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플랜텍이 완전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사진은 포스코플랜텍 홈페이지 캡처.
포스코는 지난 2010년 성진지오텍을 인수했다. 이후 2013년 성진지오텍과 옛 포스코플랜텍을 합병해 현재의 포스코플랜텍이 탄생했다. 포스코는 철강재 수요산업을 자회사로 편입해 이른바 수직계열화로 회사 간 시너지를 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인수 당시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고가 인수 논란에다 정치권 외압 의혹까지 불거진 것. 검찰 수사를 통해 일부 내용은 사실로 드러나 관련자들이 처벌받기도 했다.
인수 후 포스코플랜텍은 사업 초기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주력 사업 중 하나인 화공플랜트 등 에너지 설비 부문은 국제유가 하락과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제대로 기를 펴지도 못했다. 결국 적자만 쌓여 갔다. 지난 2013년 995억 원, 2014년 2796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의 순손실도 2773억 원으로 지난해 총 순손실은 3000억 원을 가볍게 넘길 전망이다.
포스코가 처음부터 뒷짐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포스코와 포스코건설은 2010년 10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세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44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포스코플랜텍에 쏟아 부었다. 2012년 1월에는 삼성엔지니어링도 567억 원 상당의 유상증자를 지원했다. 인수 이후 포스코플랜텍에 5000억 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된 셈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해사업연도 포스코플랜텍의 자본총계는 –1177억 원이다. 917억 원 정도인 자본금을 완전히 잠식해 버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포스코가 포스코플랜텍을 정리해 버리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미 수천억 원의 자금을 투입했기에 다시 대규모 유상증자를 지원한다면 포스코 주주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 자명하다. 포스코 입장에서도 수직계열화는커녕 재무구조의 암초로만 작용해온 포스코플랜텍이 달가울 이유가 없다. 인수 과정과 인수 이후 잇따른 잡음은 물론 포스코 부실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포스코플랜텍은 지우고 싶은 과거나 다름없는 셈이다.
정리 가능성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워크아웃 전에 자구 노력을 충분히 했다. 나름대로 할 만큼 했지만 채권단과 원만히 해결이 되지 않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워크아웃 이후 지배력을 상실한) 현재로서는 법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도움을 줄 수밖에 없다. 포스코 마음대로 유상증자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포스코가 포스코플랜텍을 돕지 않는 건 아니다. 지난해 11월 23일 포스코플랜텍이 포스코로부터 포항제철 3고로 등의 개보수 공사를 수주한 것. 공사 기간은 약 2년으로 계약 금액은 2344억 1000만 원이다. 선급금으로 220억여 원을 받았다. 포스코 관계자는 “일감몰아주기는 절대 아니다. 공정한 입찰을 통해 포스코플랜텍이 수주를 따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플랜텍 경영진 출신의 한 인사는 “오너가 없는 그룹의 특성상 강력하게 경영정상화를 추진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조청명 포스코플랜텍 사장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 사장은 지난해 6월 포스코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가치경영실장에서 물러나 회장 보좌역으로 재직하다 11월 포스코플랜텍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룹의 핵심 인사를 사장으로 보내 경영정상화를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포스코 관계자도 “업무역량이 뛰어난 전문가를 투입해 정상화를 앞당기려는 의도가 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월 28일 포스코플랜텍은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자본잠식 사실을 공시했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포스코플랜텍에 대한 ‘투자유의안내’와 함께 주권 매매거래 정지를 알렸다. 이튿날부터 주식거래는 정지됐다. 거래소는 자본금 전액 잠식과 관련하여 2015사업연도 사업보고서 제출기한일인 3월 30일까지 전액 자본잠식 해소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출할 것을 권고했다. 이때까지 포스코플랜텍이 자본잠식을 해소하지 못하면 곧바로 상장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매각 진행 중인 포스코플랜텍의 울산 제2공장. 포스코플랜텍 홈페이지 캡처.
자금 마련을 위해 포스코플랜텍은 지난 2월 11일에 울산 제1, 2 공장 매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쉽사리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가 3월 1일에야 제2 공장을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다. 제2 공장 매각과 관련해서 포스코플랜텍 관계자는 “본 계약 체결 전에 매입 회사를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울산이 아닌 다른 지역 중공업업체다”며 “매각 금액은 500억 원 이상 될 것이다.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조만간 본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매각 대금이 한 번에 들어오지는 못할 것이다. 수차례에 걸쳐서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중요한 점은 공장 매각에 따른 이익이 얼마일지다. 회사의 자산인 공장을 매각하면 그 공장의 장부가만큼 자산이 줄어든다. 통상 장부가보다 실제 매각 가격이 더 높다. 그 차액만큼의 이익금이 발생하면 이를 부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포스코플랜텍이 지난 1월 28일 공시한 자료를 근거로 단순 계산해보면, 최소한 260억 원 이상의 차액을 남겨야 비로소 완전 자본잠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회사 측이 유상증자에 목을 매는 이유다.
완전 자본잠식에서 벗어난다 해도 상장폐지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공장 매각 후에도 여전히 자본금의 50% 이상이 잠식된 상태라면 ‘관리 종목’으로 지정되기 때문이다. 사업연도를 기준으로 연속 50% 이상 자본 잠식 상태가 지속되면 상장폐지된다.
전상경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단순히 포스코가 포스코플랜텍을 돕느냐 돕지 않느냐 하는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회사의 경영자는 기업가치를 중시하는 가치중심경영을 수행할 의무가 있다”며 “포스코 경영진은 포스코플랜텍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이 포스코 기업가치창출에 도움되는 의사결정인지, 아니면 포스코 기업가치 훼손을 초래하는 의사결정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경영자의 불합리한 의사결정은 포스코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배임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는 14일 포스코플랜텍 정기주주총회가 열린다. 최대주주 포스코와 소액주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위기 돌파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