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상적인 4라운드 마지막 홀 버디로 US여자오픈 챔피언이 된 김주연이 우승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었다. 그는 지난 4년간의 LPGA 도전이 ‘눈물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했다. 로이터/뉴시스 | ||
US오픈 우승자 김주연(24·KTF)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기자들은 ‘자고 나니 유명해졌다’는 말로 그를 띄우지만 정작 당사자는 오히려 US오픈 우승 후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며 웃는다. 새벽 3시에 전화해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한국 기자들이 있는가 하면 지난달 30일(한국시간)부터 열린 LPGA 투어 HSBC여자월드매치플레이챔피언십의 프리인터뷰 때는 미국 진출 후 처음으로 프레스룸으로 초청돼 기자들과 공식 인터뷰를 가졌다. 연습을 제대로 못할 만큼 줄을 잇는 인터뷰 요청과 갤러리들의 사인 공세 등 생전 처음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다소 힘들 것도 같은데 그는 ‘행복한 고민’ 운운하며 모든 걸 ‘감사하다’는 말로 정리한다. 전화 연결이 너무 어려워 밤을 꼬박 새웠다는 기자의 하소연에 오히려 ‘죄송하다’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말 속엔 김주연이란 골퍼의 나이답지 않은 푸근함과 성숙함이 가득했다.
우승이후 먼저 US오픈 우승 후 가장 많이 달라진 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전에는 출전하고 싶어도 출전할 수 없는 대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시합에 많이 나갈 수 있게 돼 정말 좋아요. 응원도 많이 해주시고 대우도 달라진 것 같구요. 미국 와서 행복하다는 느낌 별로 없었거든요. 요즘 참 행복해요.”
그렇다고 해서 매일같이 구름 위를 두둥실 떠다니는 그런 기분은 아니다. 우승은 잠깐이고 그 앞에 놓인 건 또 다른 대회와 도전이다.
“난 아직 스타가 아니에요. 톱에 올라갈 만한 실력도 아니구요. 그런데 매스컴에선 사람을 완전히 ‘개조’시키더라구요. 날 갑자기 신데렐라로 만들었다가 ‘메이저 퀸’으로 부상시켰다가 애니카 소렌스탐이나 박세리 프로랑 대등한 선수로 올려놓더라구요. 너무 심하게 띄우세요. 민망할 정도로. 사실 US오픈 우승은 진정한 내 실력이라기보다는 운도 많이 작용했거든요.”
김주연은 하루아침에 매스컴에 의해 신데렐라로 부상했다가 성적 부진으로 ‘꽃마차’가 ‘호박’이 되는 걸 직접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과 다짐들이 오갔다며 ‘냄비 스타’가 되는 걸 가장 경계한다고 먼저 선수를 친다.
▲ 로이터/뉴시스 | ||
“컷오프는 나한테 아주 흔한 일이었어요. 어쩜 당연한 일이기도 했죠. 대회 출전할 때마다 또 컷오프되겠지? 하는 마음도 들었으니까요. 이틀을 꼬박 운전해서 간 대회에 컷오프를 당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기력도 생기지 않았어요. 그냥 거기서 주저앉고 싶었죠. 그래도 슬럼프는 겪지 않으려고 했어요. 내 실력이 이것 밖에 안 되는 거니까 인정하고 또 도전하자. 뭐, 이런 마음으로 견뎌냈죠.”
국내 아마추어대회에서 19차례나 정상에 오르는 등 아마추어 최강자로 인정받았던 김주연은 국내에서 프로 테스트를 받지 않고 곧장 미국으로 향한 이유를 이렇게 풀어냈다.
“만약 한국에서 프로가 됐다면 미국에서 실패했을 경우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어요.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한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절박함이 오랫동안 성적을 못 냈어도 버틸 수 있는 ‘끈’이 됐어요.”
숱한 갈등과 번민 속에서도 김주연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애써 뿌리쳤다고 한다. 처음엔 말이 통하지 않아 두통이 날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미국 사람들도 한국말 못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자, 틀린 영어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배짱도 생겼단다.
부녀지간 아버지 김용진씨는 김주연의 미국 생활 초기부터 일심동체로 움직였다. 딸의 성공을 위해 영어 한마디 못하는 척박한 땅에서 운전기사, 빨래, 식사 등을 손수 챙기며 몸으로 부대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1년 KTF와 스폰서 계약을 맺어 한층 여유를 찾았지만 계속되는 컷오프 탈락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김씨는 이때의 심정을 “도둑질이라도 해서 예선통과를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절박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러나 예민해진 딸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해지기만 했다. 김주연은 그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9월에 시카고 인근의 대회에 갔다가 컷오프됐어요. 정말 힘들더라구요. 아버지가 아침에 이렇게 물어보셨어요? ‘너 혼자 할 수 있겠냐’구요. 힘든 것도 혼자 힘든 게 낫지 아빠랑 같이 힘든 게 더 괴롭더라구요. 그래서 혼자 해보겠다고 말씀 드렸고 아빠는 그 길로 한국으로 돌아가셨어요. 아빠를 공항까지 바래다 드리고 혼자 마이애미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혼자 남았다는 느낌, 한 달 동안 속앓이 하면서 5kg이나 빠졌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홀가분했어요.”
외롭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런데 김주연은 그런 감정에 빠질 만큼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아버지가 없는 동안 정신적으로 더욱 강해졌다고 말하는 걸 보면 아버지의 귀국이 홀로서기와 맞물려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된 모양이다.
▲ 절친한 박세리(왼쪽)와 김주연. | ||
“아무리 애니카 소렌스탐이 잘 친다고 해도 내가 잘 쳐야지 그를 이길 수 있는 거잖아요. 그 사람이 못 치길 바라면서 기다릴 순 없어요. 이번에 US오픈에서 미셸 위랑 마지막 라운드에서 만났을 때 솔직히 그 친구는 내 사정거리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미셸이 잘 치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것보다 내가 잘 치는 게 훨씬 더 중요했죠. 그런데 미국 갤러리들 정말 일방적인 응원만 보내더라구요. 내가 친 파 퍼팅이 옆으로 새니까 ‘예스’하면서 아주 좋아라 하시던데요.”
김주연은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그걸 지키는 게 훨씬 더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걸 박세리를 통해서 절감했다고 한다. 박세리와 친자매 이상의 우애를 다지고 있는 김주연은 “세리 언니를 통해 정상에 오른 자의 외로움, 부담감, 풀어가야 할 숙제 등을 너무 많이 알게 됐다”면서 양쪽 아버지들의 친분이 딸한테까지 대물림했다고 표현했다.
사생활 골프장을 벗어난 김주연은 한국에서 방송된 코미디프로그램이나 쇼프로그램을 녹화한 비디오를 빌려 보는 걸로 스트레스를 푼다. 올시즌부터 아버지 대신 김주연의 매니저를 자처한 바로 밑의 동생 김현희양이 아버지가 받았던 ‘역경의 시간’들을 함께 보내고 있지만 김주연은 아버지보단 동생이 훨씬 편하다며 웃는다.
인터뷰 중간에 사적인 얘기를 나누다 이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고 결혼 얘기까지 나왔다.
“결혼요? 와우, 나한테는 너무나 먼 얘기인데요? 솔직히 결혼하면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은. 내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결혼해서 남편을 어떻게 챙겨요. 골프하면서 누구한테 맞춰주기보단 모두가 나한테 맞춰준 삶을 살았잖아요. 날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남자 아니면 결혼하기 힘들 것 같아요. 사실 난 결혼하기 싫어요. 독신주의자라고나 할까. 결혼하기엔 너무나 할 일이 많거든요. 동생들도 돌봐야 하고.”
김주연은 4녀1남의 첫째다. 막내 동생이 생후 4개월됐는데 아직까지 얼굴을 본 적이 없어 남동생의 존재가 실감나지 않는단다. 자신을 위해 모든 희생을 다했던 부모와 동생들을 위해 해줄 것도, 갚을 것도 너무 많다는 말 속엔 그의 속 깊은 면면들이 담겨 있었다.
독신주의자라고 해서 좋아하는 이상형이 없는 건 아니다. 김주연은 <풀하우스>에 나온 비를 보고 기절했고, 드라마 <건빵선생과 별사탕>의 공유에 ‘필’이 꽂혔다. “그런데 세리 언니가 공유를 좋아한다고 해서 살짝 포기한 상태예요”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무협소설을 즐겨 읽고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김주연의 일상 생활은 그 나이 또래의 여느 여자들과 다름없었다. 단 골프채를 들고 골프장에 들어섰을 때는 일상 생활의 김주연이 아닌 숱한 역경을 헤쳐온 ‘오뚝이’ 김주연이 있을 뿐이다.
“김주연의 지난 4년은 눈물의 연속이었어요.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거든요. 이젠 울지 않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내 목표는 세리 언니처럼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꾸준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우승했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도 변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선수. 이런 과분한 깜짝 사랑보다는 변함없는 응원을 받는 게 훨씬 더 기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