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혁 9단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한국바둑의 전설’이 시합 내내 큰 화제를 쏟아냈다. 왼쪽부터 서봉수 9단, 유창혁 9단, 이창호 9단, 전자랜드 홍봉철 회장, 조훈현 9단, 조치훈 9단. 사진제공=한국기원
# 아, 조치훈…또 시간패
13일 오후 10시 무렵, 바둑TV 스튜디오. 조치훈 9단과 유창혁 9단이 이번 대회 가장 중요한 일전을 치르고 있었다. 2승 1패의 유창혁이 이기면 우승이 확정이고 1승 1패의 조치훈이 승리하면 2승 1패가 되어 최종 10국에서 동률 이창호 9단과 우승 결정국을 벌이게 된다.
해설자 서봉수 9단에 의하면 백을 든 조치훈 9단이 하변 타개에 성공해 리드를 잡은 직후 사단이 일어났다. TV모니터에 갑자기 조치훈 9단의 손이 나타나더니 자신이 둘 차례에서 갑자기 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 바둑판 이곳저곳을 짚으며 이물질을 닦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잠시 후 계시원의 입에서 마지막 “열” 소리가 나온다. 순식간에 시간패. 한국바둑 70주년을 기념대국에 이은 조치훈 9단의 두 번째 시간패다.
어떻게 된 일일까. 국후 조치훈 9단에게 당시의 상황을 물었다. 그런데 조9단은 “요즘 가운데 머리가 자꾸 빠져서…”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대국장을 황급히 빠져나갔다. 무슨 뜻일까. 대국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검토실에서 TV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담당 기자들은 ‘아마 땀이 많이 흘러 바둑판에 떨어졌고 그것을 닦다가 초 읽는 소리를 놓쳐서 시간패를 당한 것’이라 짐작하고 기사를 완성했다.
하지만 사실은 다음날 밝혀졌다. 땀 같기도 하고 비듬 같기도 하다던 그것은 탈모를 감추기 위한 도구인 ‘흑채’였고 조 9단이 평소의 습관대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쓸어내리다가 바둑판에 떨어졌던 것. 결국 흑채가 시간패를 부른 원흉이었던 셈이다.
시간패는 당사자인 조치훈 9단에게도 상처지만 시청자들에게도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다면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 일각에서는 “이미 시간패 파동을 겪었는데 똑같은 문제가 재현된 것은 대회 운영이 미숙했다는 증거”라며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치훈 9단을 불렀으면 당연히 익숙하지 않은 한국룰에 대비해 안전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다. 어차피 팬들을 위한 이벤트 대회인 만큼 로컬룰을 적용해 2집의 벌점을 주고 대국을 이어가게 하면 어땠을까. 흥미진진하게 관전하고 있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대국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했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모처럼 일고 있는 바둑붐 속에서 이런 일이 또 발생한 것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원이 바로 다음 날 열릴 예정인 조치훈-이창호 전에 바둑팬들을 초청, 성대한 공개해설회까지 준비했었음을 감안하면 아쉬운 마음은 더욱 커진다.
# 서봉수 9단, 화장실이 급했다(?)
2월 8일 바둑TV를 지켜보던 바둑팬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목도한다.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의 대국이 끝났는데 패한 서봉수 9단이 자신의 돌을 그대로 놓아둔 채 대국장을 떠나가 버린 것.
당장 여러 인터넷 바둑 게시판에서는 난리가 났다. 바둑에 지고 화가 나 복기를 하지 않고 일어설 순 있어도 자신이 둔 돌도 담지 않고 바둑판을 벗어난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 서 9단을 질타하는 글들이 각 바둑 사이트에 줄을 이었다.
서 9단의 목소리는 15일 시상식에서 들을 수 있었다. “혹시 인터뷰를 피하려 먼저 일어난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서 9단은 “화장실이 급했다”며 패자 인터뷰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대회 운영방식에 아쉬움은 나타냈다. 서 9단은 “전날 이창호 9단과의 대국에서 마지막에 역전패를 당하며 큰 내상을 입었다. 그런 사람에게 다음날 다시 바둑을 두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대회 관계자에게 다음부터는 이틀 연속 대국하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 항의했다”고 말했다. 조훈현 9단과의 대국에서 돌을 담지 않은 행동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아무튼 ‘전설’들의 대결은 일단 막을 내렸다. 후원사 측은 과정이야 어쨌든 전설들의 대결에 만족했다는 후문. 내년에는 이들 5명에 중국의 녜웨이핑, 마샤오춘과 일본의 고바야시 고이치, 다케미야 마사키 등을 초청해 국제 시니어대회로 발전시키겠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전설들의 승부, 그 2막을 기대한다.
유경춘 객원기자
최정 여류명인 5연패 달성 소녀장사 ‘1인자 넘보지 마!’ 최 6단은 1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1국에서도 오유진 2단에게 211수 만에 흑 불계승하며 서전을 장식한 바 있다. 국후 최6단은 “5연패에 성공해서 기쁘다. 루이나이웨이 9단이 이 대회에서 갖고 있는 7연패 기록을 넘어서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여류명인전에서 승리한 최 6단은 오유진 2단과의 상대전적도 7승 1패로 격차를 벌렸다. 이번 타이틀이 통산 일곱 번째인 최정 6단은 27개월째 여자랭킹 1위 자리를 질주하는 등 국내 여자기사 ‘넘버원’의 지위를 굳히고 있다. 최 6단은 그동안 세계대회 단체전에서도 세 차례 한국 우승(2013년 제3회 황룡사쌍등배 3연승, 2015년 제5회 황룡사쌍등배 3연승, 2015 오카게배 국제신예바둑대항전 3연승)에 공헌한 바 있다. 2010년 입단 후 현재까지 통산 342전 207승 135패, 승률 60.53%를 기록 중이다. [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