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통합 제안으로 국민의당이 한바탕 평지풍파를 겪었다. 사진은 지난 1일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의 창당 한 달 기자회견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의총에서 의견이 모일 것입니다.”
지난 4일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의견이 통합되지 않으면 투표로 갈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이날 의총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던진 야권통합에 대한 당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였다. 당시 기자들은 대개 ‘찍어 누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20명 가까운 의원들이 모여 토론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의견이 한데 모일 것이라는 단정적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김종인 대표는 “야권에 다시 한 번 통합에 동참하자는 제의를 드린다. 지금 시간이 없다”며 “지도부의 문제를 걸고 탈당을 했는데 그 명분은 지금 사라지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김 대표의 이번 통합 제안으로 국민의당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 됐다. 당대당의 정책 경쟁 등 연대를 할 대상이 아니라 사실상 통합 대상 정도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의견으로도 들을 수 있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국민의당에 대한 관심은 사실 적잖이 사그라졌다. ‘관심’에 민감한 기자들의 움직임이 그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안철수 대표가 회의를 끝내고 나와도 따라붙는 기자가 많지 않았다. 김종인 대표가 야권통합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야권 통합 제안이 나온 뒤 분위기는 급변했다. 당사 주변에서도 “매일 이렇게까지 전쟁을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을 느낄 정도로 취재는 격렬해졌다.
이처럼 국민의당이 그렇게 원했던 관심은 받게 됐지만 ‘통합’이 당을 이롭게 하는 제안은 아니다. 김종인 대표의 통합 제안이 나오자마자 당은 사분오열되고 서로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백가쟁명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당 전체가 찢어지리란 관측까지 나올 정도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당내 안철수계가 의총에서 표결로 가는 것을 대비해 세 결집에 나섰다는 이야기까지 있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내부의 세몰이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단 지난 4일 오후 8시부터 시작된 의총의 결론은 ‘통합 불가’로 모아졌다. 안철수, 천정배 공동대표를 포함한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이를 확정했다. 회의가 끝난 뒤 안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잘 정리됐다. 더 이상 통합에 대한 논의는 불가하다고 결론 냈다”면서 “우리의 불꽃을 다시 살리자는 각오를 다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살아 있다. 국민의당 내 세력들 상당수는 야권연대에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통합에 적극적이었던 김한길 의원은 여전히 야권연대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당 다른 관계자는 “당 내부에서는 김한길 의원이 논리적으로 설득하면 지도부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전혀 바뀌지 않아 많이 답답하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김 의원도 연대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 확실하기 때문에 의견 관철 시도를 계속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야권연대 안하면 대부분의 지역이 새누리당에 넘어가는데 패배를 자초할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며 “야권연대를 받는다고 자존심을 버리는 것도 아닐뿐더러 분열로 인해 새누리당이 싹쓸이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 우리가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본래 창당할 때부터 국민의당은 통합된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를 갖고 있었다. 지난 2월 19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국민의당에 합류하면서 국민의당의 계파는 기존 6개에서 7개로 확장됐다. 국민의당 내 기존 6개 그룹 중 가장 큰 그룹은 2012년 대선 ‘진심캠프’부터 안 대표와 호흡을 맞춘 직계가 있다. 다음으로 △김한길계와 더민주 탈당파 △옛 동교동계 △천정배계 △박주선계가 있다. 여기에 지난 2월 17일 영입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필두로 한 소위 전문가 그룹까지 7대 계파의 뜻이 모인 곳이 국민의당이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 탓에 국민의당이 일사불란함을 보이긴 힘들다고는 해도 이번엔 다르다. 일부 지역에선 안 대표가 출마자들은 전혀 고려치 않는 행보를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달려들라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국민의당 현역 의원 대다수가 야권통합, 야권연대를 받자는 의견을 낸다는 것이다. 안 대표가 김종인 대표의 ‘갈라치기’에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지난 3일 자신의 트위터에 “호남이야 뭐 이럭저럭 한다 해도, 수도권에선 안철수 하나 빼면 당선권 근처에 든 사람이 하나도 없다. 국민의당에서 수도권 의원이나 후보들이 당을 떠날 수도 있다”며 “그 경우 국민의당은 박지원, 천정배, 주승용, 정동영+권노갑의 순도 99.9% 호남당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럼 안철수는 낙동강, 아니 영산강 오리알이 될 것”이라고 독설을 뿜기도 했다.
일단 기다려보자는 신중론도 있다. 국민의당 한 예비후보는 “김종인 대표의 제안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은 ‘선수’들끼리는 다 안다. 친노 다 정리했다고 하는데 정리한 게 뭐 있나. 아무것도 된 것이 없다. 연대나 통합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내부 정리가 전혀 안 된 지금 시점은 아닌 것 같다”며 “의총 결과가 통합 거부로 나왔지만 출마자로서는 연대할지 아닐지가 중요하다. 수도권 연대 등 불씨는 살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민의당 운명이 걸린 결정이 다음주 초까지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계 관계자는 “안 대표는 초조할 것이 없다. 솔직히 이번 야권 통합 제안이 안 대표에게 득 될 것도 없고 차라리 마지막까지 국민의당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며 “다 떠나도 안 대표 개인으로서는 그 모습만 보여준다면 이번 총선에서 15석 정도 확보하고 5명 정도 더 영입해 교섭단체만 만들어 대선판을 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안 대표가 힘겹게 ‘통합 불가’로 의견을 모았지만 또 하나의 실책을 저질렀다는 의견도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처음이 중요했다. 이 안을 받을지 안 받을지, 받으면 어떻게 받을지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받으면 국민의당이 와해나 해체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운을 떼며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라는 게 공격이 있고 수비가 있으면 역공도 있다. 김종인 대표가 제안을 했을 때 오히려 확 받고, 역제안으로 ‘통합실무단 구성하자. 우리 당에 중립적 인사인 이상돈, 전윤철 교수가 더민주의 중립적 인사들과 같이 테이블에서 논의하자’고 하면 주목도 받고 인지도도 높일 수 있다. 존재감은 살리고 협상에서는 호남, 영남, 수도권 등에서 반반 공천하자고 하면 더민주가 받을 수 있겠나. 그렇게 되면 오히려 제안한 사람이 코너로 몰리게 된다. 만약 반반 공천에서 불리하게 협상이 결정 나도 국민의당이 최소 30석은 확보 가능하다. 연대해서 당선된다고 해서 다른 당 되는 것 아니다. 여전히 국민의당이다. 지금은 김종인 대표가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받았다. 지리멸렬하면서 체면만 구기며 존재감만 희석됐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