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1차 컷오프 명단을 발표한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이 그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심상찮다. 특히 주목받은 인물은 홍의락 의원이다. 더민주의 최대 험지인 대구 공략의 첨병이었던 홍 의원이 컷오프 결정 직후 탈당계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주목받게 된 또 다른 인물은 홍 의원과 함께 대구 공략의 최일선에 나선 김부겸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이번 결정에 대해 진노하며 당 지도부에 ‘철회’를 요청했다. 분명 이번 사태는 김 전 의원이 그동안 어렵사리 공 들여온 대구 민심에 중앙당이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됐다. 또한 이번 사태는 총선 직후 치열하게 전개될 야권 내 당-대권 레이스의 전조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야권의 험지인 대구 공략을 함께해온 동지 홍의락 의원의 컷오프에 김부겸 전 의원은 진노했다. 총선 이후 차기 당·대권을 둘러싼 그의 행보가 더욱 주목받게 됐다. 일요신문DB
“혹여 문재인 의원께서 김부겸 전 의원이 본인을 대적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해서 이 부분을 겁먹고 그런 것 아니냐는 의혹을 대구시민은 많이 가지고 있다.”
지난 2월 26일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가 원내대책회의에서 홍의락 의원의 컷오프와 관련해 꺼낸 공개 발언 중 일부다. 이에 대해 같은 날 기자와 만난 더민주의 한 당직자는 “여당 인사의 말이다. 야당 지도부 흔들기 내지는 비아냥일 뿐”이라며 “홍 의원이 김부겸 전 의원과 뜻을 함께하고 있다고 해서 문재인 전 지도부가 정무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은 지나치게 일차원적인 해석 아니냐”라고 애써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당직자는 이어 “물론 이번 컷오프에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애초 정략적으로 지역구 공략에만 올인했던 홍 의원이 컷오프의 계량적 잣대(의정활동 70%+다면평가 30%)로 동일하게 적용받는 것은 다소 비합리적”이라며 “김부겸 전 의원이 진노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염려스러운 점은 이번 일로 인해 통합을 지향하는 더민주의 행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다. 어찌됐건 김 전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당선만 된다면 유력한 차기 당-대권 후보가 될 것이다. 앞서의 1차 컷오프를 설계한 지도부는 현 김종인 지도부가 아닌 문재인 지도부였다. 김 전 의원은 섭섭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부겸 전 의원은 25일 홍 의원의 컷오프에 대해 “대구에서 벌써 ‘더민주는 대구를 진작 포기하는 거냐’라고 한다. 그동안 진심이 조금이나마 전해졌는지 조금씩 따뜻한 호응이 돌아오는 시점인데 정작 등 뒤에서 얼음 칼에 찔리는 기분”이라고 당 지도부에 불쾌함을 표하며 “저의 요청(홍 의원 컷오프 철회)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저 또한 중대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탈당 가능성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앞서 당직자의 우려는 곧 문재인을 중심으로 하는 잔여 친노 세력과 이와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는 김 전 의원이 총선 직후 어떤 개편 방향으로 흘러가느냐에 대한 것이다. 앞서의 조원진 원내부대표의 말이 다소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야당 입장에서도 어떤 면에선 단순한 허언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는 형국이다.
실제 오는 총선 직후 더민주의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다. 이는 여당도 마찬가지다. 전례를 비춰봤을 때 당 안팎에선 오는 8월을 전후로 개최될 가능성이 높다. 총선이 불과 코앞이지만, 한 수를 더 내다보는 정치판의 선수들은 벌써 이 이벤트를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당권에 도전하고자하는 선수들 입장에선 차기 전당대회까지 결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만약 8월에 전당대회가 치러진다면 이제 불과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셈이다.
실제 몇몇 중진들은 이미 연초부터 총선 직후 당권 도전에 대한 계산을 시작했다. 지난 1월께 기자와 만난 범주류 진영의 한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이미 우리는 차기 당권 도전의 패가 섰다”라며 “당-대권에 흥미가 있는 의원실 대부분 우리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도 오는 전당대회 최대 변수는 김부겸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이라고 꼭 짚은 바 있다.
현재의 구도를 놓고 볼 때, 김 전 의원이 총선을 승리로 장식하게 된다면 그의 몸값은 단숨에 상승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된다면 김 전 의원은 결국 문재인 프레임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진영과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고, 차기 당-대권 행보를 두고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행보는 김 전 의원 본인의 선택을 넘어 당에 잔류한 비주류 인사 등 주변의 요구로 다가올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에 대해 김 전 의원의 한 측근은 “(차기 당권 출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총선 승리가 우선”이라며 “아직까지는 본인 스스로도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도 없고, 현재로선 주변의 바람 수준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물론 당장 총선이 코앞인 마당에 이러한 계산과 예측이 섣부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미 정계 안팎에선 총선 직후 야당, 더 나아가 정치권 전체에서 이뤄질 이합집산에 벌써부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중 하나의 축은 제1야당 차기 지도부다. 이 점 때문에 이번 ‘홍의락 컷오프’를 계기로 야권 잠룡 김부겸 전 의원의 향후 행보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한편, 더민주는 곧 2차 컷오프를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1차 컷오프가 문재인 전 지도부의 기획이었다면, 2차 컷오프는 김종인 현 지도부의 ‘물갈이’ 작품이다. 특히 2차 컷오프는 중진 하위 50%, 초·재선 하위 30%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공천 배제 심사가 예정됨에 따라 야권 의원들은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