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리그에서 돌아와 친정 울산에 합류한 최성국이 ‘또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
지난 7월1일 날짜로 최성국은 J리그에서 K리그 선수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날인 6일, 홈에서 열린 포항과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 유상철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비록 짧은 생활이었지만 J리그에서 임대 선수로 생활하다 친정에 다시 합류한 소감이 궁금했다.
“집이 제일 편한 것처럼 팀도 마찬가지예요. 친정이라는 게 달리 친정이 아니더라구요. 또 오랜만에 선발 출장한 것도 기분 좋았어요. 일본에선 줄곧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거든요.”
마치 정해진 순서처럼 일본에서 힘들게 보냈다는 그 생활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게임 못 뛰는 사람의 심정을 너무 잘 알게 됐죠. 물론 좋은 모습으로 돌아온 건 아니지만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그 시간들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완전히 빈손으로 온 것은 아니니까요.”
가시와 레이솔로 5개월 임대돼 지난 2월 출국했을 때만 해도 최성국은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비록 완전 이적이 아니라 임대라는 타이틀이 맘에 걸리긴 했지만 일단 나가보자는 생각이 더 컸다. 선배들의 충고도 귀에 새겼다. J리그 경험이 풍부한 노정윤, 유상철은 가시와 레이솔의 일본 감독이 한국 선수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보이지 않는 차별이 심하다는 내용을 귀띔해줬다.
“형들이 그런 얘길 해주셨지만 당시엔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제가 잘하면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죠. 그런데 막상 부딪쳐 보니까 실감이 됐어요. 차별도 심했고 기회도 안 줬죠. 그래서 한번은 감독 면담을 요청한 뒤 ‘도대체 내가 뭐가 모자라서 게임을 못 뛰는지 얘기해 달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감독은 ‘실력있는 선수고 앞으로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해놓고 또 출전을 시키지 않는 거예요. 얼마나 황당하던지 그때 참 힘들었어요.”
최성국은 임대가 아닌 이적으로 갔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계약서는 5개월이었지만 실제로 주어진 시간은 3개월이었다. 그 3개월 동안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인정받아서 또 다른 팀으로 옮겨가든가 아니면 완전 이적으로 재계약을 맺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최성국은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처음엔 벤치에 앉아본 경험이 많지 않아 무척 어색했고 화도 났어요. 감독도 참 이상해요. 계속 앉혀 두다가 어렵게 출전시키는 경기 상황이 대부분 3-0, 5-0으로 지고 있을 때예요. 그런 상황에 들어가면 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요. 그냥 뛰어다니기 바쁘죠.”
▲ 최성국이 지난해 아테네올림픽에서 활약하던 모습. | ||
“22게임 중 한 12게임 정도 뛴 것 같아요. 풀타임은 서너 번이었고 나머지는 후반 교체가 대부분이었죠. 경기 종료 10분을 남겨 놓고 들어간 적도 있어요. 한마디로 괴로웠습니다.”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은 시간들이었다고 희망적인 결론을 내린다. 게임에 출전을 못했을 뿐 경기를 보는 안목과 체력, 테크닉 면에선 플러스 효과가 많았다는 것. 지극히 내성적일 것 같은 외모와는 달리 선수들과도 빨리 친해져 가시와의 모든 선수들이 최성국의 집을 방문해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 솜씨에 반해서 돌아갔다는 설명에는 비로소 얼굴이 활짝 펴진다.
언제부턴가 최성국의 모습을 대표팀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한때 청소년, 올림픽에다 성인 대표팀을 넘나들며 정신 없이 보냈던 ‘과거’도 있었는데 지금은 태극마크 다는 게 영 힘들기만 하다. 가끔 축구팬들이 ‘지금 최성국은 어디서 뭘 하고 있나요?’라며 ‘생뚱맞은’ 질문을 해올 때도 있었다는 얘기를 전하자 최성국은 고개를 푹 숙인다.
“저도 대표팀에 들어가고 싶어요. 욕심도 많이 나구요. 그런데 감독님이 불러주시질 않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아직 제 나이가 젊으니까 반드시 기회는 있을 거예요. 월드컵요? 당연히 뛰고 싶죠. 제가 더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희망도 생길 거라고 믿어요. 누굴 탓하기보단 제가 달라져야 하는 거잖아요.”
가끔 바쁘게 보냈던 이전의 대표팀 생활을 떠올리며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들’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이 없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기회와 운이 따른다면 그 행복했던 시간들이 또다시 재연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한다.
쿠엘류 감독이 보고 싶을 것 같았다. 여느 선수들보다 쿠엘류 감독의 재임 시절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였기 때문에 그 감독에 대한 애틋함이 클 것으로 짐작됐다.
“쿠엘류 감독이요? (웃으면서) 보고 싶죠. 고맙기도 하구요. 절 많이 챙겨주셨으니까요. 감독님마다 좋아하는 선수 스타일이 있는 것 같아요. 저랑 쿠엘류 감독님과는 그게 잘 맞아떨어졌어요. 솔직히 어떤 감독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선수의 운명이 달라진다고도 할 수 있어요. (박)지성이형이 히딩크 감독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처럼요.”
표현 못할 아쉬움과 미련이 가득 묻어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다시 최성국이 싫어하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축구선수치곤 작은 체격(170cm, 67kg) 얘기였다.
“그런 질문 진짜 많이 받거든요. 그런데 전 타고난 결점을 커버할 만한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해요. 물론 키가 더 컸다면 정말 좋았겠죠. 대신에 전 키가 크지 않은 대신 남들이 갖지 못한 드리블 돌파력으로 제 단점을 커버하려고 노력했어요. 또 제가 좋아하는 선수가 마라도나였기 때문에 별다른 아쉬움은 없어요. 이미 주어진 상황인데 자꾸 미련 두면 뭐해요. 여기서 더 좋은 방법을 찾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