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현지에서 비자 발급이 어려운 4명이 있으니 한국출입국관리소를 통해 베트남 영사에 연락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
여행사 대표이던 이 씨는 지난 2014년 2월 베트남 현지인 K 씨로부터 베트남인 12명에 대한 의료관광을 의뢰받았다. 이와 함께 K 씨는 베트남 현지에서 비자 발급이 거절된 4명에 대한 비자 발급을 부탁받았다. 한국출입국관리소를 통해 비자를 발급 받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당시 K 씨는 한국인 송 아무개 씨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비자 발급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대개 한국인출입국관리소를 통한 외국인 비자 발급은 3주~4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송 씨의 도움을 받게 되면 늦어도 2주 이내에 비자 발급이 이뤄진다는 게 K 씨의 설명이었다고 한다.
“은퇴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출입국관리소장을 알고 있다. 그의 전화 한 통이면 비자 발급 거절 대상자도 비자가 나온다. 대신 수고비로 한 사람당 30만 원을 내게 줘야하고, 출입국관리소장에게는 한 사람당 50만 원씩을 줘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소재로 삼은 영화 <방가? 방가!>의 한 장면.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이 씨의 비자 발급 의뢰에 대한 송 씨의 답변이었다. 그리고 송 씨는 서울출입국관리소의 한 출장소에서 한 달 전 무렵 은퇴한 이 아무개 전 소장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그렇게 연락이 닿은 이 전 소장은 베트남 현지에서 비자 발급이 거절된 4명에 대한 의료관광비자 발급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2주 뒤 4명에 대한 의료관광비자가 발급됐고 이 씨는 베트남인 12명에 대한 의료관광을 추진했다.
그렇게 지난 2014년 3월 초 베트남인 12명은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왔다. 12명 전원은 이 씨가 계획한 대로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입원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 중이던 베트남인 12명 가운데 5명이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이 씨는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를 하듯 사라진 5명의 베트남인에 대한 추적을 시도했으나 헛고생에 불과했다.
이 씨는 남은 7명의 베트남인들의 여권을 모두 회수했다. 이들조차 밀입국을 위해 도주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남은 이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며 “길을 잃으면 이 번호로 연락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 씨는 그렇게 종합건강검진을 마친 7명에 대한 남은 관광 일정을 진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남은 7명마저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제야 이 씨는 베트남인 12명 모두 밀입국을 하기 위해 국내 관광을 빙자한 단체 관광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관광을 의뢰했던 베트남 현지인 K 씨조차 이 씨와 연락을 회피했다.
이튿날 이 씨는 경기 광주경찰서 곤지암파출소로부터 기적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다. 한 방에 7명이 함께 묵는 점을 수상히 여긴 여관 주인의 신고로 도주한 베트남인 7명을 현장 체포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은 것이다. 당시 도주한 7명의 지갑 속에는 여권을 회수하며 나눠준 이 씨의 명함이 있었다.
인천공항 전경. 일요신문 DB
경찰 연락을 받은 이 씨는 송 씨와 함께 곤지암파출소로 향했다. 당시 파출소에서 베트남인 7명은 이 씨에게 “한국에서 살게 해 주세요” “돈 벌게 해주세요” 등의 말로 강제 추방을 막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씨는 이들의 부탁을 단호히 거절했다. 이미 이 씨는 관광객들의 도주로 손실이 막대했으며, 비자 대행 허가권까지 박탈당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 씨의 태도는 달랐다. 자신이 받아야 할 120만 원과 이 전 소장에게 건넬 200만 원 등 320만 원을 이들 7명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 씨는 그제야 송 씨도 베트남 밀입국 중간 브로커였으며, K 씨는 베트남 현지 밀입국 브로커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송 씨와 이 전 소장은 베트남인들로부터 돈 한 푼 받지 못했으며 베트남인들도 본국으로 추방됐다. 이 씨는 “최근 인천공항에서 밀입국을 시도하다 붙잡힌 사례보다 관광을 하던 도중 도주한 밀입국 사례가 훨씬 많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 은퇴 소장과 근무 직원, 베트남 현지 한인회와 모집 총책 현지인, 베트남 현지 브로커와 현지 영사 직원 간의 커넥션에 대한 집중 수사가 착수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덧붙여 “베트남인에 대한 국내 여행을 담당하는 신규 여행사들이 밀입국 조력자들로부터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중국인 밀입국자가 감소하는 반면 베트남 밀입국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씨는 밀입국 조력자들과 밀입국 시도자들 사이에 현금 거래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송 씨와 이 전 소장을 통해 알게 됐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송 씨에게 지급될 120만 원과 이 전 소장에게 지급될 200만 원을 관광 기간 도중 현금으로 치르는 것으로 합의했었다고 한다. 또 송 씨로부터 “K 씨는 이미 한 사람당 최소 100만 원씩을 현지에서 받았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이 씨는 “베트남 밀입국의 세계에 대해 경험으로 알게 됐지만 이미 여행업계에서는 한국출입국관리사무소의 은퇴 소장과 현직 근무 직원 간의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은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라며 “아직까지 코리안 드림을 희망하는 국가, 소위 못사는 나라의 현지 영사 직원들은 현지 밀입국 브로커들과 연계돼 있어 2년만 함께 일하면 서울에 집 한 채 정도는 산다더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대부분 현금거래로 이뤄지나 비자 발급 시 제출한 재산증명 서류(은행잔고내역서, 재직증명서, 급여증명서 등)가 허위로 작성된 경우가 많으니 조사하면 드러날 것”이라며 “비자 발급이 2주일 이내에 이뤄진 경우도 커넥션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