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에 위치한 문희상 의원 사무실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우리는 더 불안하다. 안 됐다가 되면 동정표가 나올 수 있고….”
지난 2일 문희상 의원의 지역구(의정부갑)에서 <일요신문>과 만난 김석범 새누리당 예비후보의 측근은 이같이 말했다. 그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이 당황했다. ‘정말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희상 의원이 구제되면 호남표가 전보다 더욱 단결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방금도 문 의원 쪽과 연락해보니 그런 분위기를 느꼈다. 문 의원은 정치 9단이라 이대로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기 북부 1번지’ 의정부갑의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무려 6명. ‘거물급’ 현역 의원이 쓰러졌지만 캠프마다 이 같은 사실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김남성 새누리당 예비후보 캠프 관계자 역시 “공천 배제 이후에도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라는 분위기가 쭉 이어졌다”며 “종교계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정부갑에서 문 의원 지지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선거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 다시 나올 가능성이 높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문 의원이 컷오프를 당하자 지지자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25일 더민주 의정부시의회 의원들과 당원들은 “당의 결정에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문 의원의 공천 배제는 경기북부지역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자당의 예비후보들에게 문희상을 이길 비책을 물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의정부갑 지역에서 문 의원의 ‘대체재’가 없기 때문에 문 의원을 구제하지 않으면 탈당을 하겠다고 경고메시지를 중앙당에 보낸 것.
문희상 의원 지역 사무실 입구.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이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거부터 의정부갑은 문 의원의 텃밭 중의 ‘텃밭’. 문 의원은 13대 총선에서 평화 민주당 간판을 달고 이곳에 처음 출사표를 던졌다. 결국 낙선을 했지만 14대 총선에서 의정부시에 출마해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그 뒤 문 의원은 16대부터 이곳에서 내리 4선을 했다. 5선 의원이자, 이해찬 의원에 이어 선수로 2위다.
의정부 시민들의 탄탄한 지지 때문인지 권력의 핵심부에 서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과 열린우리당 의장은 맡았고 야권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해 당을 이끌었다. 야권 ‘최고 스펙’을 자랑했던 그가 졸지에 ‘공천 배제’를 당한 셈이다. 문 의원은 컷오프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당원으로서 선당후사를 한 번도 어긴 적이 없고, 당이 나한테 억울하거나 불쾌하게 하더라도 꼭 따랐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지만 “알고나 죽어야지…. 이의신청 하겠다”며 더민주 지도부에 대한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문 의원이 공천 배제 통보를 받은 24일, 지역구 선거사무실에서는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한다. 문 의원의 최측근은 “자다가 홍두깨를 맞은 것처럼 완전 ‘패닉’ 상태였다”며 “밤마다 ‘탈당하라’는 항의 전화를 수도 없이 많이 받았다. 아무리 성적이 나빠도 그렇지…. 지도부에서 불출마 권유가 아닌 컷오프 결정을 못할 거라 생각했다. 비대위원장을 하면서도 의원님은 본회의와 상임위를 빠짐없이 나갔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렇다면 야권 경쟁자인 국민의당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김경호 국민의당 의정부갑 예비후보는 문 의원을 오랫동안 보좌하며 ‘정치적 아들’을 자처했지만 최근 문 의원과 결별했다. 더민주를 탈당해 문 의원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 김 후보의 측근은 “지역 사회의 큰 별이 떨어진 것 같아 우리도 안타깝다. 전략을 다시 새로 짜야 해서 어려움이 있다”며 “오랜 정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문 의원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정부 초대 정무수석 지내며 문 의원과 함께했던 다른 한 사람도 컷오프의 일격을 피하지 못했다. 친노 중진의 대표주자 유인태 의원(도봉을)이 그 장본인. 유 의원은 공천 배제 소식을 접하자마자, 가장 먼저 수용의사를 밝혀 ‘쿨’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평소 삶에서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당이 탈당 등 워낙 어려운 일을 겪다보니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미뤄왔던 것이 오늘에 이른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시 도봉구는 유 의원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그는 노원갑에 출마했지만 5위로 낙선하고 만다. 하지만 14대 총선에서 도봉갑에서 당선되며 화려한 정치적 데뷔를 했다. 15대 총선에 이어 계속 낙선을 했던 그에게 17대 총선에서 다시 재기의 기회를 준 지역구도 도봉을이었다.
서울 도봉구 도봉로에 위치한 유인태 의원 사무실 간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2일 <일요신문> 취재진이 유 의원의 지역 사무실을 찾았을 당시 몇몇 유권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숨을 푹푹 쉬거나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이들이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유 의원의 최측근은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날 이후로 술을 먹지 않은 날이 없다. 밤마다 아쉽다는 항의 전화도 많이 받았다. 처음에 홍의락 의원이 컷오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진영은 믿지 않았다. 적진에 나가있는 장수 등에 칼을 꽂는 행위였다. 하지만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정치는 타협과 양보의 산물인데 의정활동을 법안 발의 등으로 수치화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크다. 아무래도 지금 가장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은 의원님과 사모님이다. 그런데도 더 망가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려고 용단을 내리셨다. 그 결정을 존중하기 때문에 아랫사람들은 침묵 중이다.”
유 의원의 ‘강력한 라이벌’ 새누리당의 김선동 도봉을 예비후보는 어떤 입장일까. 김 후보는 18대 총선에서 도봉을에 출마해 유 의원을 꺾고 국회에 첫발을 디뎠다. 하지만 19대에선 절치부심한 유 의원에게 지역구를 내준 아픔이 있다. 2일 <일요신문>과 만난 김 후보는 “주변에서 야당 중진을 피하게 돼서 좀 수월해진 것 아니냐고 하는데, 이건 맞는 관점이 아니다”며 “선거의 유불리를 떠나 ‘19대 유인태냐, 18대 김선동이냐’는 대립각을 세울 수 있었는데 이제 그렇게 하지 못해 좀 아쉽다. 4년 전에도 여론이 좋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다른 결과가 나왔다. 도봉을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지역이라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밝혔다.
손동호 국민의당 예비후보 캠프 쪽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손 후보 측 관계자는 “현역이 빠지면 우리는 아무래도 낫다”며 “우리는 원래 친노 독선의 사고방식 때문에 유 의원 자체를 싫어했다. 원래 지역 일을 많이 해놓지 않아 여론이 안 좋았다. 우리는 원래 유 의원을 타깃으로 했는데 좀 쉬워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갑수 더민주 예비후보 역시 “유 의원은 민주화의 상징이자 위대함을 지니고 있지만 유권자의 피로도가 높았다”며 “야권의 거물에 대한 피로도와 김선동 후보 같은 만만치 않은 여당 후보, 힘든 싸움이 될 뻔했지만 이제 조금은 연착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