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24일 ISA 준비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벤트보다는 수익률이 고객을 확보하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일요신문 DB
3월 14일 시행을 앞둔 ISA 제도와 관련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ISA는 가입자가 예적금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선택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계좌를 뜻한다. ISA 도입 과정에서 금융위는 “금융상품을 운용해 얻은 수익에 대해 세제혜택을 부과하겠다”고 약속했다.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은행권은 경품 행사를 비롯한 이벤트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24일 ‘ISA 준비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벤트보다는 수익률이 고객을 확보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 간 고객 유치전에 불을 붙인 곳은 금융위다.
지난 12일 금융위는 ISA 시행을 ‘국민재산 늘리기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ISA 도입 취지에 대해 “저금리, 고령화 시대에 국민의 자산관리를 돕고, 재산형성을 지원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융위는 ”선진국에 비해 국내 가계 금융자산 비중이 크게 낮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위 측이 인용한 자료에서 한국의 가계 금융자산 비중은 26.8%로 일본(60.1%), 미국(70.7%)과 비교해 현저히 낮았다.
조사 기관과 표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가계 자산 대부분(50~70%)은 부동산에 몰려 있다.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야 전체 경기가 살아나는 구조다. 때문인지 ‘최경환 경제팀’은 지난해까지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상환 능력 등 변수가 있지만 대출이 늘어나면 은행의 수입도 함께 늘어난다.
이번 ISA 시행도 결과적으로는 은행의 이익을 위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최경환 경제팀이 추진한 ISA는 기획재정부 감독 하에 금융위가 칼자루를 쥐었다. 만기 5년 상품인 ISA는 최저 납입한도가 연 2000만 원이며, 사망과 천재지변 등 특수한 사정을 빼면 원금 및 이자 인출이 제한된다. 월 200만 원 가까이 납입할 수 있는 근로자, 자영업자가 주타깃이라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고객 돈을 묶어놓기 위한 금융권의 고민을 정부가 들어준 셈”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지난 24일 익명을 요구한 경제연구소 고위 관계자는 “금융기관에서 먼저 (제도 도입을) 제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중현 금융위 주무관은 지난 25일 “개별 은행과 ISA 도입 건으로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은 몇몇 대형 은행의 ‘숙원사업’이었다는 점에서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에 충분하다. 당초 금융위는 은행에 ‘투자자 맞춤형’인 신탁형 ISA만 허용했다가 펀드, 파생결합증권 등으로 구성된 일임형 ISA까지 허용하기로 시안을 바꿨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5일 산업분석에서 “은행의 투자일임업 진출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역할을 구분하는 글로벌 추세에 맞지 않고, 이미 금융지주체제를 확립한 한국에서는 유니버셜뱅킹(종합은행)으로 역행하는 것이란 비판이 강한 이슈”였다고 짚었다.
서 연구원은 또 “예적금이라는 가장 친숙한 금융상품, 두터운 고객층, 광범위한 지점망을 확보한 은행이 (ISA 시장에서) 유리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김태현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도 15일자 산업프리프에서 “증권업계보다 은행업계에 우호적이라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부산은행은 오는 3월 14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인 ‘YES! BNK 만능통장’ 출시를 앞두고 ‘ISA 맛보기 더블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그런데 기대수익률을 높이려면 포트폴리오에 ELS(주가연계증권), ETF(지수연동형펀드) 등 중위험 투자상품 포함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지만 금융위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성중현 주무관은 “일임형 ISA의 경우 가입자의 투자성향을 파악해 9개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도록 했고, 금융상품에 가입했더라도 다른 은행으로 갈아탈 수 있게끔 제도를 보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 간 수익률 경쟁이 과열되면 ‘불완전 판매’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은행권 관계자는 “수익률 유지를 통한 고객 유지가 ISA 시장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위마저 자체 홍보자료를 통해 “매월 165만 원씩 5년간 ISA에 납입하는 경우 공격투자형 상품(연 8%)에서 2350만 원의 세전수익이 예상된다”고 설명할 정도다.
여기서 문제는 적극투자형 상품(연 6%)만 해도 파생결합증권이 포함되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지난 24일 “은행사 스스로 어떤 상품이 구성될지 모르고 ISA 가입을 홍보하는 건 소비자를 현혹할 개연성이 높다”며 “은행이니까 수익을 보장해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휩싸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와 각 금융사의 홍보활동으로 ISA에 대한 예비 투자자의 관심은 높은 편이다. 소위 ‘만능 통장’으로 불리며 비과세 혜택이 부각되면서 홍보가 잘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비과세 혜택의 경우 정부, 여당이 지난 대선 당시 공약집(세상을 바꾸는 약속)에서 공언한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 확대’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이에 대해 성 주무관은 “보다 많은 국민에게 세제 혜택을 돌려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ISA 시행을 앞둔 은행권은 파생상품 판매를 위한 교육에 한창이다.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ISA 시장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18일 보고서 ‘산업노트’에서 “ISA 계좌 수는 도입 첫 해 260만 개, 2020년 순누적유입액은 100조 원 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100조 원대 시장을 선점하려는 은행사와 증권사 간의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