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8일 대법원이 꺼져가는 박지원 무소속 의원의 정치생명을 살리는 순간이었다. 2심(서울고법 형사3부)에서 선고한 대로 상고가 기각됐을 경우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될 위기였던 박지원 의원. 상고기각이면 사실상 정치생명은 끝이었다. 파장이 컸던 탓인지 판결 후 보름이 지났지만 법조계에선 아직도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선고 직후 “2심에서 박지원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할 때 ‘어? 이건 아닌데’ 싶었다”며 “사건 내용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사실 2심의 판단을 보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박지원 무소속 의원이 지난 2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법원 재판 결과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포부를 밝히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박지원 의원의 혐의는 2008년 3월과 2010년 6월 그리고 2011년 3월, 3차례에 걸쳐 저축은행 관계자들로부터 총 8000만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 1심은 박 의원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저축은행 관계자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3000만 원을 전달했다는 A 저축은행장의 진술이 정황상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문제는 2심 재판부가 A 은행장의 모든 진술을 다 유죄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것. 두 상황을 놓고 하나는 ‘유죄’, 하나는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는데 이 부분이 대법원에서 발목이 잡혔다.
사실 대법원 선고 전까지 박지원 의원 사건의 전망은 유·무죄가 팽팽히 갈렸다. 2심 재판을 맡은 강영수 부장판사가 법리와 사실 관계 판단에 밝다는 게 유죄를 전망하는 가장 큰 근거였다. 부패를 전담하는 서울고법 형사3부를 이끌면서 2년 동안 주요 사건이 단 한 번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이 없던 재판부였다. 전부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바쁜 시간을 쪼개 목포에 현장 검증까지 다녀왔다는 것도 유죄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였다.
물론 “한 사람의 진술을 놓고 신빙성을 다르게 판단한 것을 어떻게 따를 수 있겠느냐”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특히 전원 합의로 진행되는 대법원 소부(재판관 4명이 참여)가 전원합의체 회부 없이 선고를 한다는 결정이 나온 점, 그리고 총선을 두 달가량 앞두고 대법원이 선고기일을 잡자 무죄 취지로 박 의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기는 했다.
대법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는 “이런 저런 전망들이 난무했지만, 박지원 의원 상고심을 2월에 선고한 것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활동까지 고려한 셈이다”며 “어쨌든 정치인인데, 총선을 앞두고 판단을 내려줘야 하지 않나. 자세히 보면 정치인이 관련돼 판단이 필요했던 사건은 2월에 거의 모두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이런 ‘배려설’을 놓고 법조계에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아직 상고법원을 포기하지 못한 대법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박지원 의원에게 ‘한 표’를 얻기 위해 무죄를 선고했다는 해석이 바로 그것. 당연히 선고 직후 박지원 의원은 대법원의 판단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 측은 “사법부가 상고법원을 놓고 정치인에게 그런 제안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 자체가 불쾌하다”며 “너무 정치적인 시각으로 사법부를 해석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사법부는 오로지 법리로만 사건을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남윤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