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매일 뉴스에 나오던 변양호 씨였다. 그 때문에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변양호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탄생했다. 과감하게 일한 공무원의 종말은 감옥이라는 자조의 소리였다.
“저는 140번 재판을 받고 11번 선고를 받았습니다. 아침 10시에 포승에 묶여 검찰청에 가서 밤 12시까지 조사를 받은 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끝없는 얼음 골짜기로 추락한 듯한 그의 좌절이 아련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결백하니까 당연히 무죄가 될 것이라고 믿고 법정에 갔더니 징역 5년을 선고하는 겁니다. 앞이 깜깜했습니다. 감옥에 가서도 생각했습니다. 판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이 있다면 도대체 내게 왜 이러시는 건지 그걸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를 집요하게 파멸시키려는 검사와 뇌물을 줬다고 위증을 한 사람을 정말 용서할 수 없었어요. 제가 할 유일한 행동은 자살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죽을까 열심히 궁리했죠.”
검찰 조사과정에서 자살하는 수가 종종 있었다. 구름위에 살던 그가 내려간 시궁창 같은 감옥의 얘기가 이어졌다.
“감옥에 들어가니까 가슴에 빨간딱지를 붙인 옆방의 사형수가 유명한 분이 들어오셨다면서 반가워했습니다. 저는 그를 외면해 버렸어요. 사형수는 세면도구와 타월을 선물로 보내주고 달걀찜이나 라면도 끓여 주더라고요. 그 짧은 목욕시간에도 내 등을 밀어주면서 위로를 해 주는 거예요.”
그는 죽고 싶었고 사형수는 시궁창 같은 세상에서라도 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사형수를 통해 그의 마음에 빛이 들어왔다.
“어느 순간 그들이 이해가 갔습니다. 얼마나 궁지에 몰렸으면 제게 돈을 주었다고 거짓말까지 했겠습니까? 못되게 한 검사도 ‘자기 일을 하다가 보니까 그렇게 됐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관료를 할 때도 남이야 어떻든 내 직무만 생각했던 게 떠오르더라고요. 용서하게 됐죠. 그러면서 약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게 됐죠. 그건 감옥이 제게 준 축복이었습니다.”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후 그는 변신했다. 사형수가 그에게 다가 왔듯 그는 바닥의 사람들에게 찾아갔다. 사형수로부터 받은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그는 무료급식소에 밥을 대주기로 약속했다. 금수저가 불을 만난 후 순도 높은 진짜 금이 되었다. 흙수저도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모두 도자기가 됐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