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표(왼쪽)와 박지성. | ||
2003년 1월, 호기심과 두려움을 안고 네덜란드에 첫 발을 내딛은 지 2년 만에 네덜란드리그에서 ‘성공 신화’를 이룬 박지성과 이영표는 지면을 통해 평소 궁금했던 내용들을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친형제 이상의 우애를 다지면서도 미혼과 기혼의 차이를 절감 중이라는 총각 선수와 유부남 선수의 ‘반말 토크’를 정리한다.
박지성(박): 음, 음. 영표 형 나와라 오바! 나왔남? 히히. 평소 얘기는 자주 해도 이렇게 지면을 통해 만나니까 기분이 새롭네. 형도 그렇지?
이영표(이): 누가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거냐? 네가 기자가 되는 거야?
박: 일단 ‘멍석’을 깔아 주셨으니까 한번 진행해 보지 뭐.
이: 그래. 너 요즘 기분 좋겠다. 팀도 8강에 오르고, 골도 마구 쏘아대고.
박: 형도 나랑 같은 PSV팀 아니었수? 하하. 기분 좋지. 내 인생에 이런 봄날도 다 있구나 싶은 게 행복하면서도 떨리고 그래.
이: 아니 왜? 뭐가 떨려?
박: 형도 잘 알지만 여기 처음 와서 나 무지 고생했잖아. 처음에 네덜란드에 올 때만 해도 자신감이 충만했었거든. 월드컵 때 보니까 유럽 애들 별 거 아니더라구. 피구나 지단 등 우리가 다 상대해봤잖아. 그런데 막상 네덜란드 리그에서 유럽 애들을 만나보니까 와, 이건 월드컵 때의 느낌과 너무 달랐어.
이: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더 거칠고 더 빠르고 테크닉이 장난 아니었어. 그런데 경기장에서의 몸 고생도 힘들었지만 난 마음 고생이 만만치 않았어.
박: 형이 무슨? 형한테는 ‘애인’이 계시잖아.
이: 아, 내 신앙 생활 말이야? 그래. 절대적인 ‘애인’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한국에서 운동할 때는 아주 편했잖아. 가족들이나 구단에서 모든 걸 다 배려해줬으니까. 그런데 객지 생활을 해보니까 적응하는 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외롭고 힘들더라.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그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마음의 병일 거야.
박: 장가도 가고, 예쁜 형수님도 계시고, 조금 있으면 아이 아빠가 될 사람이 이렇게 얘길 하면 난 아예 죽어야겠네.
이: 맞다. 네 앞에선 할 소리가 아니다. 넌 더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박: 그 얘기하려면 눈물부터 쏟아내야 한다고. 맨 정신에 도저히 못하지. 형도 마찬가지겠지만 난 여기 홈팬들에게 적응이 안됐어. 경기장에 들어서면 야유부터 해대는 통에 홈인지, 원정경기인지 헷갈릴 정도였다니까. 그들의 ‘우~’하는 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어.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고 다져먹고 고쳐먹어도, 경기장에서 그 소리만 들으면 앞으로 달려갈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어이없는 일도 많이 겪었잖아. 볼을 분명히 앞의 선수에게 패스를 했는데 공이 옆으로 가는 거야. 드리블은 아예 되지도 않았지.
이: 한국의 응원 문화에만 젖어있다가 여기 와서 겪게 되는 가장 큰 혼란이 서포터스들의 광적인 응원일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여기 사람들은 적나라하게 비난하잖아. 플레이가 맘에 안 들거나 성적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벤치 옆에서 몸만 풀어도 야유를 퍼부어 댔으니까.
박: 내가 정말 속상했던 건 우리 부모님이 처음 이곳에 오셔서 경기장을 찾았을 때야. 내 아들이 네덜란드에서 얼마나 잘 하고 있나 하는 벅찬 마음으로 경기장에 오셨다가 관중들의 엄청난 야유에 충격을 받으셨어. 한 번은 길을 지나가는데 PSV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막 욕을 하더래. 얼마나 황당하셨겠어.
이: 그런 일도 있었구나. 이젠 우리들에게 뭐라 하는 사람들이 없잖아. 오히려 환호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니까. 이럴 때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해야 되겠다.
박: 맞아. 관중들이 형과 나한테 박수를 보내주기 시작하면서 내 플레이도 술술 잘 풀려갔어. 그 당시 아버지가 이런 생각이 드셨대. 실력은 분명 있는데 그 실력을 채 써 먹지도 못하고 쫓겨나겠다고. 그래서 히딩크 감독님께 감사드리고 싶어. 주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날 믿어주셨잖아. 용병이라서 짧은 시간에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도 날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주셨어.
▲ 박지성 | ||
박: 무슨 말씀. 형의 존재 자체가 큰 힘이 됐는데.
이: 자신의 실력은 변하지 않으니까, 운동장에서 보여주지 못할 뿐 그건 변함이 없는 거니까. 그래서 별로 걱정은 안 했다.
박: 오죽했으면 J리그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겠수. 초등학생이 공차는 것보다 더 못했는데 뭘. 그런데 너무 못하니까 떠날 수가 없었어. 조금이라도 회복됐다면 떠났을지도 모르지. 형은 네덜란드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적이 없었어?
이: 다행이 그런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어. PSV 온 이후 큰 슬럼프가 없었고 모든 경기에 다 출전했으니까 딴 마음이 들 수 없었지. 그래도 힘든 때가 많아. 유럽 중에서도 네덜란드리그는 특히 거칠기로 유명하잖아. PSV팀의 경기 수도 많고. 뛰어난 실력이 없는 한,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지. 이건 우리가 잘났다는 얘기가 아니야.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 그 리그의 수준이 어떠하든, 정말 대단한 거야. 보통 실력으론 버틸 수 없거든.
박: 난 지난해부터 조금씩 나아졌어. 작년 연말에 휴가차 한국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서부터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 당시 통역을 맡았던 형이 한국 갔다가 완전 딴 사람이 돼서 왔다며 무지 놀라워했지. 다른 건 없었어. 축구 생각 안하고 무조건 놀았어. 아버지가 대통령이 강남을 없애 버릴 때까지만 놀라고 말할 정도로 강남에서 살았던 것 같아. 그렇게 놀고 나니까 축구가 그리워지더라고.
이: 하하. 네 아버님 대단한 분이시지. 한국에 가도 외출하려면 눈치 본다면서?
박: 지금은 좀 나아졌어. 네덜란드에서 내가 사는 모습을 직접 보신 다음 많이 이해하시더라고. 형도 알다시피 9시에 운동장에 출근했다가 12시 반에 퇴근하면 점심 먹고 할 게 없잖아. 게임하다가 책 보다가 인터넷으로 고스톱 치다가, 백수가 따로 없지 뭐. 아무리 연구를 거듭해도 놀 거리가 없는 거야. 자연히 한국을 그리워할 수밖에.
이: 맞아. 나도 처음엔 황당했어. 운동 좀 하려고 몸을 풀고 있으면 훈련이 끝나 버리는 거야. 한국에선 운동량이 엄청났거든. 그런 생활에 적응해 있다가 갑자기 오전에 모든 일이 끝나버리니까 허탈해 지더라고. 부족한 운동량을 개인 운동을 통해 보충할 생각도 해봤어. 그러다가 유럽축구에 적응하려면 유럽 시스템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지. 시간이 지나니까 이런 깨달음이 오더라. 쉬는 것도 운동이라고. 잘 쉬어야만 축구를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 여기선 훈련할 때도 별다른 거 없잖아. 진짜 훈련은 경기하면서 하잖아.
박: 하하. 그런 얘기도 들었어. 한국의 어떤 지도자분이 유럽 축구를 보러 네덜란드에 오셨다가 훈련 내용이 너무 부실해서 충격받았다고. 겉으론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오래 있다보면 ‘공짜 밥’은 없다는 걸 모르시는 거지. 아무리 긴 휴가를 줘도 팀에 합류한 뒤 컨디션을 체크해 보면 다들 완벽해. 한 마디로 망가지는 선수가 없는 거야. 그만큼 프로페셔널하다는 소리지.
이: 그나저나 요즘 한국에선 우리 두 사람의 재계약 문제에 관심이 큰 것 같아. 네 계획은 어떠니?
박: 글쎄, 지금의 챔피언스리그 8강 기회만큼 더 좋은 일도 없잖아. 에인트호벤이 내년에 또 다시 지금과 같은 성적을 내리란 보장도 없고. 팀에서 3년 재계약을 제의받긴 했는데 조금 더 지켜보다가 결정하려고 해. 솔직히 빅리그의 좋은 팀에서 ‘러브콜’이 온다면 가고 싶어. 스페인보다는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목적으로 두고 있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지.
이: 프리미어리그를 점찍은 이유가 뭐야?
박: 거긴 한국 교포들이 많이 살 거 아냐. 네덜란드를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해야 한다면 이번엔 한국 사람들이 많은 데서 고향 냄새 느껴가며, 그렇게 살고 싶어. 형은 어떤데?
이: 내가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쪽으로 방향을 정해야겠지. 너처럼 어느 리그를 정하진 못했어. PSV도 좋은 팀이니까 잔류한다 해도 상관은 없을 것 같아. 선택할 기회가 있다는 자체에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야.
박: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지난번 대표팀에 합류해서 쿠웨이트전을 치렀잖아. 난 그 경기 이후 우리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 선수들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졌더라고. 포지션 간의 경쟁도 심해지고. 기분 좋더라. 오만, 베트남 등에 질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지난 쿠웨이트전을 통해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지.
▲ 이영표 | ||
박: 형, 그런데 결혼하니까 좋아? 좋다면 어떤 점이 좋아?
이: 외국 생활하면서 배우자를 일찍 만난다는 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야. 집에서 누군가가 기다린다는 생각을 하면 덜 외로워지거든. 마음이 안정도 되고, 생활에 책임감도 생기고. 부부라는 느낌보다 그냥 친구같아. 5월이면 태어날 아이도 기다려지고. 너도 빨리 결혼해야 할 텐데.
박: 나의 절대 소망이야. 언제까지 부모님 도움만 받을 수도 없고. 아버진 1~2년 안에 결혼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내 맘대로 되나.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소개팅도 몇 번 해봤지만 결혼을 떠올리면 무척 신중해지더라고. 얼굴 예쁘고 나를 편하게 내조해줄 사람 어디 없을까? 그런 사람 만나기가 결혼하기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 축구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말이야.
이: 네 눈높이를 낮추지 않으면 당분간 결혼하기 힘들 것 같다. 하하. 지성아, 인연은 자연스럽게 오는 거야. 일부러 찾아다니든, 가만히 기다리고 있든, 인연이라면 우연이라도 만나게 돼 있어. 곧 좋은 소식 생기겠지.
박: 난 형에게 고마운 게 참 많아. 반듯하고 모범적인 형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배우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좀 답답할 때도 있지만 말이야. 히히.
이: 나도 네가 포기하지 않고 네덜란드에서 인정받는 선수로 성장해 준 게 너무 고맙다. 챔피언스리그 8강뿐만 아니라 우승을 위해서도 한번 더 힘을 내보자. 월드컵 예선전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고.
박: 그래 형. 한국에도 K-리그가 인기를 회복하고 있다는데 우리도 열심히 해야지. 조금 있으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월드컵 최종예선전도 있고, 줄줄이 큰 경기만 남아 있네. ‘체력의 화신’이라는 애칭답게 경기장에서 몸을 불살라 봐야지. 꺼지면 큰일이잖아.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