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혜인은 현재 심장 부정맥 진단으로 농구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활짝 펴보지도 못한 기량이 안타깝다. | ||
신혜인(20·신세계)이 여름리그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27일 심장 부정맥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다가 최근 다시 쓰러졌다. 병문안을 가장(?)한 애매한 입장이 돼서 지난 19일 삼성의료원에 입원중인 신혜인을 찾아갔다. 농구 유니폼 대신 환자복을 입고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은 신혜인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몸과 마음이 단단해져 있었다. 현실을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아픈 사람, 그것도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될 지도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인터뷰를 부탁하는 일도 어렵다. 물론 생사의 기로에 놓인 건 아니지만 운동을 계속할 경우 치명적인 위험이 올 수도 있다는 진단 결과는 선수한테 ‘사형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락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간 기자한테 신혜인은 오히려 이전 ‘취중토크’ 때 만난 인연을 기억하며 ‘제대로 된 인터뷰 기사를 써준다면’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선을 긋고선 말문을 열었다. 대신 사진촬영만은 정중히 거절했다. 아직은 환자복을 입고 언론에 소개될 만큼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수술 후 최종 결과가 19일에 나올 예정이었어요. 그전에 가벼운 운동은 해도 된다고 해서 18일 집 근처의 헬스클럽에서 런닝머신을 뛰고 내려오는 순간 갑자기 기절을 해버렸죠. 다시 검사해야 된대요. 쓰러진 게 좋은 징조가 아닌 거죠. 지금 검사받고 있는 중이에요.”
너무나 담담히 자신의 몸 상태를 설명하는 신혜인은 여름리그가 한창인 지금, 농구 코트 근처에도 못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신세계 개막전때 모자 눌러 쓰고 팬들 눈을 피해 관중석 한켠에서 숨죽이며 경기를 관전하다 팀이 지는 바람에 선배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도망치듯 농구장을 빠져나왔다는 그는 팀의 좋지 않은 성적이 마치 자기 때문이라도 되는 듯 몸둘 바를 몰라 했다.
언제부터 부정맥으로 고생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신혜인은 최근에서야 자신이 부정맥이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 지난 2003년 베스트드레서로 뽑힌 신혜인. 모델 못잖게 맵시가 곱다. | ||
설마 자신이 부정맥일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고 한다. 빈혈검사, 심장 초음파 검사까지가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다 부정맥이란 걸 알게 됐고 급기야 미세한 관을 투입해 심장 부위의 막힌 혈관 3곳을 뚫어주는 수술까지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여전히 신혜인은 불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지만 지난해 농구가 너무 힘들어 그만둘 생각을 했었다고 토로한다.
“언론에선 제가 팀을 이탈했다고 보도했지만 전 감독님께 정확히 말씀드리고 나왔어요. ‘농구를 그만두겠다’고. 물론 감독님께선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니까 잠시 쉬었다 다시 들어오라’고 여유를 두셨지만 전 진짜 그만둘 생각을 하고 나왔거든요. 동기 한 명 없이 혼자 팀 생활하면서 또 이런저런 오해와 질투 속에서 굉장히 지치고 벅찼던 것 같아요. 참고 참고, 또 참고 참다가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을 때, 그때 그만두겠다고 말한 거였어요.”
그러나 팀을 떠나 2주 동안 ‘자유인’으로 살던 신혜인은 그후 다시 숙소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전 국가대표 농구 선수 출신인 어머니 전미애씨의 강한 권유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참고 또 참다가 정 못 참을 것 같을 때 그만두면 허락하겠다’는 설득이 가장 컸다.
“팀을 나오기 전 운동 그만둔 친구들과 많은 통화를 했었어요. 제가 ‘후회 안 하냐’고 물어보면 친구들 모두가 ‘단 1%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더라구요. 돈은 못 벌어도 운동 안 하는 게 훨씬 마음 편하다면서 절 자극했죠. 운동 그만두고 싶을 땐 농구를 10년 했든, 20년 했든 아깝지가 않아요. 그냥 그만두고 싶은 거지. 그 친구들 말에 탄력 받고 용기를 냈는데 결국 엄마, 아빠의 설득에 다시 코트로 돌아갔어요. 근데 사람 일이 참 우스워요. 지금은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잖아요.”
▲ 코트 위의 신혜인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오른쪽은 신혜인이 입원해 있는 병실.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프로 2년생’이라고 표현하는 신혜인에게 데뷔 1년은 말 그대로 ‘우울 모드’만을 형성했다. 유명한 아버지(신치용 삼성화재 배구팀 감독)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남다른 ‘출신 성분’에다 모델을 해도 손색이 없는 늘씬한 키와 잘생긴 외모는 그를 단박에 ‘얼짱 스타’로 급부상시켜 대중들의 관심과 시선을 달고 사는 불편한 상황을 연출해 냈다.
‘명품만 입는다, 성형수술을 했다, 건방지다, 남자친구가 있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연예인 못지않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는 현실이 프로 1년차 신혜인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부담감이었을 것 같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보고 싶지 않을 정도예요. 너무 힘들고 외롭고 괴로웠어요. 전 ‘얼짱’이란 말이 정말 싫었어요. 신인답게 조용히 농구에만 전념하고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잖아요. 먹지 않아도 될 욕도 많이 먹고, 안티팬들도 감당하기 어려웠고, 보람보단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던 프로 데뷔 해였어요. 빨리 1년이 지나가길 바랬고, 2년차 때는 제대로 해보고 싶었죠.”
스물한 살의 나이. 그 중 10년은 농구만 알고 지내왔다. 농구를 못하게 될 경우 평범한 대학 생활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프로 농구의 참맛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농구를 접게 될 거라는 우려는 신혜인에게 너무나 큰 안타까움이다.
“뭔가를 다 해본 다음 그만두는 거라면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었을 거예요. 전 여기서 그만두면 ‘얼짱 스타’ 신혜인밖에 남는 게 없어요. 그게 너무 억울해요. 우스운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우리 팀에 장선형 언니가 있어요. 저랑 같은 포지션이라 그 언니가 자리를 비워줘야 제가 경기에 투입되곤 했어요. 그런데 그 언니가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게 된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미안하면서도 좋았어요. 제가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그 언니는 지금 수술이 다 회복돼서 다시 뛰고 있어요. 그 언니 자리를 노렸던 전 재활도 할 수 없는 부정맥으로 코트를 떠나야 할 기로에 놓인 거구요. 너무 재밌지 않아요?”
신혜인의 젖은 눈을 쳐다보는데 마음이 아려왔다. 애써 태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씩씩해 보이려 했지만 결국 그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축구천재’ 박주영이 겪고 있는 ‘내 몸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백분의 1 정도는 느껴봤다는 그는 ‘박주영이 불쌍하다’는 말도 꺼내 놓았다. 같은 또래인 데다 매스컴의 집중 취재 공세를 받고 있다는 입장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았다.
“요즘 (전)주원 언니는 왜 그렇게 잘 하신대요? 애 낳은 지 몇 년 된 것도 아닌데요. 저랑 곧잘 라이벌로 비교된 (김)은혜 언니도 정말 잘 뛰시더라구요. 너무 부러워요. 그렇게 맘 놓고 뛸 수 있다는 게. 만약 농구를 못하더라도 전 농구를 제 가슴에 담고 있을 겁니다. 그래야 보고 싶을 때 맘대로 꺼내 볼 수 있죠. 너무 안타깝게 보지 마세요. 아직 아무 것도 결정 난 건 없으니까요. 아직은 농구선수 신혜인이니까요.”
팀을 나와 있으면서도 신혜인의 입에선 소속팀에 대한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선배들 ‘시다발이’할 사람이 없다며 그것조차도 미안해하는 마음 여린 친구한테서 연민이 느껴졌다. 기량과 외모가 너무나 아까운 어린 선수의 인생이 오락가락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