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 포스터.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된 ‘귀향’은 개봉 닷새 만에 1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하루에 1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있는 상황에서 그리 대단한 흥행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이 스코어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귀향>의 손익분기점은 60만 명. 이는 불과 개봉 나흘째 되던 날 달성했다. 이 영화는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모은 돈으로 만들었다. 누군가가 흥행을 위해서 투자한 영화가 아니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영화라는 의미다.
하지만 <귀향>이 처음부터 주목받은 것은 아니다. 민감한 소재인 데다 지난해 말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라 정치적 이슈로 비화될 가능성도 높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대로 상영관을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개봉 전까지 스크린을 100개도 얻지 못할 것이란 흉흉한 이야기가 나돌았고, 그나마 배정받은 상영 시간대도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입소문이 돌고, <귀향>을 보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1일까지 스크린은 876개까지 늘어났다. 영화를 보고 온 관객들은 <귀향>을 보고 느낀 감정을 SNS를 통해 전파하며 입소문은 꼬리를 물고 있다.
<귀향>의 흥행과 이로 인한 반일 감정이 거세지는 것은 사실 정부로서는 달갑지만은 않다. 지난해 12월 28일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들에게 10억 엔을 보상하며 이 사태를 매듭짓기로 한국과 합의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후폭풍은 엄청났다. 지난 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와 ‘나눔의 집’ 소속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6명은 서울 중학동 옛 주한일본대사관 맞은편의 ‘평화의 소녀상’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합의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중의 반대 여론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무엇보다 이 문제의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사전 의견 조율이 없었고, 그들의 상처를 제대로 보듬지 못한 합의라는 날 선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불똥은 영화 체인을 갖고 있는 기업으로 옮겨 붙었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 CJ CGV가 정부의 눈치를 보다가 경쟁사인 롯데 시네마나 메가박스에 비해 <귀향>에 상영관을 적게 배정하고 있다는 등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다. 사실 여부를 명확히 밝힐 수는 없으나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대형 영화 체인들이 <귀향>에 더 많은 상영관을 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귀향>의 흥행을 둘러싸고 ‘짚을 건 짚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귀향>은 ‘꼭 봐야 하는 영화’라는 수식어와 함께 ‘욕할 수 없는 영화’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는 영화의 완성도와 만듦새에 대한 일침이다.
유명 웹툰 작가 강풀은 <귀향>을 보고 난 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귀향>은 영화적 완성도를 따지자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관람을 추천한다. 가끔은 보고나면 추천할 수밖에 없는 영화가 있다”고 감상평을 올렸다.
영화 ‘귀향’ 스틸컷.
분명 <귀향>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를 담은 작품이다. 한국와 일본의 합의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는 상황에서 더욱 더 관객들이 보고 되새겨야 할 메시지를 품고 있다. 하지만 조정래 감독의 연출이 그리 훌륭하지는 않은 편이다. ‘좀 더 잘 만들었다면…’이라는 아쉬움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는 <귀향>에 스크린을 많이 배정하지 않은 영화 체인들의 해명에 포함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관객이 많이 찾을 영화에 많은 스크린을 배정하는 상업 논리로 따졌을 때 <귀향>이 그리 높은 점수를 받은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귀향>은 유명 배우가 출연하거나 이름값 높은 감독이 연출하지도 않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많은 스크린을 내 줄 조건은 아니었다”며 “이윤 추구를 최대 목적으로 삼는 기업이 운영하는 영화관에 역사의식을 강요할 수는 없으나, 지금 분위기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귀향>은 이미 흥행에 성공했다. 위안부 사태를 둘러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성공했다. 이제는 이 흥행으로 인한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모은 만큼 돈을 댄 이들에게 합당한 수익을 배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위안부 사태 해결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찍부터 제기되고 있다.
상업 논리로 따진다면 굳이 <귀향>의 수익금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극장들이 상업적 논리를 앞세워 상영관을 배정하지 않았다고 여론의 질타를 받았듯, <귀향>으로 번 돈이 고스란히 제작자와 투자자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면 또 다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자칫 위안부 문제를 돈을 벌기 위한 소재로만 사용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의미 있는 기부 등이 필요한데, 이 역시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그만큼 위안부 문제와 이를 이야기한 <귀향> 모두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