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지대에 펼쳐진 농장엔 한국 과일과 채소 16가지가 자란다. 농장 곳곳에는 물고랑이 있어 물이 풍부하게 흐른다.
반둥 시내에서 1시간 남짓. 농촌마을을 지나 고원지대로 자동차가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숲속으로 난 산길을 오르니 멀리 하늘로 치솟은 군뚜르 산(Gungung Guntur)이 보입니다. 해발 2300미터급인 이 산 아래 해발 1500미터의 고원지대가 펼쳐져 있습니다. 까모장(Kamojang)이라고 불리우는 분지마을입니다. 이곳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토속농장 ‘한국작물시험장’이 있습니다. 까모장으로 가는 산길에 비가 뿌리기 시작합니다. 길을 가며 아주 오래전 이곳에서 열린 ‘반둥회의’를 떠올려봅니다. 작년에 60주년 기념회의가 성대하게 있었으니 1955년의 일입니다.
60년 전,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시대의 한 분기점이 되는 잊지 못할 국제회의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29개국 대표가 반둥에 모여 외친 ‘비동맹 선언’입니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인도의 네루, 중국의 저우언라이, 이집트의 나세르가 이끈 회의였습니다. 이 회의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되고, 미국과 구소련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이 유지되었고, 유럽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아시아 아프리카 민족들이 독립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반둥정신’은 아직도 정치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60주년 기념회의에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정성을 기울였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은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이 나라 국민들과 우리 국민들이 크게 실망했다고 합니다.
자욱한 안개를 뚫고 까모장 분지에 도착했습니다. 깔끔하고 조용한 농촌마을입니다. 서늘할 정도로 선선합니다. 산기슭 곳곳에 굵은 파이프라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휴화산의 지하 깊은 곳을 뚫어 고열을 이용하여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마을 건너편에는 지열발전소가 있고 발전소마다 증기가 하늘로 뿜어나오는 게 장관입니다. 인근에 온천 명소 가릇 찌빠나스(Cibanas)가 있습니다. 계곡과 돌더미 사이로 흐르는 온천지대입니다. 가릇에서 까모장으로 오는 길에는 온천욕을 하며 지내는 아늑한 리조트가 3개나 조성되어 있습니다.
무, 토마토, 참외가 자라기까지 신기선 대표의 오랜 연구와 정성이 이 농장에 깃들어 있다. 왼쪽이 신 대표.
‘한국작물시험장’ 신기선 대표가 이 나라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도였습니다. 젊은날엔 골프프로였습니다. 골프에 인생을 건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의 마음엔 농업에 대한 꿈이 있었고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일하다 시간이 나면 인근지역을 다니며 기후와 흙과 물 등을 조사했습니다. 큰 도시주변은 안가본 곳이 없습니다. 2006년 본격적으로 농업에 뛰어들었고, 때론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이곳 까모장 농장을 시작하면서 가족도 이주하게 됩니다. 이 지역에서 한국 작물을 시작한 지는 5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은 기후가 14℃와 24℃ 사이를 유지하고 날씨는 선선하고 비가 적절하게 온다고 합니다. 땅도 모래가 섞인 흙이고 산중턱인데도 물이 풍부해 물고랑에 물이 잘 흐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지역은 반둥 시내와 가깝고 자카르타까지는 서너 시간 걸리므로 신선도를 유지하며 출하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신 대표가 이곳에서 성공하기까지에는 많은 독서와 한국작물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가 그 비결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종과 병충해. 이 나라엔 없는 작물이니 스스로 공부하고 그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물에 병이 생기면 한국 농업전문가의 지침을 찾아서 인도네시아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모종에서 거름, 유통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토종’이기에 혼자서 해결하는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스무 명이 넘는 현지인 일꾼들을 교육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동고동락하다보니 이젠 마음이 서로 잘 맞는다고 합니다.
해외에서 살아가려면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삶을 유지하는 성실한 자세도 필요합니다. 그나라에서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외로운 길입니다. 이 사람에겐 ‘토종작물’을 현지화하는 일이기에 두 나라의 농업기술을 동시에 연구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제 하루밖엔 안되는 짧은 시간을 만나 헤어지며 같이 저녁식사를 합니다. 농장에서 제가 한국의 야채들을 뜯거나 뽑아서 반둥의 한 식당에 가져갑니다. 저도 미얀마에서 먹고싶었던 우리의 채소들입니다. 고추와 토마토, 참외, 상추, 당근 등. 한국의 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식당 안 인도네시아 식객들이 우리 식탁을 신기한 듯 쳐다봅니다.
꼭 가고싶었던 반둥의 한국토종농장. 우리의 ‘반둥회의’도 작별의 시간이 왔습니다. 제가 속으로 말을 건넵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한 것으로 만든 한국인. 당신이 진정한 프로입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