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 속에 점포가 늘고 있는 제과점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다. 파리바게뜨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되는 매장은 3466곳이다. 사진은 파리바게뜨 매장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서울 뉴타운 1호로 선정된 은평구 진관동 일대.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반경 300m 안에는 대기업 제과점인 SPC의 ‘파리바게뜨’가 입점해 있다. 은평뉴타운 내 진관중학교로부터 우물골까지 도보로 약 1시간(3.5㎞)을 걷다보면 파리바게뜨 매장만 6곳을 더 볼 수 있다. 10분마다 한 번씩 파리바게뜨와 마주치는 셈이다.
은평뉴타운은 제과점 창업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운영 중인 상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은평뉴타운은 창업 과밀지수가 250.52p(안전 기준은 60p)로 나타났다. 은평뉴타운뿐 아니라 은평구 대부분 지역은 창업 고위험 지역이다. 상권을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반면 은평구 내 전체 제과점 매장 수는 줄고 있다. 2013년 6월 143곳이었던 매장은 2015년 12월 118곳으로 집계됐다. 서울시 역시 같은 기간 전체 매장 수가 4291곳에서 3842곳으로 줄었다.
불경기 속에 점포가 늘고 있는 제과점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다. 파리바게뜨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되는 매장은 3466곳이다. ‘파리크라상(SPC)’ 2014년도 감사보고서를 보면 파리파게뜨를 포함한 가맹점수는 3575곳으로, 전년 대비 89곳이 늘었다. 같은 대기업 계열(CJ푸드빌)인 ‘뚜레주르’는 홈페이지상 매장 수가 1354곳으로 파악된다.
이들 대기업은 23일 제과점업에 대한 중소기업적합업종(적합업종) 재지정 심사를 앞두고 있다. 심사를 주관하는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는 지난 2013년 2월 제과점업을 3년 단위 적합업종에 포함하는 권고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동반위는 “대기업의 무차별 확장을 막고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핵심 내용은 대기업의 신규 출점 제한이다. 대기업은 이른바 ‘동네 빵집’으로부터 500m 이내에는 개점할 수 없으며, 새 점포도 전년 대비 2%를 초과해 열 수 없다. 물론 동네 빵집의 대표격인 대한제과협회에도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구노력”을 주문했다. 지난 16일 제과협회 관계자는 “올해 제빵월드컵 우승으로 동네 빵집의 경쟁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적합업종 재지정이 되면 동네 빵집은 대기업으로부터 3년간 더 시장을 보호받을 수 있다. 김서중 제과협회 회장은 “큰 틀에서 현행 그대로 가야한다”며 “대기업으로서도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고 서로 윈-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역시 대기업 계열인 ‘뚜레주르’는 홈페이지상 매장 수가 1354곳으로 파악된다. 사진은 뚜레쥬르 매장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2013년 제과점업 적합업종 지정을 공개 반대했던 파리바게뜨 점주 이 아무개 씨도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지난 18일 이씨는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상생이 시대 화두가 됐다”며 “실제 해보니 시장이 보호되는 측면도 있고,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심사 대상자이자 협상 당사자인 두 대기업도 재지정을 반대하진 않고 있다. 다만 이들은 500m 출점 제한 등 현행 권고에 대해선 수정을 바라는 눈치다. 이 날 CJ푸드빌 관계자는 “계속 협의 중이라 논의 사항을 얘기할 수는 없다”면서도 “동반성장의 취지를 살리면서 그 기준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SPC그룹 관계자는 “중소제과점과 상생이라는 협회 측 의견을 귀담아 듣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대기업이 입점을 희망하는 곳은 ‘골목’보다는 소비 여력이 높은 신도시로 알려졌다. 은평뉴타운 E 빌딩 상가분양 관계자는 지난 16일 “확정되진 않았지만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입주가 시작된 위례신도시에는 이미 파리바게뜨 2곳이 입점해 있다. 위례신도시 일대는 창업 과밀(위험 또는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2014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왕십리 뉴타운도 창업 위험 지역으로 나타났다. 주변 상권에 파리바게뜨 4곳이 검색됐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을 사이로 마주본 두 파리바게뜨 간 거리는 500m 이내다.
소위 ‘뜨는 상권’에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많은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비용이다. 유명 제과점은 이름 알리는 데 필요한 지출을 아끼고, 단기간에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김서중 회장은 “중소상공인들이 자리 잡는데 드는 비용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신도시에) 못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운영 중인 상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서울지역 대부분은 제과점업 창업 위험 지역으로 나타났다.
실제 은평뉴타운 E 상가 1층 점포(61.68㎡․약 18.66평) 분양가는 15억 6000만 원이다. 지난해 서울시내 제과·제빵·케이크 점포당 월매출(1804만 원)로 환산하면 87개월 어치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확장에는 건물 임대료 등 보이지 않는 변수가 숨어 있는 것이다.
동반위는 대기업이 적합업종 권고를 위반할 경우 이를 동반성장지수에 반영하고 있다. 제과점업은 2014년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그러나 2015년에는 위반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상생이라는 ‘대의’에 대기업들도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제빵·제과 프랜차이즈 종사자는 4만 329명으로 추산됐다. 이들의 운명이 이번 동반위 적합업종 심사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