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한국기원에서 막을 내린 제6회 영재 입단대회에서 김선기(14)와 현유빈(13), 제4회 지역영재 입단대회에서 박정수(14)가 입단에 성공했다. 이들의 입단으로 (재)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는 모두 320명(남자 265명, 여자 55명)으로 늘었다.
영재 입단대회는 입단 지망자 감소와 바둑 영재들의 중도포기를 막기 위해 지난 2012년 도입된 제도다. 첫해 열린 제1회 대회에서 신진서와 신민준이 입단했고 이들은 입단하자마자 국내와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영재 입단제도가 만리장성을 깨뜨릴 비책임을 증명해냈다.
신진서와 신민준에 이어 2013년 설현준과 최영찬(2회), 2014년 박진영, 박종훈(3회), 2015년 4월 박상진, 김지명(4회), 7월 강우혁 초단(5회)을 입단자로 배출한 바 있다.
한국기원이 영재 입단제도를 신설한 것은 중국 ‘90후 세대’의 위력이 가시화되면서부터다. ‘90후 세대’란 중국의 90년 이후 출생자를 말한다. 현 세계랭킹 1위로 평가받는 커제와 판팅위, 미위팅, 양딩신 등 대부분의 실력자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우리도 그동안 세계무대를 호령했던 이창호(11살), 이세돌(12살), 박영훈(14살), 박정환(13살), 강동윤(13살) 등이 모두 10대 초반에 입단했다. 바둑계에서는 ‘15세 이후에 입단해서는 세계 정상에 오르기 어렵다’는 말이 정설로 굳어가고 있는데 이런 이유로 인해 최근 영재입단대회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2012년 제1회 영재입단대회를 통해 프로에 발을 내디딘 신진서는 입단 3년 만에 국내 최고기전 렛츠런파크배 우승컵은 물론 랭킹7위까지 수직상승, ‘천재 위에 영재 있다’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바 있다.
올해 프로기사 입단에 성공한 영재들. 왼쪽부터 김선기, 현유빈, 박정수.
올해 영재입단대회를 1순위로 통과한 김선기 초단은 2002년 생으로 양천대일바둑도장에서 수학했다. 2014년 열린 일요신문배 전국어린이바둑대회 최강부를 제패한 실력파.
그를 지도한 양천대일바둑도장의 김희용 원장은 “전투 지향적이고 힘이 좋다. 과거엔 승부를 서두르는 경향이 있었는데 많이 좋아졌다. 당장 젊은 프로기사들과 대국한다면 25% 정도 승률이 가능하다. 저 나이 대에서는 적은 수치가 아니다”라며 “그동안 수많은 입단자를 배출했지만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제자”라고 평했다.
본인 역시 “강동윤 9단이 롤 모델이다. 타개 솜씨를 본받고 싶다. 목표는 국가대표 육성군에 들어가 힘을 키워 강동윤 9단처럼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영재입단 2호 현유빈 군(2002년생, 한종진바둑도장)은 열혈 바둑광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4살에 바둑에 입문한 케이스. 아버지 현경호 씨는 이창호 9단의 광팬으로 이 9단의 팬클럽 ‘두터미’의 회장이기도 하다. 한종진 9단에 따르면 현유빈은 이창호 9단처럼 성실한 성격에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물론 기재도 출중하다. 다만 중간에 1년 9개월 간 슬럼프가 찾아와 바둑돌을 놓은 적이 있는데 그 시간을 무척 아쉬워했다.
지역영재입단대회를 통해 프로 관문을 뚫은 박정수 군(2001년생, 대구바둑협회)은 특이한 이력의 케이스. 바둑도장을 거치지 않고 대구바둑협회 내 연구실에서 입단에 성공했다.
대구시 바둑협회(회장 이재윤)는 그동안 지역 내에서 입단을 시키는 것이 지역 바둑계도 사는 길이라 믿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는데 이번에 박정수 군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박 군은 인터뷰에서 “입단할 때까지 대구바둑협회에서 기거하다시피 하며 공부했다. 이재윤 회장님을 비롯해 현철영 전무님, 또 지도해주신 유경민 사범님, 박영진 사범님께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6회 영재입단대회 대회장 전경.
입단은 했지만 이들의 관리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재 입단자들의 현재 실력은 기존 프로들에게 선 정도의 칫수. 즉 덤 없이 비슷한 정도의 수준이다(혹은 그 이하). 그런데도 이들을 프로기사로 만든 것은 앞서 설명했듯 미래에 대한 투자 개념이었다. 그래서 초창기 영재 입단자들은 별도의 선발전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국가대표 육성군에 합류했다. 육성군에 들어가면 대부분 초일류 기사들인 국가대표 선배 기사들과 공동연구와 대국이 가능하다. 기량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실제 신진서 5단은 인터뷰를 통해 “국가대표에서의 공부가 가장 큰 단련이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재들의 육성군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일반인 입단대회와 연구생 입단대회 출신에게도 같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즉 이제는 영재들도 선발전을 거쳐야 육성군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이게 가능할까. 한종진 9단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영재 선발은 한창 흡수력이 좋은 시기에 국가대표 팀에 합류시켜 단 기간에 최고의 기사로 육성하자는 취지였다. 그들을 통해 세계바둑 최강 자리를 지키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실 14세 미만들만 참가 가능한 영재 입단제도 자체가 특혜다. 그런 것을 다시 경쟁을 거쳐 국가대표로 들어오라는 것은 영재들은 국가대표에 합류시키지 않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현재 영재 입단자들과 일반 입단자는 4~5세 차이가 나는데 이 시점에서 실력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영재들은 혼자 공부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럴거면 굳이 영재를 입단시킬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원칙도 있고 이해관계도 얽혀 있어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옳은 길일까. 한국 바둑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바란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