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디션프로 <더 보이스> 시즌4에서 우승후보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주디스 힐이 ‘톱8’ 무대에서 예상밖 탈락을 했다.
1984년 LA에서 태어난 주디스 힐은 뮤지션의 유전자를 타고 났다. 어머니는 일본인으로 피아니스트이며 아버지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 1970년대 펑크 밴드 멤버였다. 바이올라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힐은 이후 프랑스로 건너나 전설적인 샹송 가수 미셸 폴라레프의 무대에 함께 섰고, 미국으로 돌아온 후 싱어송라이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풍부한 소울과 개성 넘치는 톤의 목소리를 지닌 그녀는 이후 수많은 가수들의 백 보컬로 활동했다. 그렉 올맨, 아나스타샤, 파브리치오 부안네, 안드레 크라우치, 해롤드 펠터마이어, 조쉬 그로반, 테일러 힉스, 에블린 킹, 마이크 올드필드, 로비 윌리엄스 등의 무대에 힐의 목소리가 있었다. 또한 캐롤 킹, 배리 매닐로우, 로드 스튜어트 같은 전설적인 뮤지션들도 힐을 원했다. 놀라운 건 그 스펙트럼이었다. R&B, 힙합, 재즈, 블루스, 팝은 물론 가스펠과 성악까지, 주디스 힐이 커버하지 못하는 장르는 없었다.
이후 그는 조금씩 자신의 무대를 넓혀갔다. OST에 참여하기도 했고, 냇 킹 콜의 트리뷰트 앨범에도 목소리를 실었다. 결정적인 건 마이클 잭슨과의 작업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잭슨은 ‘디스 이즈 잇’이라는 이름의 투어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주디스 힐과 1987년에 발표한 발라드 ‘I Just Can‘t Stop Loving You’를 듀엣으로 부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잭슨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힐은 추모 콘서트에서 잭슨의 ‘Heal the World’를 불러 세상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아직 정식 앨범을 내고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주디스 힐은 결코 아마추어라 할 수 없는 실력의 소유자였다.
그녀가 등용문으로 선택한 건 오디션 프로그램인 <더 보이스>였다. 2013년 ‘시즌 4’에 참가했고, 첫 무대부터 존재감은 빛났다. 심사위원은 ‘마룬 5’의 애덤 리바인, 샤키라, 어셔, 컨트리 아티스트인 블레이크 셸턴까지 쟁쟁했다. 힐이 선택한 노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What a Girl Wants’. 그들은 힐의 노래에 모두 의자를 돌리는 ‘올 턴’을 연출했고, 특히 리바인과 어셔는 첫 소절을 듣고 버튼을 눌렀으며 노래가 끝나자 의자 위에 올라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심사숙고 끝에 힐은 애덤 리바인의 팀을 선택했고, 리바인은 “힐은 장차 그래미상을 탈 가수”라고 극찬했다.
배틀 라운드는 제임스 브라운의 ‘It’s a Man‘s Man’s Man‘s World’로, 녹아웃 라운드는 브렌다 리의 ‘Always on My Mind’를 불러 통과했고 드디어 생방송 무대였다. 여기까진 리바인의 선택이었다면, 이젠 시청자 투표가 좌우하는 상황이었다. ‘톱 12’와 ‘톱 10’은 수월하게 통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톱 8’ 무대였다. 그녀는 윌.아이.엠의 ‘#thatPOWER’를 불렀다. 언제나처럼 파워 보컬과 프로페셔널한 퍼포먼스가 빛났고, 공연 내내 애덤 리바인은 미소를 띠며 낙관하고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투표 결과 주디스 힐은 떨어진 것. 리바인 팀으로 역시 ‘올 턴’의 주인공이었으며 힐과 함께 우승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새러 시몬즈도 탈락했다. ‘톱 8’ 가운데 리바인 팀이 세 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두 명이, 그것도 뛰어난 실력을 지녔던 힐과 시몬즈가 떨어진 것. 사실 시몬즈는 그날 평소와는 다르게 퀄리티가 떨어지는 라이브를 보여주어 큰 이견은 없지만, 힐의 탈락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를 두고 현지 언론은 “리바인 팀이 대량 학살을 당했다”는 선정적인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리바인은 “이 나라가 싫어졌다”고 말할 정도였다.
선곡이 문제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thatPOWER’가 윌.아이.엠의 신곡이긴 했지만, 빌보드 차트 17위까지밖에 못 올라간 미지근한 노래였기 때문. 펑키하고 다소 전위적인 의상과 퍼포먼스도 관객에게 비호감 요소로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녀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오히려 반감을 샀을 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톱 10’에서 마이클 잭슨의 ‘The Way You Make Me Feel’을 불렀을 때 잭슨 추앙자들이 수많은 악플을 남겼는데, 이때 형성된 안티 기류가 영향을 미쳤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대중의 선택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더 보이스> 사상 가장 뛰어난 참가자 중 한 명이었던 주디스 힐은 그렇게 무대를 떠나야 했다.
주디스 힐의 오디션프로 마지막 무대가 된 ‘톱8’ 생방송 장면.
이후 그녀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2013년 가을엔 조쉬 그로반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섰고 소니 뮤직과 계약을 맺었다. 2014년엔 존 레전드의 영국 투어 무대에 섰다. 그리고 2015년, 자신의 우상이었던 프린스와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오디션 쇼는 현실이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고 했던 주디스 힐. 백 보컬, 오디션 참가자, 오프닝 가수 등을 거친 그녀는 이제 자신만의 무대를 가지게 되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