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TV 광고에 출연한 한 초등학생에게 쏟아진 악성댓글 내용의 일부이다. 이 여학생은 댓글을 보고 충격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이때 한 모델에이전시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쏟아졌던 악성댓글을 지우는 작업에 돌입했고 이후 그 학생의 정신질환도 해결될 수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악성댓글이나 사적인 동영상 등 평판을 관리하는 업무가 국내에서 시작됐다. 구글이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삭제할 수 있다는 조치를 취했던 2015년보다 훨씬 먼저 국내에서는 ‘잊힐 권리’가 실현된 셈이다.
‘인터넷에서 생성·저장·유통되는 개인의 사진이나 거래 정보 또는 개인의 성향과 관련 정보에 대해 소유권을 강화하고 이에 대해 유통기한을 정하거나 이를 삭제, 수정, 영구적인 파기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
지난 2011년 <잊혀질 권리(Delete)>라는 책의 저자인 빅토어 마이어 쇤 베르거는 이와 같이 ‘잊힐 권리’를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잊힐 권리라고 정의되기 이전부터 남녀노소를 막론한 대다수는 잊힐 권리를 찾는 추세를 보였다.
과거에 본인이 실수로 올린 게시물이나 본인 동의 없이 타인에 의해 유포된 게시물에 대해 지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오고 있는 것이다. 글, 사진, 동영상 등의 온라인 게시물은 오프라인과는 달리 한 번 유포될 경우 유포자가 아니면 지울 수 있는 권한을 벗어난다는 특징이 있어 유출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인터넷의 특성상 한번 유포된 데이터는 쉽게 공유돼 개인의 컴퓨터에 보관될 수 있고, 재유출될 가능성도 높다. 법무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 2014년 음란물과 성매매 정보에 대한 시정요청을 받은 건수는 4만 9737건으로 이는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
이 때문에 ‘디지털장의사’라 불리는 평판관리업체의 도움을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 최초로 개인 디지털데이터 삭제 청구 특허를 등록한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김호진 대표는 “과거의 기록을 지우고 싶어 하는 주체는 다양하다. 연령별 지역별로 다양한 분들이 의뢰를 해온다”며 “우리 회사 서비스를 실제로 받는 고객은 연간 60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3000명 이상이 청소년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청소년의 경우 개인 프라이버시가 유출됐을 경우 자살까지 이르는 경우가 있어 전적으로 도와주고 있다”고 밝혔다.
정보 삭제를 요청하는 청소년 대다수는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성적인 호기심을 가진 채 SNS를 이용하다가 신체 특정 부위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한 뒤 온라인에 유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학생 이 아무개 양(16)의 부모는 이 양의 방에서 채찍이나 허리띠 등 평소에 쓰지 않는 물건을 발견했다. 이 양의 휴대폰을 확인한 결과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이 설치돼 있었고 이 앱을 통해 나체 사진을 전송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양은 채팅 앱에서 만난 남성이 ‘문화상품권을 줄 테니 채찍이나 허리띠를 이용해 포즈를 취한 사진을 보내라’고 했던 주문에 순순히 따른 것이다. 확인 결과 이 양의 사진은 P2P사이트를 포함한 수백 개의 사이트에 퍼져 있었다.
여교사 유 아무개 씨는 자신이 근무 중인 학교의 학생 3명에게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대신 전학과 함께 동영상 삭제를 요구했다. 박 아무개 군(17)을 포함한 세 명의 학생은 장난삼아 몰래 촬영한 교사 유 씨의 다리 부위와 치마 속 신체부위 동영상을 단체 채팅방에 유포했다. 그런데 단체 채팅방에 있던 누군가가 이 영상을 온라인에 올렸고 삽시간에 동영상이 유포돼 가족뿐 아니라 지인들이 다 보게 됐다.
잊힐 권리는 유포를 당한 피해자가 이를 막고자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성적인 부분은 더욱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성관계 동영상이나 나체 사진은 청소년이 아닌 성인들 사이에서도 피해가 발생하곤 한다. 실수로 그런 동영상이나 사진이 업로드된 경우도 있었지만 헤어진 연인을 붙잡기 위해, 또는 헤어진 뒤 협박의 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본인이 과시하기 위해 올린 사진을 본 제3자가 이를 다시 올려 무려 10년 동안 재생산되는 경우도 있었다.
온라인에 유포된 기록을 지우려고 하는 목적은 성적인 내용에 국한되지 않는다. 각종 SNS를 통해 대화 도중 비방 글을 쓰거나 온라인에 남긴 악성 댓글을 지우고자 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단체 채팅방 등의 SNS에서 대화하다가 홧김에 비방 글을 작성하고 해당 SNS를 탈퇴했을 경우 당시의 비방 글은 그대로 남는다. 이미 탈퇴해서 이를 지울 수 없는 경우 관련 업체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 취업이나 결혼 등 새로운 시작을 하기 이전에 과거의 기록을 지우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 민감한 영상이나 사진, 글들은 기본이고 정치적 사상이나 활동이 담긴 기록을 지워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평판관리업체에서는 의뢰가 들어온 이후 해당 데이터가 얼마나 많은 온라인 사이트에 양산돼 있는지를 검색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영상의 경우 동영상 판독을 거쳐서 수집하게 된다. 이후에 최초 유포자와 해당 사이트 관계자 등과의 접촉을 통해 데이터를 영구 삭제할 것을 요청하게 된다.
이때 삭제가 안 되는 경우에는 법무부 방심위에 시정요청을 하는 절차를 밟는다. 정보가 확산된 상태를 파악하고 추후에도 게재되는 것을 추가적으로 삭제하는 데 드는 기간은 6개월 정도다. 이때 내부 법무팀에서는 유포자에 대해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법적 처벌을 경고함으로써 추가적인 유포를 막는 사후 업무까지도 담당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사이트에 대해서는 거의 100% 과거 기록을 지울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해외 사이트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소라넷’과 같은 해외에 서버를 둔 성인사이트나 토렌트 공유사이트 등으로 유출된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해외 사이트에 정보를 볼 수 없게 차단 요청을 할 수는 있지만 정보 삭제 자체는 불가능해 해외에서는 유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여전한 것이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연예인과 기업 역시 평판관리를 위해 잊힐 권리를 원하고 있다. 연예인이나 식품 관련 기업은 종종 악성루머로 곤혹스런 상황에 몰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개인과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종종 잊힐 권리와 알 권리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연예인 A 씨는 예전에 한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피소된 적이 있다. 그는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온라인에는 악성 댓글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이를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경우에는 연예인 이름과 혐의 내용 등을 관련 키워드로 정해 해당 데이터를 추출하는 과정을 거쳐 삭제한다.
B 기업은 자사 식품이 비위생적이라는 악성 댓글과 경쟁사에서 임의적으로 작성한 비방 글이 올라오자 이를 지워달라는 요청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경우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에 한해서만 지워준다고 말했다. 사실관계가 명확한 팩트의 경우 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더라도 개인의 잊힐 권리보다 대다수의 알 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예인 역시 A 씨처럼 무혐의로 마무리된 경우에만 삭제가 가능하다. 이미지 관리를 위해 유죄 판결이 난 과거 사건 관련 기록까지 지워주지는 않는 것.
김 대표는 “개인 디지털 데이터를 지운 후에도 구글에는 제목이 한 달 동안 올라오는데 이 기간을 줄이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며 “앞으로 해외로 진출해 해외에서 한국 자체의 평판관리를 하고 지금까지 힘들었던 해외 계정에 올라온 개인정보를 지우는 업무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