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매각할 경우 AIG는 최소 ‘1조 원’의 시세 차익을 올리는 것으로 파악돼 ‘먹튀’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 더불어 AIG가 계약 과정에서부터 서울시의 갖가지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최근 특위를 구성해 AIG 특혜 및 먹튀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최종 결재권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한 조사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2의 론스타’ 사태가 우려되는 AIG 특혜 의혹을 심층추적했다.
IFC 건물 전경. 고성준 인턴기자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 위치한 서울국제금융센터(IFC)는 부지면적 3만 3058㎡, 연면적 50만 5236㎡에 오피스타워 세 동, 콘래드서울호텔, 지하 쇼핑몰로 구성돼 있는 대형 건물이다. 토지 소유주인 서울시는 지난 2005년 AIG와 임대 및 투자, 개발 운영 등의 계약을 맺었고 건물은 2006년부터 건설돼 2011년부터 단계적으로 완공됐다.
AIG 측이 IFC 매각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보인 것은 지난해 중순으로 파악된다. 투자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AIG는 지난해 매각주관사 선정작업에 착수했고 10월경 대형 미국계 부동산 투자은행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했다. 서울시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AIG가 IFC를 매각한다는 것을 지난해 말쯤 파악했다”라고 전했다. 이에 AIG 측은 “매각을 포함한 모든 옵션들을 검토 중이다. 매각주관사 선정과 매각 고려 시점 등은 확인해 줄 수 없다”라고 밝혔다.
AIG의 ‘먹튀’ 의혹은 여기에서 제기된다. AIG는 IFC를 조성하며 사업비 1조 5140억 원을 투입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IFC 매각가격은 최소 2조 원대 중반에서 최대 3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물을 매각할 경우 최소 1조 원 이상의 시세차익이 생기는 셈이다. 부동산 관계자는 “IFC 오피스타워 일부의 임대가 완료되지 않았고 향후 여의도에 여러 오피스 빌딩이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시세는 다소 내려가거나 변동될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이 많이 내려가더라도 최소 2조 원 초반대는 될 것”이라고 전했다.
사실 정치권과 부동산 업계에서는 그동안 AIG의 IFC 매각설이 심심치 않게 퍼졌다고 한다. 그때마다 일각에서 ‘먹튀’ 우려는 늘 제기돼 왔다. 하지만 정작 매각 절차가 실제로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되자 먹튀 우려가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울시의회에서는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당장 지난해 12월부터 기획재정위원회 국제금융센터 특별위원회(특위) 구성에 동의하고 12월 말에 조사 범위를 확정했다. 이후 지난 1월 19일과 2월 18일 2차, 3차 회의를 열었다. 특위에서 집중적으로 조사하고자 하는 것은 AIG 특혜와 먹튀 의혹이다.
특히 서울시가 AIG와 IFC 관련 계약을 하면서 불법 요소는 없었는지 밝히는 것이 핵심이다. 김현아 특위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특위 활동을 통하여 AIG와 체결한 협약의 위법적 요소를 밝혀 과거 맥쿼리로 인하여 논란이 된 9호선 민간투자사업처럼 잘못된 협약 내용을 개선하고, 서울시 투자유치사업에 대한 조례를 제정하여 향후 외국계 기업들에 의한 먹튀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2월 19일에 개최된 2차 회의에서는 서울시 관계자 및 외부 전문가들이 참석해 특혜 의혹에 대한 광범위한 공방이 오고 갔다. <일요신문>은 2차 회의록 전문을 분석해 어떤 특혜 의혹이 있는지 집중 분석했다.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임대 계약’ 부분이다. 서울시는 IFC 건축기간인 2006년 1월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AIG에게 토지 임대료를 면제해줬다. 이후 2011년부터 2017년까지는 토지임대료를 공시지가의 1%만 내도록 했으며 2018년 이후 나머지 임대료를 정산할 수 있게 하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했다.
이밖에 임대 및 운영 조건은 50년 임대 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49년을 추가로 재계약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렇게 총 ‘99년’ 사용 후 건물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조건을 걸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이러한 계약은 매우 이례적이고 어떤 인간의 상상력이 커버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시가 이러한 토지 규모와 조건의 계약을 외국계 회사와 맺은 것도 처음인 것으로 파악된다. 회의에 참석한 서울시 관계자는 “토지를 임대방식으로 이렇게 이 정도 규모로 한 것은 여기가 가장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계약 배경’에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당초 IFC는 여의도를 동북아 금융허브로 육성한다는 목표로 추진됐다. 당시 서울시장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제금융센터가 서울이 동북아시아의 금융허브로 거듭나는 데 초석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시는 AIG와 IFC 계약을 맺음으로써 AIG 본부급 지점 입점, 외국계 금융사 유치 등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앞서의 파격적인 혜택은 그러한 기대감이 작용된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했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오피스동의 임대율은 61.4%로, 총 81개사 입주사 중 금융사는 31개사, 금융지원사는 22개사에 불과하다. 그나마 애초 목표로 했던 아시아 지역 본부급의 외국계 금융기관은 단 한 곳도 유치하지 못했다. 동북아시아 금융허브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AIG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바로 ‘계약 조건’ 때문이다.
2차 회의에서 서울시는 그 이유를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에서는 계약서 조항에 본연의 가장 큰 목적이 국제금융센터 기능이니까 국제금융센터에서 금융기관 유치비율이라든가 그런 것을 계약서 조항에 좀 넣자라고 했다”면서도 “AIG에서는 그 조항에 대해서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이라든가 그런 게 같이 작용해야만 유치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어서 이걸 계약에 넣기는 좀 어렵다 해서 반대를 했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결국 서울시는 유치 의무화 조항을 넣지 않음으로써 AIG의 조건에 따르게 됐다. 특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오경환 의원은 “특혜를 준 만큼의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계약위반, 페널티, 팔고 나갔을 때 승계하는 기업에 대해서 그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 이런 게 (계약서에) 기본적으로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치 의무화가 빠짐으로써 AIG는 온갖 특혜만 받고 시세차익만 챙겨 나간다는 의혹의 중심에 서게 됐다. 문제는 이를 막을 만한 법적 근거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계약상 AIG가 IFC를 최소 보유하는 기간은 2015년까지로 규정돼 있다. 2016년 이후에는 서울시의 동의하에 매각이 가능하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서울시가 동의하게끔 되어 있다. 서울시 측은 “법무법인을 통해 위법 가능성도 검토해보고 감사도 받았지만 법적인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 AIG가 매각하는 데 있어서 문제는 없다”라고 밝혔다. 특위 관계자 역시 “외국인 투자유치법, 지방재정법 등을 검토해봤지만 계약 자체를 그렇게 맺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 상황이라 답답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반전은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아직 ‘베일’에 가려진 계약 당시 상황이다. 특히 계약 당시 서울시와 AIG 측은 계약 내용 자체를 ‘비공개’로 합의했다. 게다가 계약서도 한글이 아닌 영어로만 작성되어 있다. 또 IFC 투자 당시 AIG 컨소시엄에 어떤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했는지 역시 베일에 싸여있는 상태다. AIG 측은 계약 당시 서울시에도 이 부분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적인 시와 외국계 기업의 계약으로 보자면 이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위 관계자는 “왜 계약을 비공개로 했는지, 또 어떤 투자자들이 투자했는지 부분을 살펴보면 여러 의혹들이 또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AIG 측에 관련 자료 공개를 요구한 상태”라고 전했다.
서울시 측은 비공개 계약은 상호 간에 비즈니스적 차원에서 정해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유치 의무화 조항을 넣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 계약 내용은 자세히 밝힐 수 없다. 이미 합의된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AIG 측 역시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특혜를 받은 적이 없다. IFC의 투자와 계약 및 전반에 대한 상황은 모두 관련법을 준수해서 정상으로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