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급속하게 보수화하는데 일조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사진은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 공장 방문 당시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처장 한 사람 교체된 것을 놓고 지나치게 해석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반응들이 양 대법원장 체제의 고질적 문제인 ‘독선적 인사 스타일’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분석이다. 결국 심각한 인사적체 문제가 이런 식으로 자꾸 표출되다보면 향후 1년 6개월은 양 대법원장 임기 6년 중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 처장, 양 대법원장 인사 영향력 강화
보수 일색인 대법원 구성에서 고 처장과 김용덕 대법관, 민일영 전 대법관은 양 대법원장 체제가 급속하게 보수화하는데 가장 일조한 인사들로 분류된다. 사실상 회사 측 손을 들어준 고 처장의 통상임금 판결이나 YTN 해직기자들의 징계해고가 적법하다는 김 대법관의 판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정치개입 사건을 파기환송시킨 민 전 대법관 판결 등이 대표적이다. 법원 관계자는 “세 사람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나 노동자 관련사건 등에서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것으로 안다”며 “그래서 당초 전임 박병대 처장의 후임으로 김용덕 대법관 얘기도 나왔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고 처장이 낙점된 배경을 놓고 해석들이 분분하다. 부장판사 출신 중견 변호사는 “현재 법원행정처 주요보직에 호남 출신이 거의 없지 않느냐”며 “그런 점을 보완하기 위한 카드로 고 처장을 선택했다는 게 양 대법원장 생각으로 보이지만 일선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사와 관련해서 누적될 대로 누적된 불만이 호남 출신 처장 한 사람으로 해소될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변호사는 “원래 임기 말이라는 게 힘든 시기인데다, 인사 적체에 대한 불만이 내부적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양 대법원장의 영향력을 강력하게 유지시켜줄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고 처장은 그런 측면에서 양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끝까지 힘 있게 지켜줄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심지어 법원 내에서도 “당초 승진시키지 않겠다고 했던 고법판사들을 승진시킨 것을 보면 그간 내부 경쟁에서 다소 자유로웠던 고법판사들에 대해서도 경쟁을 요구하고 그를 통해 대법원장이 강력한 인사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차기 대법원장 경쟁 레이스 속 내부 단속 역할도
박병대 대법관
이런 상황은 사실상 본격적인 차기 대법원장 레이스와도 무관치 않다. 양 대법원장 임기가 내년 9월까지인 만큼 같은 해 5월 퇴임하는 박 대법관은 현 상황에서는 차기 대법원장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외부에 노출이 잦은 처장보다는 재판부로 돌아가 차분하게 다음을 준비하는 게 박 대법관에게는 더 좋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다른 법원 관계자는 “처장하다가 퇴직하는 것보다는 재판관으로 있다가 가는 게 오히려 낫다”며 “특히 처장이라는 자리는 대법원장을 대신해 안팎에서 비난의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고 이런 상황을 박 대법관도 잘 알고 있으니 재판부 복귀를 원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차기 대법원장 경쟁에선 박 대법관을 비롯해 차한성 전 대법관이나 민일영 공직자윤리위원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재경지역의 한 판사는 “결국 고 처장에게는 앞으로 양 대법원장이 임기를 잘 마무리하고 누가 새 대법원장이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내부 단속을 잘할 것을 요구받게 될 것”이라며 “결국 이런 상황도 양 대법원장이 마련한 구도 속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