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과 청계재단 합성 사진. 일요신문DB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이 기부한 건물 중 한 곳엔 30억 원의 빚이 있었다. 이 역시 재단으로 편입됐다. 이 전 대통령 개인 채무를 재단이 물려받은 것이다. 이를 놓고 당시 야권 등에선 “장학금 지급은 생색내기일 뿐 결국 이 전 대통령 빚을 갚는 데 재단이 동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이 거액을 빌렸던 것은 ‘평생지기’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였다. 이 전 대통령은 2007년 천 회장에게 30억 원을 빌려 대선 직전 특별당비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야권은 대선 기간 내내 천 회장이 이 전 대통령 당비를 대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이를 잠재우기 위해 임기 초반인 2008년 4월 돈을 빌려 채무를 변제했던 것이다.
청계재단은 회의를 열어 재산 출연에 따른 부담부증여금 등(20억 원)과 30억 원의 채무 변제를 위한 방안을 논의했고, 그 결과 2009년 10월 또 다시 건물을 담보로 50억 원을 빌리기로 했다. 재단설립 후 가장 먼저 한 업무가 이 전 대통령이 남긴 빚을 청산하는 것이었다. 대선 자금 문제로 연일 속을 끓이고 있던 이 전 대통령으로선 ‘앓던 이가 빠진’ 셈이다.
이에 대해 당시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급 의원은 “거액을 빌려 모두 빚을 갚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그 돈 중 일부를 장학사업에 쓰는 게 나을 듯싶다. (채무상환이) 그렇게 급한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라고 꼬집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 역시 “청계재단이 뭘 할지 궁금했는데 제일 먼저 한다는 게 이 전 대통령 빚 갚기였느냐”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청계재단은 50억 원의 채무로 인해 뜻하지 않은 곤욕을 치르게 된다. 서울시 강남교육청이 채무를 장기 차입금으로 보고, 3년 내에 기금 및 부동산 매각 방법으로 상환하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채무를 갚을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학사업에 써야 할 비용 중 상당액이 이자로 나가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청계재단은 50억 원 채무에 대한 이자로 연간 약 3억 원을 지불했는데, 이는 재단의 한 해 장학금 총액과 비슷한 규모다.
상환 기한은 2012년 9월 21일까지였지만 청계재단은 돈을 갚지 않았다. 그러나 강남교육청으로부터 업무를 이관 받은 서울시교육청은 재발 방지를 전제조건으로 해서 채무 상환을 3년 뒤인 2015년 11월 1일로 연장해줬다. 이에 대해 보수 성향의 문용린 전 서울시교육감이 편의를 봐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1월 청계재단이 약속날짜까지 채무를 갚지 않자 설립 취소를 강행하겠다고 압박했다. 교육청은 재단의 장기 차입금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실태조사 등 행정 절차를 거쳐 설립 취소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재단의 재산은 모두 교육청에 귀속된다. 이에 청계재단은 부랴부랴 채무 변제에 나섰고, 올해 초 이 전 대통령이 출연한 또 다른 건물 한 곳을 판 것이다. 담보로 내걸었던 건물 등기부에 따르면 2월 1일 근저당권이 해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어찌됐건 이 전 대통령 대선 출마로 인해 생긴 빚은 청계재단에 이제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장학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지에 대해 회의적 시선은 여전하다. 이자 비용은 사라졌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건물 매각으로 인한 임대료 수입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그 중 하나다. 장학 사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청계재단은) 원래 자산 규모에 비해 장학금 규모가 많은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적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건물을 매각했다면 아무래도 장학사업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재단 자금 운용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재단의 장학사업이 점차 유명무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 전 대통령 측이 재단 설립 취소와 관련해 법적인 사항들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 친이계 의원은 “절차상 몇몇 문제점이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기부 의미를 훼손해선 안 될 것이다. 앞으로도 장학사업은 계속될 것이란 게 이 전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리고 일축했다.
그러나 한 야당 의원은 “솔직히 목적이 순수하다고 볼 수 있는 기부는 아니지 않았느냐. BBK 의혹, 다스 실소유 논란 등 재산 형성 과정이 도마에 오르자 재단 설립을 발표한 것이었다. 이는 청계재단이 대선 전략의 일환으로 설립됐다고 볼 수 있는 증거”라면서 “그 이후 청계재단은 의혹투성이 회사인 다스의 지분 5%를 증여받고, MB 채무를 변제하는 등 장학 사업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 이 전 대통령은 억울해하기보단 공익 재단다운 모습을 보이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