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칼을 빼 들었다. 호남 지지율 하락과 원내 교섭단체 구성(20석) 실패, ‘안·천·김(안철수·천정배·김한길)’ 삼두체제를 둘러싼 내부 알력설로 국민의당이 위기론에 휩싸이자 드라이브를 건 것이다. 첫 단추는 안 대표가 ‘십고초려’ 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합류다. 이 교수는 김한길 상임 선거대책위원장과 함께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이로써 국민의당은 김 위원장을 필두로 안철수 천정배 이상돈, 4명의 선대위원장 체제를 형성하게 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영입한 이상돈 교수가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또한 안 대표는 이상돈 카드 성사 직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입당까지 관철시켰다. 이 지점이 국민의당 내부 권력구도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이 신임 위원장의 합류로 국민의당은 ‘천군만마’를 얻었지만, 동시에 안철수계 내부에선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도 엿보인다. 이상돈 위원장은 정 전 장관의 입당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대표적인 인사다. 이념도 노선도 세력도 ‘물과 기름’이다. 안 대표를 중심으로 화학적 결합을 꾀하기 힘든 이들이 한 데 묶였다. 정 전 장관의 합류로 각 계파 간 ‘불안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이상돈 위원장의 국민의당 합류 과정은 ‘롤러코스터’와 흡사했다. 안 대표의 더불어민주당 탈당 당시부터 제3지대 창당 합류 인사로 꾸준히 거론됐던 이 위원장은 애초 외곽지대에서 전문가그룹과 함께 창당 시기를 조율했다. 이 과정에서 이 위원장은 ‘박영선 카드’를 고리로 안 대표와 천 대표를 압박했다. ‘박영선 카드’ 관철 시 동반 입당을 검토했던 이 위원장은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다.
그 사이 더민주는 ‘김종인 체제’를 띄우고 박영선 의원을 비상대책위원회에 합류시켰다. 이 위원장은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함께 지난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에서 함께 활동했다. 박영선 의원은 2014년 10월 초 세월호법 협상과 이상돈 인선 파동 등이 맞물리면서 제1야당 원내대표직에서 불명예 퇴장했다. 박 의원을 둘러싸고 이상돈 위원장과 김종인 위원장이 ‘먹이사슬’을 형성한 셈이다.
일각에선 박 의원이 국민의당을 거부한 만큼, 이 위원장도 더민주에 입당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최종 선택은 국민의당 합류. 이 위원장은 안 대표의 끝없는 구애로 입당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위원장은 지난 17일 서울 마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대 여당과 거대 야당이 세상의 모든 일을 진영논리로 설명하는 비상식적 정치를 하고 있다”며 “이념적 진영논리를 탈피하고 건전한 제3당이 나서야 한다”고 입당을 공식화했다.
이 위원장의 합류로 안철수계는 ‘안철수-이상돈-박선숙-이태규’로 이어지는 핵심 라인을 형성하게 됐다. 안 대표의 ‘이상돈 카드’가 내부 알력설에 시달리는 국민의당 내부 권력구도의 재편을 위한 승부수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위원장은 입당을 하루 전인 16일 최종 결심했다. 선대위원장과 공천심사위원장 사이에서 고민한 그가 전자를 택하면서 국민의당 ‘이상돈 퍼즐’이 마무리된 것이다. 애초 후자에 무게를 실었던 이 위원장은 국민의당의 인재영입이 지지부진하자, 전자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선대위원장의 파워는 인재영입과 비례한다”며 “사람이 있어야 공천 혁신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안철수 시프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안 대표는 이 위원장 합류 다음 날인 지난 18일 전북 순창으로 내려가 정동영 전 장관과 비공개 회동을 한 뒤 2017년 정권교체를 위해 조건 없이 협력키로 했다. 정 전 장관은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전북 전주·덕진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시프트가 보수와 진보의 절묘한 줄타기를 꾀한 것이다. 당 안팎에선 이 위원장이 이미 인물영입의 ‘선점효과’를 누린 만큼, 향후 계파 권력이 안철수계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중도성향의 안 대표와 진보성향의 정 전 장관이 정치적 사안마다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불안한 동거의 끝은 알 수 없지만, 정 전 장관의 합류로 국민의당의 계파는 기존 6개에서 7개로 확장했다. 2012년 대선 캠프 시절부터 함께한 안철수 직계를 비롯해 △김한길계와 더민주 탈당파 △정동영계 △옛 동교동계 △천정배계 △박주선계 △최근 입당한 전문가그룹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다만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 등 호남 탈당파는 향후 정동영계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모색하면서 계파 권력구도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위원장이 애초 선택지였던 ‘독이 든 성배’인 공천심사위원장 대신 선대위원장을 선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일종의 ‘이상돈 역할론’을 보장받은 셈이다. 안 대표는 이 위원장의 영입에 대해 “우리나라 어느 분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개혁에 대한 이론과 실전 경험을 많이 가진 보석 같은 분”이라고 화답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안철수계가 더민주 탈당파에 대한 물갈이 대신 이들과 상생하는 묘수 찾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대적인 호남 물갈이 카드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진 안철수계가 6개 계파의 ‘최소 공약수’ 찾기에 나서는 한편, 새 인재영입과 중도층 공략으로 전략의 기조를 바꿨다는 것이다.
특히 안철수계 내부에선 이상돈 카드가 더민주의 ‘김종인 효과’를 넘어설 것이란 기대도 적지 않다. 더민주는 김종인 체제를 통해 내부고발자와 권력 균형자의 역할을 동시에 꾀하고 있다. 이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더민주의 ‘종·박(김종인·박영선)’과 가깝다. 대표직을 사퇴한 문재인 의원이 전권을 준 비대위의 핵심 세력에겐 내부고발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2012년 총·대선 당시 새누리당 압승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 위원장은 탈이념·중도파의 역할을 통해 6개 그룹의 조정자 역할도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말 한마디로 당내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는 더민주처럼 국민의당도 이 위원장을 통해 계파 패권주의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만일 이 위원장이 이 양자의 조화를 절묘하게 꾀한다면, 계파구도의 승자도 될 가능성이 있다. 한 평론가는 “안 대표가 이상돈 카드를 관철함에 따라 내부 권력구도 초반 승기는 안철수계로 넘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에 합류한 정동영 전 의원(가운데)이 19일 전북 순창군 복흥면 비석마을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향후 정치 계획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위원장이 야권 발 정계개편의 변수로 여겨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합류를 공개적으로 반대한 직후 입당하면서 김한길·천정배계의 힘을 빼는 효과를 봤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의당의 주도세력 교체와 이상돈 발 혁신 드라이브를 통해 △하락세인 호남 지지율 △빨간불 켜진 인재영입 △내부알력설 등을 일거에 타파할 수 있다는 주장과 그 궤를 같이하는 지점이다. 위기의 안 대표로선 이상돈 카드가 20대 총선 승리를 위한 핵심 승부수인 셈이다. 이에 따라 안 대표는 향후 이 위원장을 필두로 정치혁신에 드라이브를 걸고 자신의 핵심 경제정책인 ‘공정경제론’을 설파할 것으로 보인다.
딜레마도 상존한다. 삼두체제의 갈등설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안 대표가 끝내 이상돈 카드를 관철, 이들의 갈등이 일파만파로 확산될 수도 있다. 이상돈 카드 이후 김한길 위원장은 ‘상임’에서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격하됐다. 김한길계 내부에서 “더민주 탈당파 힘 빼기가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2월 초부터 사실상 당무 거부에 들어갔다.
김한길계의 핵심인 최재천 무소속 의원과는 이미 박선숙 사무총장 인선을 기점으로 틀어졌다. 최 의원은 국민의당 사무총장직을 원했지만, 안 대표는 지난 대선 때 함께한 ‘박선숙 카드’를 관철했다.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는 지난 14일 최 의원 자택을 방문해 입당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인 15일에도 김관영 최원식 김승남 권은희 의원 등과 함께 최 의원 문제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최 의원은 이와 관련해 “고민해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최 의원이 향후 당의 총선기획단장을 맡더라도 안철수계의 핵심인 ‘이상돈-박선숙-이태규’ 라인과의 세력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념·노선 투쟁도 고민거리다. 이상돈 선대위원장은 직을 수락한 첫날부터 대북정책을 놓고 안 대표와 엇박자를 냈다. 이 위원장은 “햇볕정책은 실패했다. 대북정책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며 당내 ‘안보 좌클릭’을 비판했다가, 안 대표가 “핵 문제에 대해 성과를 얻지 못한 부분을 냉정히 파악해서 실패한 부분은 반복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이 위원장도 “포용정책이 전혀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니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정책경쟁이 본격화할 경우 안 대표와 이 위원장의 간극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상돈 카드가 고착화된 국민의당 삼두체제의 운명, 즉 당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