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총괄 회장(위 사진 왼쪽)이 성년후견인 지정 심리에 휠체어 없이 직접 참석한 것을 계기로 신동주 회장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왼쪽은 장남 신동주 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 연합뉴스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쪽은 지난 11일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이 프로기사 조치훈 9단과 바둑을 두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성년후견인 지정 심리에 휠체어 없이 직접 참석한 것에 이어 아버지의 정신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이튿날인 12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홀딩스 임시 주주총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신 총괄회장을 제외한 현 경영진을 해임하고 새 이사진을 꾸리겠다는 것. 즉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한·일 롯데그룹 지주사 격인 롯데홀딩스에서 몰아내고 자신과 아버지가 함께 장악하겠다는 얘기다.
신 총괄회장이 성년후견인 지정 심리에 참석한 지난 3일 이후 신동빈 회장을 향한 신동주 회장의 공격이 매서워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지난해 8월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에서 신동빈 회장이 완승한 데 이어 신동주 회장의 공세가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롯데그룹 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돼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신동주 회장의 반대에도 호텔롯데 상장 작업이 진행되는 데다 신동주 회장 쪽이 지난 2일 롯데쇼핑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을 큰 소득 없이 취하하자 분쟁의 불씨가 꺼져가는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신동주 회장이 또 다시 파상공세를 펼침으로써 신동빈 회장으로서는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형제간 분쟁에 다시 불이 붙으면서 지난해부터 경영과 지배구조개선에 힘쓰는 것으로 비친 신동빈 회장의 모습이 희석됐다”며 “애써 외면하려는 모습을 보였던 것 같은데 또 신경 쓰이게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성년후견인 지정 사건 심리에 직접 출석한 것이 가장 껄끄러운 부분이다. 그동안 아버지를 앞세웠던 신동주 회장에 맞서 신동빈 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이 직접 출석해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점을 피력한 터여서 법원 판단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뒤바뀔 가능성이 열렸다.
성년후견인 심리를 모두 마치고 법원이 신 총괄회장의 정신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그동안 ‘후계자는 장남’이라고 했던 신 총괄회장의 말이 힘을 받는다. 다시 말해 신동주 회장 쪽 결속력이 강화되고 신동빈 회장 쪽 힘이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심리 결과 법원이 신동빈 회장의 주장대로 신 총괄회장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신동빈 회장의 ‘원톱체제’는 확고해질 수 있다.
신동주 회장이 빼든 최종병기는 ‘표대결’이다.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총을 열고 여기서 승리해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현재 이사진을 해임하고 신동주 회장 본인과 측근들로 새 이사진을 꾸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동주 회장은 지난해 8월 롯데홀딩스 임시주총에서 이렇다 할 저항도 못해보고 신동빈 회장에 완패했다.
관건은 롯데홀딩스 지분 27.8%를 보유하고 있는 종업원지주회다. 지난해 8월에는 종업원지주회가 신동빈 회장을 지지했다. 신동주 회장은 지난해 8월과 달리 이번에는 이 지분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SDJ코퍼레이션 측은 “종업원지주회는 지난해 경영권 탈취 과정의 불법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광윤사와 종업원 지주회의 의결권 지분만 합쳐도 60%가 넘으므로 이번 임시주총에서 현 경영진의 해임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반면 롯데그룹은 “무의미한 주총 소집”이라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종업원지주회가 신동빈 회장을 지지할 것을 믿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표대결에서도 신동빈 회장의 우위를 점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될수록 신동빈 회장과 롯데그룹 이미지가 자꾸 훼손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권과 광윤사 지분에 따라 한국 롯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될수록 롯데를 향한 국민 정서는 계속 악화할 것”이라며 “신동빈 회장은 경영권에 위협되는 요인을 하루 빨리 정리하고 롯데가 한국 기업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14일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지난 5일 신동빈 회장을 사기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형사1부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해 9월 신동빈 회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롯데는 한국 기업”이라고 한 말을 ‘사기’라고 봤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롯데가 일본 계열사를 통해 국내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일본 기업’이라는 얘기다. 신동빈 회장으로서는 이래저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