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설립한 ‘디셈버앤컴퍼니’는 로보어드바이저 개발 업체 중 선도 기업으로 거론된다. 작은 사진은 KDB대우증권 건물로 디셈버앤컴퍼니는 KDB대우증권과 함께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로보어드바이저의 종주국은 미국이다. 지난 2008년 웰스프론트와 베터먼트 등이 초창기부터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시작한 곳이다. 이 회사들의 관리자산 규모는 각각 30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후 수많은 회사들이 생겨났고 현재 미국에는 200개 이상의 로보어드바이저 회사가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로보어드바이저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대략 3년 전부터다.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규모는 2014년 말 기준 19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미국 시장을 롤모델로 삼아 국내 도입에 적극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금융당국도 최근 ‘국민 재산 늘리기 프로젝트’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지난 1월 18일 금융위원회는 새해 정부 부처별 업무 보고를 통해 핵심 성장 동력산업으로 로봇과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정보통신기술) 분야를 지정하며 로보어드바이저에 관한 규제를 완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금융사의 프라이빗뱅커(PB)가 담당하는 개인 자산관리 서비스는 사실상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높은 수수료도 부담이지만 ‘관리’를 받아야할 만큼 자산이 많지도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금융사들이 고객층을 넓히기 위해 개인 자산관리 서비스에 대한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면서 일반인들의 이용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여전히 자산가액의 1%가 넘는 수수료를 매년 지불하는 일은 만만찮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가 실질적인 개인 자산관리 서비스의 대중화를 이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의 수수료는 연 0.10~0.1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당국의 정책 기조와 시장 전망에 발맞춰 국내 금융사들은 앞 다퉈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하거나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쿼터백투자자문과 제휴해 로보어드바이저 신탁 상품인 ‘쿼터백 R-1’을 출시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도 출시를 검토하거나 준비 중에 있다. 이에 질세라 증권사들도 속속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국내 최초로 ‘QV로보어카운트’를 선보였다. 또 삼성증권과 유안타증권도 자체 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낮은 수수료율을 고려해 볼 때, 과연 경제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초기 시장 선점을 두고 지나친 경쟁을 벌일 경우 결국 시장 자체가 안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비단 금융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우후죽순 생겨난 로보어드바이저 벤처회사나 투자자문사들이 10여 곳에 달한다.
로보어드바이저의 알고리즘 자체에 대한 우려도 있다. 기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국내에서는 아직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서 가장 앞서있는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도입됐기 때문이다. 아직 금융시장의 장기 순환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예상치 못한 큰 충격에 과연 로보어드바이저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지 염려되는 부분이다.
시장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디셈버앤컴퍼니의 행보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3년 9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설립한 이 회사는 쿼터백투자자문과 함께 현재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로보어드바이저 개발 업체로 꼽히고 있다. 디셈버앤컴퍼니는 최근 성공적으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자본금을 95억 원까지 늘렸다. 자본금 기준으로 업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현재 디셈버앤컴퍼니는 엔씨소프트 투자경영실장을 지낸 정인영 대표가 이끌고 있다. KDB대우증권을 시작으로 대형 금융사들과 함께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디셈버의 알고리즘은 투자자 성향에 따라 포트폴리오가 전부 다르게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때문에 디셈버앤컴퍼니가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다면 향후 독자적인 자산운용사로의 변신도 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디셈버앤컴퍼니는 이미 지난해 12월에 외국환취급기관 등록을 신청했다. 또 최근에는 금감원에 투자일임업 및 투자자문업 등록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찌감치 법적 장치를 마무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게임업계에서 엔씨소프트는 독자적 기술로 자체 게임을 개발해 승부하는 회사로 정평이 나있다. 이러한 김택진 대표의 성향이 디셈버앤컴퍼니에도 적용된다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서도 차원이 다른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가 출시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디셈버앤컴퍼니와 엔씨소프트는 전혀 관계가 없다. 김택진 대표가 개인적으로 사재를 출연해 투자한 회사일 뿐이다”고 선을 그으며 향후 엔씨소프트의 계열사로 편입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전혀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