화재청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은 고려청자 등 해외 최고의 한국 도자기 수장처로 유명하다. ‘아타카(安宅) 컬렉션’을 기반으로 이병창의 기증품 363점 등을 포함해 한국 도자기 12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병창 선생은 일본에서 목재무역업으로 큰돈을 번 사업가이자 도자기 수집가다. 1999년 그는 평생 모은 수장품을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에 기증했다. 우리에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사연이 있다. 이병창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고가의 백자 한 점을 기증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유물을 잘 보존할 전시실이 없었다. 그런 전시실을 새로 지을 의지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그의 컬렉션은 재일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오사카의 시립 동양도자미술관에 기증됐다. 한 언론인은 유능한 전문가가 유물을 잘 보존할 수 있다고 그를 설득했더라면 사정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의 70%가량은 일본에 있는 걸로 추정된다. 하지만 불법 유출을 입증하지 못하면 환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경매를 통한 문화재 환수는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합법적으로 되찾아오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건 후지쓰카 부자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서화류를 기증한 것처럼 소장자 스스로 제자리에 돌려놓도록 하는 것이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참고문헌 <국보순례>, 유홍준, 눌와 <오구라컬렉션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우리 품에 돌아온 문화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눌와 <나라 잃은 ‘달 항아리’·‘고려 나전’…돌아올 수 있을까?>, KBS, 2015년 11월 14일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강익중 달 항아리 작품 ‘삼라만상’ 소장 기념 전시> newyorkculturebeat.com, 2014년 12월 15일 <영국박물관소장 백자 달 항아리>, 한성욱(민족문화유산연구원장),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재일 한국인 이병창 박사의 고국 사랑 - 일본에서 만난 한국 도자기>, 프레시안, 2007년 8월 3일 네이버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오사카시립도자미술관(大阪市立陶瓷美術館)’ 네이버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 ‘백자 달 항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