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삼성전자가 서울 서초사옥을 떠나 수원사업장으로 3월 18일까지 이전을 완료한다고 발표했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은 서초사옥에 남는다. 이에 따라 임원급은 수원과 서초동을 오가는 일이 자주 발생할 것이다. 1초의 시간도 아까운 바쁜 임원들이 판교 또는 분당에서 서울로 오가는 시간을 도로에서 낭비하고 싶진 않을 터. 이때 유용한 것이 승합형 리무진이다.
승합형 리무진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벤츠 스프린터(왼쪽)와 현대차 쏠라티.
지난해 판교와 서울을 오가는 한 대기업 임원은 “(회사에서 지급하는) 차를 카니발로 바꿨다”고 했다. 그 이유는 11인승 이상 승합차는 고속도로에서 버스전용차선을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에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20인승인 벤츠 스프린터 미니버스를 타고 판교에서 서울 사무실까지 통근하는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합법적으로 버스전용 차선을 이용한 것이지만, 도덕적 비난을 면치 못했다. 버스전용차선의 본래 목적은 개인용 차량 사용을 억제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한 것인데, 편법으로 버스전용차선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논란 자체도 한낱 추억으로 묻어둬야 할 것 같다. 정 부회장이 타던 벤츠 스프린터의 신모델이 지난해 12월 공식 수입돼 출고됐고, 이에 맞서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0월 미니버스 쏠라티를 출시했다. 이런 움직임을 통해 미니버스의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벤츠 스프린터는 국내에서 11인승부터 14인승까지, 네 가지 내부개조 모델이 팔리고 있다. 가격은 사양에 따라 1억 3200만~2억 원이다. 쏠라티의 가격은 5582만~5927만 원이다. 판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개조업체가 많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쏠라티의 튜닝 버전이 나올지도 모른다. 업계에서는 미니버스의 시장 규모를 연간 5000~6000대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말 미니버스의 경쟁이 시작됐다면, 그 이전부터는 쉐보레 익스프레스밴과 기아자동차 카니발 하이리무진이 본격적인 승합형 리무진 경쟁을 주도하고 있었다. 연예인들의 주요 이동수단은 흔히 ‘스타크래프트밴’으로 불리는 익스프레스밴(순정상태)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카니발 하이리무진도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렉서스의 ‘시에나’도 종종 목격된다. 스타크래프트밴이 주름잡던 시장도 춘추전국 시대가 된 셈이다.
쉐보레 엑스프레스밴은 순정 자체로는 판매되지 않고 ‘익스플로러밴’ ‘스타리모밴’처럼 전문업체들에 의해 호화롭게 개조된 차들이 팔리고 있다. 순정 상태에서는 가격만 비싼 승합차지만, 개조를 통해 1억 원 이상의 가격을 받을 수 있다. 호화롭게 튜닝하고 가격을 높인 익스플로러밴의 경우 트렁크 부분에 옷을 걸 수 있는 수평 나무 바(Bar)가 있고, 3~4열 좌석을 180도로 눕히면 침대 대용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27인치 LED TV, 블루레이 플레이어, 안마·온열시트, 전동 발받침 등의 편의사양이 적용됐다. 익스플로러밴은 1억 2000만 원(9인승), 1억 3000만 원(11인승)에 판매되고 있다.
기아차 카니발 하이리무진은 기본 모델의 천장 대신 별도의 돔 지붕을 올리고, 각종 편의장치를 보강한 것이다. 특히 11인승인 카니발을 7인승 또는 9인승으로 바꾸면서 실내공간이 넓어지고, 천장이 높아져 자동차라기보다는 거실에 있는 듯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 익스플로러밴에 비하면 편의장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21.5인치 뒷좌석 모니터, 독서등, 통합 콘트롤러, 냉·온 기능 컵홀더, 220볼트 전원 소켓 등이 구비되어 있다. 카니발 하이리무진은 7인승이 가장 비싸며 가격은 5230만 원(VIP), 5690만 원(프레지던트)이다. 7, 9인승은 승객 탑승 숫자와 상관없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선을 이용할 수 없다.
국산 리무진 최초로 가격 1억 원을 넘긴 쌍용차 체어맨W
2년 뒤 현대차가 에쿠스를 내놓았지만 전륜구동형(FF)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현대차의 영업력이 강하다 보니 에쿠스가 곧 체어맨을 따라잡았고 체어맨은 2003년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다시 에쿠스 판매량을 넘어섰다. 에쿠스는 2005년 기존의 3.3리터(ℓ), 4.5ℓ 배기량이던 라인업에 3.8ℓ 엔진을 추가하면서 다시 체어맨 판매를 넘어섰다. 이처럼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는 체어맨과 에쿠스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국내 최초 ‘1억 원 이상’의 타이틀은 체어맨W의 차지였다. 쌍용차는 2008년 체어맨W를 출시했는데, 몇 달 뒤 판매가 시작된 리무진의 가격은 1억 200만 원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억 원 고지를 밟았다. 2008년 상반기는 글로벌 거품경제의 절정기로, 국내에서도 초대형 세단의 인기가 높았고, 체어맨W는 시기를 잘 만났는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당시 회사가 중국 업체에 매각되는 등 부침을 겪던 쌍용차를 먹여 살리는 효자가 체어맨W라고 할 정도였다. 체어맨W는 메르세데스-벤츠로부터 엔진과 변속기를 구매하고 기술지원을 받는 등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면모를 선보였다.
절치부심한 현대차는 2008년 자사 최초의 FR 고급세단(최초의 FR은 1976년 생산된 포니)인 ‘제네시스’를 선보인데 이어 2009년 비로소 초대형 FR 세단 신형 에쿠스를 출시했다. 에쿠스의 엔진과 변속기는 국산 기술로 이뤄낸 것으로, 이후 국내 초대형 세단은 에쿠스와 수입차의 대결 구도로 이어지고 있다.
우종국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