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 경기도 광주시 한 야산에서 진행된 ‘큰딸 암매장 사건’ 현장검증에서 엄마 박 아무개 씨와 암매장에 가담한 박 씨의 동창 백 아무개 씨, 집주인 이 아무개 씨가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한 아파트에서 지내게 된 뒤 박 씨는 두 딸을 상습적으로 학대했다. 사건 발생 하루 전인 2011년 10월 25일에도 박 씨는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큰딸 김 아무개 양(당시 7세)을 베란다에 감금하고 회초리로 30분간 때렸다. 다음날 오전 박 씨는 다시 김 양을 폭행한 뒤 의자에 앉혀 테이프로 입과 손발을 묶어 놓고 출근했다. 박 씨는 김 양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고 집으로 왔지만 김 양은 끝내 사망했다.
사진제공=경남지방경찰청
박 씨는 지난해 10월 이 씨의 아파트를 나와 찜질방에서 생활했다. 이를 안타깝게 본 찜질방 주인은 박 씨를 막걸리 공장에 소개시켜줬고 박 씨와 작은딸은 공장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러나 최근 경찰의 장기결석자와 미취학아동 전수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결국 꼬리가 잡혔다. 처음 경찰은 박 씨를 작은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교육적 방임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실종돼 소재가 불명확한 큰딸에 주목했다. 박 씨는 수사 초기 “큰딸이 노원구에 있는 한 놀이터에서 실종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실종신고도 없었으며 찾으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은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에 박 씨를 추궁하자 “종교시설에 맡겼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이를 의심한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고 결국 범행이 밝혀졌다.
숨진 딸의 친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경찰에 따르면 박 씨 남편 김 씨는 딸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면서 친권은 박 씨에게 넘어갔다. 이후 김 씨는 2013년 5월 두 딸의 주소지를 고성군 고성읍으로 이동했다. 고성읍사무소 직원에 따르면 경우에 따라 전세대주가 친권이 없어도 주소지 이전이 가능하다. 또한 2013년은 남편이 재혼한 해로 경찰 역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 씨가 가출할 당시 김 씨는 실종이 아닌 가출로 경찰에 신고했다. 현행법상 성인이 사라지면 단순 가출로 처리된다. 범죄와 연관이 없는데 수사를 벌이면 인권침해 논란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성인 가출자에 대한 초기 수사를 가능하게 하는 법 개정안이 지난해 9월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결국 2010년 남편은 강제 이혼 신청을 통해 박 씨와 이혼했다.
그렇다면 박 씨는 왜 가출했을까. 경찰은 부부간의 단순 불화가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씨는 공장에서 일할 당시 직장 동료에게 “김 씨로부터 폭력을 당해 집을 나왔다”고 설명했다. 박 씨가 암매장 사실을 털어놓기 전 프로파일러에게는 “첫째 딸이 남편의 성격과 행동을 닮아 미웠다”고 진술하는 등 김 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경찰 조사결과 박 씨가 김 씨로부터 폭행을 당한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은 이들의 불화가 경제적인 이유라고 보고 있다. 김 씨는 은행원으로 안정된 수입이 있었다. 그러나 박 씨는 이 씨의 휴대폰 대리점 사업에 10억 원가량을 투자했고 이는 부부간 갈등으로 이어졌다. 백 씨 역시 이 씨 사업에 약 6000만 원을 투자했다.
많은 사람들은 박 씨가 이 씨의 집에 살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가졌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인과 지인의 소개지만 경찰 수사결과 과거 박 씨가 이 씨 사업에 투자를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즉 동거 이전부터 백 씨의 소개로 박 씨와 이 씨는 서로 아는 사이였다. 이로 인해 박 씨 부부의 갈등이 불거지자 이 씨와 백 씨가 박 씨에게 가출을 권유한 것이었다. 이를 받아들인 박 씨가 두 딸을 데리고 가출해서 이 씨 집에서 생활했던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당시 개인 사업을 병행했고 이후 학습지 교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전념했다고 한다. 박 씨는 동거 이후에도 이 씨가 운영하는 대리점을 공동 운영하는 등 경제적인 관계를 맺었다.
일각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동거 생활을 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로 사건 발생 초기 일부 매체는 이들이 같은 종교를 믿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종교 관련성을 부인했고 경찰 역시 “동거생활에 종교적 원인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분명한 건 이들의 인근 부동산과 관리사무소 직원을 포함한 이웃 주민들은 모두 이 동거사실을 몰랐다.
한편 이 씨의 남편과 백 씨의 어머니는 아파트에 상시 거주하지 않았고 가끔 들렀던 수준이라 박 씨 딸의 사망을 모르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발생 당시 집에 어른은 시체유기에 가담한 4명만 있었다”며 “남은 아이들은 워낙 어렸을 때 일이라 기억을 잘 못한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큰딸 김 양을 이틀에 걸쳐 폭행한 뒤 의자에 앉혀 테이프로 입과 손발을 묶어 놓고 출근했다. 사진제공=경남지방경찰청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박 씨의 큰딸이 수시로 학대당하는지 몰랐다”며 “(사체 유기 당시엔) 박 씨가 눈물로 호소해 순간 판단력을 잃었다”고 진술했다. 이 씨는 또한 “박 씨 딸이 힘들어보여서 박 씨를 불렀는데 이 과정에서 잘못된 것 같다”고 말하는 등 범행을 일부 부인했다. 그렇지만 경찰은 이 씨가 “아이를 잡으려면 제대로 잡아라”고 말했다는 진술이 서로 일치하는 점 등을 통해 아이를 숨지게 한 공범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백 씨의 어머니 유 아무개 씨(69)도 아동학대에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 씨는 이 씨 아파트에 가끔 들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씨는 유 씨로 하여금 박 씨와 백 씨의 자녀들을 학대하게 했다. 아이들을 폭행하거나 베란다에 보내고 문을 잠근 채 생활하게 하는 식이었다. 특히 사망한 김 양에게는 하루 한 끼만 주는 등 학대가 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유 씨 역시 아동복지법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19일 박 씨, 백 씨, 이 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박 씨와 이 씨는 상해치사, 시체유기, 아동복지법위반 등 3개 혐의로 백 씨는 시체유기 혐의로 송치됐다. 살인죄 적용 여부에 대해서는 “구속기간이 만료돼 검찰 송치 후 보강수사를 거쳐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존속살인과 비속살인 자녀 살해가 부모 살해보다 형량 가벼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슬픔’과 ‘창자가 끊어질 듯한 고통’이라는 말이 있다. 전자는 부모를 잃은 슬픔을 표현할 때 주로 쓰는 말(천붕지통:天崩之痛)이고, 후자는 자식을 잃은 아픔을 나타낼 때 자주 쓰이는 말(단장:斷腸)이다. 모두 부모와 자식 간의 절대적인 사랑을 일컫는 말로, 두 슬픔의 크기는 쉽게 비교하기 어렵다. 부모 자식 간의 이별이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살인 사건과 같은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든 그 죄의 무게는 따지기 힘들다. 이는 지난 1995년 12월 29일 형법 개정을 통해 완화한 형량으로, 이전까지는 범행 동기나 계획성, 방식과 상관없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한 변호사는 “법에는 시대상이 반영된다. 존속살인은 지난 1953년 형법에 처음 포함됐는데, 당시에는 효도가 강조되고 자녀는 부모의 훈육을 따라야 하는 풍토가 강했다. 이에 따라 부모에 대한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별도의 조항이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비속살인’은 일반 살인죄에 해당돼 별도의 가중처벌 조항은 없다. 한 아동청소년 전문 변호사는 “영아살해도 최고형량이 징역 10년으로 일반 살인보다 형량이 가벼운 편이다. 최저형량도 없어 생활고나 정신질환 등 부모의 ‘사정’이 범행 동기에 참작돼 상급심에서 형량이 감경됐던 판례가 많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장기간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정황이 뚜렷하더라도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렵다. 이 경우 상해·폭행치사 등 혐의를 받게 되는데, 형량은 징역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아동학대 범죄로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지난 2014년 1월 아동학대치사죄가 신설되기도 했지만 양형위원회가 제시한 아동학대치사죄의 선고 권고 형량은 기본 4~7년, 최대 13년6월까지다. 이마저도 일반 살인죄의 양형 기준(보통동기 기준)인 10~16년에 훨씬 못 미친다. 실제로 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된 2014년 9월 이후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한 사건 중 최대 형량은 8년이었다. 반인륜·패륜이라는 점에서 보면 존속살해와 비속살해는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법률에 대한 형평성 논란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당시 “존속살해죄는 가중처벌하면서 자식을 살해한 자는 일반 살인죄로 처벌하는 건 신분적 도덕에 의해 형벌을 달리하는 것이므로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이 나오면서 지난 2011년 존속살해죄 위헌 논란이 헌법재판소까지 갔지만, 헌재는 “존속살해는 그 패륜성에 비춰 일반 살인죄보다 고도의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고, 이는 우리의 전통적 법률문화”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고위 관계자는 “법원은 사건을 엄격하게 구분해 법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대의 변화, 일반 정서와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입법부에서 이와 관련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