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 발생한 다음 날 폐허가 된 미야기현 게센누마시 시가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연합뉴스
논문에 따르면, 50대 운전기사는 구도 씨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지진으로부터 서너 달 뒤 초여름. 철지난 코트 차림의 여성을 역 근처에서 태웠다. ‘미나미하마로 가달라’고 하길래 ‘손님, 거긴 쓰나미에 휩쓸려 잔해만 남은 곳인데 괜찮겠습니까’라고 묻자 ‘필시 나는 죽은 거겠죠’라며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또 다른 40대 운전기사의 일화다. 무더운 8월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두터운 점퍼를 입은 20대 청년이 택시에 올라탔다. 행선지를 물었더니 뜻밖에도 지진피해가 심해 모두들 가기 꺼려했던 ‘히요리야마’라고 했다. 왠지 모를 한기가 느껴졌으나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 그러나 손님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택시기사들이 본 건 무엇이었을까. 이에 논문을 작성한 구도 씨는 “체험담들을 단순한 ‘환영’ 혹은 ‘기분 탓’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택시기사들이 누군가를 태우면 미터를 전환하고 기록이 남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귀신을 택시에 태웠다”고 주장하는 기사들은 “귀신의 경우 무임승차가 되기 때문에 요금을 대신 지불했다”고 밝혔다. 또한 요금 부족액을 기록한 운전일지를 증거로 보여준 기사도 있었다.
피해지역에서 귀신을 목격한 사람은 택시기사뿐만이 아니다. 목격자들은 “해변에서 푸르스름한 혼불을 봤다”거나 “귀신들이 줄지어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한다. 심지어 어느 마을에서는 “도로가 야간 통행금지된 이유는 유령이 자주 출몰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와 관련, 작가 구로키 아루지 씨는 기괴한 체험을 한 이재민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지진 괴담집>을 출간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비교적 큰 마을의 동사무소에서 들은 이야기다.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모 부서로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전화를 받으려는 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발신자번호가 쓰나미에 휩쓸려 완전히 초토화된 공공시설의 전화번호였기 때문이다. 현재는 폐허. 즉 전화선은 물론이요, 건물 자체가 아예 없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어디서 전화를 걸고 있는 걸까.
이러한 까닭에 아무도 전화를 받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직원이 언제나처럼 전화벨이 울리자,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10초가 지나기도 전에 말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직원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표정으로 침묵했다. 후에 다른 직원이 술자리에서 “그때 무슨 소리를 들었어요?”라고 집요하게 묻자 그는 “비명과 함께 거대한 물이 덮치는 소리가…”라고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참고로 동사무소 전화벨이 울리는 시각은 언제나 같았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나서. 마침 쓰나미가 덮친 시각이었다.
2013년 일본 공영방송 NHK는 “쓰나미 희생자와 재회했다” “사망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등 이재민의 불가사의한 체험을 특집으로 꾸민 스페셜프로그램 <동일본 대지진 고인과의 재회>를 방영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AFP통신 같은 외신들도 높은 관심을 나타냈는데, 사실 재해지에서 유령 이야기가 떠도는 건 그리 드물지 않다고 한다. 다만, 이번처럼 괴담이 다양하고 폭넓게 구전되는 건 흔치 않다.
니혼대학 문리학부 교수 나카모리 히로미치 씨는 “지금까지 여러 곳을 조사했지만, 동일본 지진만큼 유령 이야기가 현저한 재해지는 없었다”면서 “일반적인 소문과 다른 점은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구전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전했다. 나카모리 교수의 의하면, 재해지에 확산된 유령 괴담을 설문조사한 결과 총 345건(이와테현 55, 미야기현 217, 후쿠시마현 73)의 응답이 있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5년이 흐른 지금도, 수많은 괴담이 떠도는 배경을 “쓰나미로 인한 죽음이었다”는 점에서 찾는다. 피해지역들은 지진이 발생하고 30분 뒤 쓰나미에 습격당했다. 30분이라는 시간. ‘대처가 빨랐다면 그 사이 안타까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후회가 환영을 보게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쓰나미가 덮쳐 셀 수 없이 많은 실종자가 발생했다. ‘꼭 돌아왔으면 좋겠다’ ‘꿈에서라도, 유령이라도 좋으니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괴담으로 투영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피해지역인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의 특성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동북지역은 예로부터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유명했다. 따라서 신비한 전설이 많이 떠돌았으며, 여기에 살이 붙어 실화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이야기들도 구전되어 왔다. 덧붙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서일본은 전통적으로 귀신을 보면 퇴치하는 것에 중점을 두지만, 동북지방은 ‘이타코’라 불리는 무녀가 망자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대표적인 예가 아오모리현의 오소레잔 축제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의식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나카모리 교수는 동북지방 유령 괴담의 특징에 대해 “첫째 실재한 인간이 등장한다, 둘째 흔히 ‘귀신이 씌었다’ ‘원령이 들러붙었다’와 같이 섬뜩한 느낌이 아니라 인정미가 느껴진다”는 점을 들었다. 가령 이런 이야기가 재해지에서 떠돈다. 이재민들을 위해 설치된 가설주택에 늦은 밤 이웃 할머니가 찾아왔다. 차를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할머니가 떠났고, 방석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뒤늦게 서야 ‘그러고 보니 저 할머니 죽지 않았던가’라고 깨달았지만,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건망증이 심했던 할머니라 자신이 죽은 것조차 잊었나보네’ ‘부디 깨닫고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이라고 명복을 빌었다는 얘기다.
나카모리 교수는 “쓰나미로 잃은 가족과 이웃을 영혼으로나마 만나고 싶은 그리움, ‘무의식들이 유령 이야기를 확산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